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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다문화 가정-가타히라 치에미, 김광연 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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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5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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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도쿄(東京)에 소재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종사하며 대학시절과 동기이며, 병원에서도 함께 근무 했던 동료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는 가타히라 치에미(43)
일본 가고시마현이 고향인 가타히라 치에미(片平 千惠美 ․ 43) 씨가 남편 김광연(47) 씨와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1995년 8월 치러진 통일교 재단에서 주관한 축복 결혼식을 통해서며, 한국 생활은 축복 결혼식을 치른 이듬해인 1996년 1월부터 시작 했다.
가름한 외모에 왠지 첫인상이 약해 보이는 남편은 가타히라 치에미 씨에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단다.
신혼 초 자신의 잘못을 남편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라 화를 내면 남편은 화나게 해서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을 정도였단다.
전북 익산에서 시작한 신혼 초 생활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서로 다름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단다.(늘 남편이 양보해 줬지만.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첫 아이 영선(여 ․ 14)이를 출산(出産)했을 때 모유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시어머니가 시골에서 익산까지 직접 음식(돼지 족발)을 만들어 오셨는데, 기름기 많고 끈적끈적한 느낌에 먹지 못 하겠다.”고 시어머니 앞에서 표현한 것이 지금까지 죄송한 생각이 든다는 가타히라 치에미 씨의 익산에서의 신혼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남편의 매형이 운영하던 양복점이 IMF 경제위기로 운영상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1998년 2월 시부모님이 생활하고 있는 금과면 청룡마을로 이사 했다.
“한국문화와 언어소통에 익숙하지 못했던 터라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 자체에 걱정을 많이 했다.”는 가타히라 치에미 씨는“시부모님의 각별한 사랑과 배려로 징, 장구 등 한국의 전통적 서민악기를 배우고, 다문화 여자 배구단 활동과 함께 신앙생활도 열심히 할 수 있었으며, 익산에서의 생활보다 더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풍물을 배우지 않을 때 들은 악기들의 소리는 소음에 불과 했는데, 징과 장구 등을 배우는 가운데 듣는 소리는 여러 악기가 자연이 조화를 이루듯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악기의 어울림이 환상적이었단다.
매사(每事)에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가타히라 치에미 씨는 최근 치러진‘제5회 장류축제’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순창의 스타킹을 찾아라’프로그램에 국적이 같은 6명의 동료와 팀을 이뤄 참가했다.
한국생활을 통해서 직접 겪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 양판 가져와라 에 양파를 갖다 드리고, 포리채 가져 와라에 보리차 대령(갖다드림) 등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한 생활상을 코믹연기와 댄스로 선보였으며, 심사 결과 인기상을 차지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대신해 시부모님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 가타히라 치에미 씨는 군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모국어인 일본어를 주 1회 어린이집을 방문하여 가르치고 있다.
또한, 방과 후 지도사 교육, 교회에서의 성가대 활동 등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단다.
“신앙생활을 하면 삶(생활)에 대한 목적이 뚜렷해지며, 어떠한 어려움에도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밝힌 가타히라 치에미 씨는“태산을 옮길 만한 믿음으로 가족 공동체 안에서 진실한 사랑을 보이며, 지역사회 안에서도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에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생활하고 싶다.”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타국(他國) 생활 초창기 좌충우돌 속 많은 추억(追憶)들이 행복한 생활로 전환하게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는 가타히라 치에미 씨의 한국 생활이 어느 덧 15년의 흔적을 남기며 이제는 가족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는 한국 아줌마의 표본이 되어있는 것 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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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융희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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