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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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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7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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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서영 / 작 가 | ⓒ 순창신문 | |
지난 토요일, 나는 여든여섯 살 어머니를 모시고 마을 봄나들이에 다녀왔다. 이전 같으면 조금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의 여행은 뜻밖에 편안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버스는 아침 여덟 시에 마을 어른 스물한 명을 태우고 통영을 향해 출발했다. 햇살은 구름 사이로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했고 창밖 풍경은 대동소이하게 이어졌다. 논과 밭, 낮은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마을의 일상이 조금씩 멀어졌다. 처음 분위기는 조용했다.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지만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차분했다.
그 조용한 버스 안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리 마을 이장님과 사모님이었다. 두 분은 버스 통로를 오가며 작은 봉지들을 하나씩 나눠 주셨다. 떡 두 개도 나눠 주셨다. 놀랍게도 아직 따뜻했다. 과자도 있었고 물도 한 병씩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밥 대신 드시라며 정성스럽게 건네는 손길에서 단정함이 느껴졌다. 준비한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혹 부족한 것이 있을지 모르니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그 한마디에는 이미 충분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순창에 귀촌한 지도 벌써 열한 해가 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추령장승촌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농촌후계자들이 한 철 장사하고 비워둔 공간을 고쳐 쓰느라 천만 원가량을 들여 보수공사를 했다. 그렇게 시작한 북카페에서 나는 다섯 해를 살았다. 전국에서 블루노트 이서영 작가의 인문학 강의를 듣는 북스테이에 참여하겠다며 찾아온 사람들은 오십 명에서 많게는 일흔 명 가까이 되었다. 우리는 장승촌 뒷숲을 함께 걸었고 전북산림박물관을 산책했다. 모텔 두 곳을 예약하고 식당을 빌려 쓰며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인문학 강의와 글쓰기를 이어가며 시골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삶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작업은 3년쯤 진행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모든 흐름을 멈추게 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북카페도 조용해졌다. 전국에서 요청하던 오프라인 강의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생활인이 되었다. 꽃을 심는 일에도 참여했고 떡 공장에서도 일했다. 여름 유원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인삼 농사를 짓는 곳에서도 일했다. 책을 쓰는 사람의 손도 결국 흙을 만지며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팬데믹이 끝나고 강의가 조금씩 다시 생겼지만 삶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외국어 교사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참으로 보람 있었다. 독서캠프를 열었고 아이들과 함께 쓴 책 『으랏차차 풍선여행』의 출판기념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순창에서 열여덟 권의 책을 썼다.
그러나 세상은 냉정하다. 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책을 팔러 다닌다는 이유로 농담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크게 다쳤다. 한동안 순창읍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지만, 글을 쓰며 살아온 사람에게 그 말은 쉽게 흘려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북카페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 새 건물이 들어섰다. 그 건물이 지어질 때 나는 사무장으로 들어가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잠시 품었지만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수가 바뀐 뒤로 건강장수연구소 강의나 읍 단위 인문 강의도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나는 갈 곳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순창에 있기 힘들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처음 북카페 문을 열던 날의 기억도 있다. 마을의 한 어른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농사짓는 사람들만 사는 곳인데 무슨 책방이요. 이사가시오.”
그 말은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북카페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내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하늘빛정원을 마련하자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이사까지 했으니 이제 우리 주민인 것을 인정하오.”
귀촌해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말 속에는 시간이 지나며 생겨난 어떤 인정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열한 해를 살았다. 상처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번 마을 여행에서 버스 안을 분주하게 오가던 이장님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이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다. 사실 나는 이장님을 두 번 겪었다. 첫 번째 이장님은 참 어른스러운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존경했고 의지했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두 번째 이장님을 마음속으로는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여행을 하며 깨달았다. 첫 번째 이장님이 ‘어른스러운 이장’이었다면 지금의 이장님은 ‘섬기는 이장’이라는 사실을. 버스 안에서 떡을 나누어 주고, 사람들의 불편함이 없는지 살피며, 부족한 것이 있을까 조심스럽게 묻는 모습 속에서 나는 리더십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이장은 단지 행정적인 자리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섬기는 자리였다. 그 의미를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 케이블카 근처에서 우리는 유람선을 탔다. 한 시간 반 동안 마을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즐겁게 노셨다. 노래도 나오고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창밖으로 펼쳐진 한려수도의 바다와 갈매기들은 산골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또 다른 풍경을 선물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흥이 많은 민족이로구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힘이 몸 어딘가에 DNA처럼 새겨져 있구나.
돌아오는 길에는 한 사찰에 들렀다. 버스 안에서는 별장산닭 사장님이 유쾌한 안내를 해주셨다. 젊은 시절 여행업을 하셨다는 그의 이야기 덕분에 버스 안에서도 웃음이 이어졌다. 여행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그날 다시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에 충실할 때 사람의 모습은 더 아름다워진다. 이장님은 이장으로서, 사장님은 안내자로서, 마을 어른들은 여행자로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구라는 별을 오십 년, 육십 년쯤 여행하면 지혜가 저절로 생길까.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쌓이며 생기는 어떤 지혜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칠십 년, 팔십 년을 살아온 농촌의 어르신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보물상자다. 그들의 삶에는 시대의 기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나는 솔아북스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내 책을 쓰기 위해 시작된 출판사는 이제 제법 중견출판사가 되었는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받기도 하고 2월에는 국회에서 중소기업부문 소비자우수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이며 출판사 대표로서 나는 그날 생각했다. 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기록해 보아야겠다고. 스물한 명이라는 숫자로 묶여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각각의 삶을 살아낸 스물한 개의 영혼으로 바라보아야겠다고. 그 기록들이 모이면 순창의 역사와 풍경이 되고, 언젠가는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날의 여행은 단순한 봄나들이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열한 해 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상처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사람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눈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마을 이장님을 다시 보게 되었다. 리더십이란 앞에서 이끄는 힘만이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살피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날 버스 안에서 따뜻한 떡을 나누어 주던 손길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우리 마을 이장님. 그분은 아마 자신이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순간들은 그렇게 조용히 공동체의 역사가 된다. 9년째 봉사중이신 부녀회장님 또한 존경스럽다. 하늘빛 정원 앞, 양우인 전 개발위원장님도 울엄마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시고 어른들을 모시고 목포나 근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도 가시고 점심도 사 주신다. 김치나 무를 챙겨주시는 명동언니네도 고맙다. 이사왔던 첫 날, 만난 우리마을 총무님도 멋지다. 장승촌 실장님도 밥도 주시고 많은 것들을 챙겨주셨다. 재완 사장님도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셨다. 생각해 보니 우리 마을은 참 멋진 동네다. 나는 그날, 우리 마을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이서영 / 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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