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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가 버린 웅변 원고

2026년 01월 26일 [순창신문]

 

↑↑ 송일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순창신문



내가 중학교에 다녔던 1970년대는 남북한의 서로 적대감을 표출하며 대립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인데, 학교나 마을의 담벼락에는 ‘반공(反共)’ 관련 포스터나 표어가 붙어 있었다.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강력한 국력 앞에 물러가는 붉은 마수”리라는 표어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한 시절이라 학교에서도 반공(反共) 관련 글짓기대회는 물론이고, 웅변대회, 포스터 그리기 대회, 표어 짓기 대회 등이 연례행사로 치러졌다. 1968년 강원도 외딴 산골에 살던 이승복 어린이가 자기 집에 침입한 무장 간첩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해서 무참하게 살해되었다는 뉴스 등이 흉흉하게 들려오기도 했다. 훗날 이 기사는 조작되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 사회의 이념적 대립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래서 나의 학창 시절에는 반공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강조되곤 하였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교내 반공 웅변대회를 해마다 열었다.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시사변론반’에서 클럽활동을 했는데, 지도 선생님은 ‘시사변론반’은 모두 참가하라고 하는 바람에 나도 참가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쥐어짜서 어설픈 웅변 원고를 썼고, 대회를 앞두고 각자의 방식대로 준비하였다.

선생님은 웅변에 자신감이 없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생들이나 선생님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을 한갓 나무나 풀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등굣길이나 하굣길에 마을 앞산에 올라가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웅변 연습을 한 일도 있다. 1학년 때도 몇 차례 교내 웅변대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1년 선배가 대상을 차지하곤 했다. 그 선배는 목청도 좋은 데다가 침착하면서도 고저 완급을 잘 조절하여 누구보다 멋지게 웅변을 잘했다. 그 선배가 있는 한 누구도 대상을 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가 뻔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원고도 제대로 암기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에 나갔다. 요즘에야 학교마다 시청각실 또는 다목적 강당이 있어서 그런 행사는 실내에서 하겠지만, 당시 학교에는 그런 시설이 거의 없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신설 학교라서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때가 4~5월로 기억되는데, 그날 웅변대회는 약간 바람기가 있는 운동장에서 이루어졌다.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저마다 열띤 웅변으로 자기주장을 펼쳐 나갔다. 마침,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미처 다 외우지 못한 원고를 연단 위에 펼쳐 놓고 웅변하기 시작했다. 눈치껏 원고를 보면서 웅변을 이어가고 있는데, 운동장 한쪽에서 일어난 바람이 연단 쪽으로 불어오더니 그만 내 원고를 하늘로 날려버린 것이다. 나는 바람에 날려가는 원고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 원고를 잡을 수가 없었다. 원고는 저만큼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이를 본 학생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당한 일이어서 마치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남학생들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박장대소하고 어떤 친구는 일어서서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여학생들도 정신없이 웃고 떠들었다. 그중 몇몇은 나의 엉거주춤한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운동장이 온통 시장 속처럼 시끌벅적하였다. 친구가 그 원고를 붙잡으러 운동장 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한 친구가 그 원고를 가져다줄 때까지 멍하니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연단 앞으로 가서 두 손을 뻗쳐 연단을 움켜잡고 즉흥적으로 연설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웃지 마십시오!”

그 순간, 소란스럽게 떠들던 학생들이 모두 나를 주목하였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연설을 이어갔다. 웃고 떠들고 있던 학생들의 입을 향해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웃고 있는 그 하나하나의 입속에 붉은 공산당의 독침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짧은 즉흥 연설이 끝나자, 단 아래에 있던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바람에 실려 간 웅변 원고는 다시 나에게 왔다. 친구가 건네준 웅변 원고를 받으면서 심사위원 석을 바라보았다. 체육 선생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엄지척을 하며 나를 응원해 주었다.

마침내, 모든 참가자의 웅변이 끝났고,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손놀림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보잘것없는 원고에다 바람 때문에 중간에서 맥락이 끊겨 버린 웅변이니 나로서는 입상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미 나는 위기를 즉흥 연설로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대상을 받은 것이다. 아마도 내 웅변이 정상적으로 끝났더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3학년 선배가 훨씬 잘했는데도, 심사위원들은 그 당황스러웠던 상황을 순간적으로 잘 대응한 것을 높이 평가해 준 것일까. 물론, 능수능란한 웅변을 보여준 선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내가 대상을 받은 것이 마땅한 것인지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심사위원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평가했을까. 훗날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심사위원 선생님들은 그날만은 위기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바꾸는 힘을 칭찬해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어렸을 때의 일이었지만, 이 일은 나에게 많은 점을 생각하게 했다. 항상 주춤거리기만 했던 나에게 자신감 같은 것도 주었지만, 아울러 위기의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생각하는 힘을 일깨웠을 거라고. 지금 생각해 봐도 그나마 다행한 것은 내가 대상을 받았음에도 군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님에게 그 선배가 출전해야 한다고 먼저 말씀드렸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송일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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