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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잃어버린 시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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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26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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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서영 / 작 가 | ⓒ 순창신문 | |
며칠 전 어머니는 노래교실에 다녀오셨다. 노래 선생님이 수술 이야기를 하면서 몸의 값을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고 한다. 눈은 얼마, 심장은 얼마이니 건강하기만 해도 수억 원을 아끼는 셈이니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거대한 선물이라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값비싼 축복인지 새삼 실감했다.
우리는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복지행정이 촘촘해지면서 행정복지센터에서 시행되는 수많은 행사와 자치활동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혜택을 권리로만 이해하고, 그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비용, 누군가의 노동과 세금을 쉽게 잊는다. 무료 강좌, 각종 지원 사업, 돌봄과 급식, 복지 프로그램이 숨 쉬듯 제공되지만 그 앞에서 고맙다는 마음을 먼저 꺼내는 사람은 드물다. 공짜처럼 보이는 것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이미 누군가가 값을 치른 결과라는 사실은 잊어버렸다.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제공되는 무상 교육과 체험활동, 방과 후 프로그램과 돌봄을 자연스러운 배경처럼 여긴다. 교사의 준비와 사회적 합의, 행정 절차, 예산 편성과 집행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환경이라는 것을 깊이 배우지 못한다. “당연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점점 흐려진다. 그래서 감사는 특별한 날에만 꺼내 드는 낡은 단어가 되고 만다.
나는 이번에 열여덟 번째 책을 냈다. 오랫동안 종이책을 꾸준히 내다가 이번에는 전자책을 선택했다. 서평단을 모집해 전자책 PDF를 제공하며 독자들과 조용히 만났다. 책의 제목은 〈나는 죽을 때까지 써야겠다〉이다. 이 문장은 인문학자이자 작가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한 사람의 사유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내게 건너왔고, 그 문장이 다시 또 하나의 책을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 보부아르의 사유가 책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었고 이는 또다른 책을 만드는 시금석이 되었다. 나는 이러한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책숲에도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책은 저자의 시간과 편집자의 손길, 인쇄와 유통을 거친 수많은 손의 결과물이며, 전자책 또한 기획과 편집, 디자인과 파일화, 유통 플랫폼의 체계가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다. 한 권의 책이 내 앞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원인과 과정이 존재하는지 떠올리면 '당연히' 받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감사는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문화이며 덕목이다. 감사는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교육을 통해, 반복을 통해, 관계를 통해 부지런히 배우고 체득해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횡행하면서 우리는 너와 나를 자꾸 구별하고, 손익을 먼저 계산하고, 효율을 우선순위에 올려놓는다. 개인주의는 자기 존중에서 멈추지 못하고 종종 이기주의로 변질된다. 그 과정에서 감사는 마음의 중심에서 밀려나 박제된 표본처럼 무거운 단어가 되어 간다. 고마움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이익은 숫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쉽게 잊히고, 숫자는 쉽게 주장된다.
센터에서 외국어교사를 하면서 만난 학생들 또한 감사를 거의 인지하지 못함을 깨닫곤 한다. 아이들이 받는 대부분의 것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주어진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채 아이들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물건들이 주어지고 프로그램들이 주어지고 체험행사들이 주어지는 과정들에 대한 감사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 어른들은 대부분 알지 못하고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이들은 누군가가 마련해 둔 교재를 받으면서도 그 종이 한 장이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준비한 사람의 시간을 상상하지 않는다. 간식 하나를 받으면서도 그 비용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어른이 그 연결을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아이는 세상이 원래 이렇게 주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법만 빨리 배울 위험이 있다.
종이 한 장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든 결과물에는 원인이 있고 과정이 있다. 누군가는 예산을 세우고, 누군가는 서류를 만들고, 누군가는 회의를 하고, 누군가는 강의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현장을 정리한다. 그 수고가 모여 아이들 앞에 '제공'이라는 이름으로 놓인다. 그 과정이 생략되면 아이는 결과만 소비하는 사람이 된다. 결과만 소비하는 사람은 쉽게 권리만 말하고 책임은 잊는다. 그래서 감사 교육은 예절 교육 이전에 시민 교육이며, 마음 교육 이전에 사회 구조를 이해하게 하는 교육이다.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자주 본다. 불평이 남고 비교가 남는다.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을 먼저 세는 버릇이 남는다.
누군가는 오늘도 병실에서 창밖 한 번 보기를 소원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생의 목표로 삼는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내가 불평하던 많은 것들이 부끄러워진다. 내가 누리는 평범함이 누군가에겐 소원이며,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오늘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미래다.
우리는 대개 결과가 좋아야 감사한다고 믿는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그때서야 고맙다고 말한다. 병이 나으면, 돈이 생기면, 문제가 해결되면 비로소 감사가 따라온다. 그러나 나는 순서를 바꾸어 보고 싶다. 먼저 감사하고, 그 마음으로 원인을 만들어 가는 삶을 상상한다. 결과를 확인한 뒤에야 감사하는 태도는 세상을 ‘보상’으로만 읽게 만든다. 반대로 먼저 감사하는 태도는 세상을 ‘선물’로 읽게 만든다. 선물로 읽는 사람은 오늘을 소중히 다루고, 오늘을 소중히 다루는 사람은 내일의 원인을 더 정성스럽게 만든다.
감사는 미래를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마음의 표정이 달라진다. 불평하던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닫혀 있던 관계가 조금씩 열린다. 감사는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일상의 호흡 같은 '태도'다. 그래서 연습할수록 삶 전체의 결이 달라진다. 감사는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현실에 정박시키는 힘이다.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서 있는 자리, 나를 지탱해 준 관계를 보게 만든다. 그 정박이 있어야 사람은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감사를 잃은 사회는 쉽게 날카로워진다. 서로가 준 것을 셈하고 받지 못한 것을 따진다. 고마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요구와 권리만 크게 남는다. 권리의 언어는 필요하지만, 그 언어만으로 공동체는 따뜻해지지 않는다. 권리 위에 감사가 얹힐 때 관계는 존중으로 바뀐다. 감사가 얹힐 때 도움은 시혜가 아니라 연대로 읽힌다. 감사가 얹힐 때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안전망으로 이해된다.
나는 오늘도 작게 연습한다. 안전하게 데려다준 버스 기사에게 마음속으로 인사한다. 수업을 위해 시간을 내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자료를 준비한 동료의 수고를 떠올린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하루를 기적으로 여긴다. 평범한 것들이 언젠가 그리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가능한 한 자주 연결을 설명한다. 이 교재가 오기까지 어떤 손길이 있었는지, 이 프로그램이 열리기까지 누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너희가 오늘 여기 앉아 있는 일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 설명이 반복될수록 아이의 말투와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본다. 그 작은 변화가 나는 참 반갑다.
감사는 많이 가진 사람의 사치가 아니다. 감사해야 비로소 풍요로워지는 길위에 서게 된다. 같은 하루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감사는 삶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문법이다. 그 문법을 잃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자주 길을 잃는다. 길을 잃으면 관계가 어긋나고, 관계가 어긋나면 공동체는 약해진다. 그래서 감사는 개인의 마음을 다듬는 일을 넘어 사회의 온도를 지키는 일이다.
나는 감사를 가르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지식보다 먼저 고마움을 말할 줄 아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권리를 말하기 전에 책임을 헤아릴 줄 아는 시민을 꿈꾼다. 그 시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언어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수고하셨다”는 인사 한 번, “당연하지 않다”는 설명 한 줄이 사회를 다르게 만든다. 당연함이라는 껍질을 벗기면 세계는 다시 빛난다. 누군가의 수고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삶은 겸손해진다. 먼저 감사하고, 그 힘으로 내일을 설계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되뇐다.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함께 있음에 감사한다. 책을 읽고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아이들을 만나 말과 마음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 마음이 내일의 원인이 되기를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이서영 / 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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