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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새로운 여정의 시작

2026년 01월 16일 [순창신문]

 

↑↑ 우 장 식

ⓒ 순창신문



고향 땅의 한적한 시골 산등성이 새터 마을을 찾아 아내와 함께 서로 기대어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삿짐을 풀고 둥지를 튼 지 십여 년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는 해돋이보다 훨씬 경이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날씨가 흐린 날을 제외하면, 건너편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일몰의 장관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매일 붉은 노을과 아쉬운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이러한 일상을 무심히 흘려보내는 것이 아쉬워 나만의 서재를 마련했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가끔씩 얼굴도 모르는 작가들을 초대하여 함께 문학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삶을 향해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끼곤 한다. 저 붉은 노을처럼, 노년기의 나의 여정에 아름다운 동행까지 생겼으니 망외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부드럽게 내리는 가는 빗소리, 깊은 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은 한없이 낙낙해지고, 무심코 눈에 들어온 겨울 나뭇가지의 소슬함은 사색의 여지를 제공한다. 처마밑에서 도란거리는 산새들의 노랫소리는 마치 티 없이 순수한 어린 손주들의 장난기처럼 정겹고 아름답다. 이 작은 새들은 현관 옆 조그마한 텃밭의 채소들을 쪼아 먹거나 뿌려 놓은 씨앗을 찾아 휘젓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마치 개구쟁이들의 몸짓 같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나이 들어 찾아온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 소소한 행복들이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고있다.

하얀 눈으로 온 천지를 또 다른 세상으로 바꾸어 놓은 어느 날이었다.

아내는 거실 TV 앞에서 평화로운 단잠에 빠져 꿈속의 여행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쏟아진 폭설로 세상이 고요와 정적에 잠긴 것도 모르고 자는 아내가 혹여 쪽잠을 설칠까 염려되어, 조심스레 나만의 공간인 2층 서재로 발길을 옮겼다. 이 고요 속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창밖의 설경을 바라보니 새삼 이 폭설에도 아무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는 아내의 평화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창밖 너머의 한파와는 달리 따스한 온기 속에서, 이 겨울을 함께 나누는 시간들이 이토록 소중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감격스러웠다.

귀촌하며 함께 가져온 책들을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주인의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 얼굴이 붉어졌다.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은 오랫동안 지하 창고에 버려진 듯 갇혀 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역력했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서재로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보니 잊힐 뻔한 소중한 책들이 오랜만에 친정집을 찾은듯 기분이 좋아졌다. 비로소 이들은 다시금 제 빛을 발하며, 나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들이 뿜어내는 문기(文氣)를 느끼며, 나의 잃어버렸던 오래된 기억들을 호출하여 새로운 문학의 여정을 떠나는 길동무로 삼을 수 있지 싶었다.

자판 위에 손을 얹고 엉클어진 실타래를 정리하듯, 마음속의 복잡해 감정들을 풀어갈 것이다. 먼 훗날 누군가 나의 글을 읽게 될 때, 어딘가에 그 시절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졌던 이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그런 시공간 속에서 나는 그 누군가와 연결되고 함께하는 마음의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글을 통해 나의 과거와 현재 연결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미래를 함께할 그 연결의 순간을 기다린다.

서재의 책들은 단순한 지식의 집합체가 아닌, 삶의 깊이를 담고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 책들은 작가의 한 세계가 오롯이 담겨 타인에게 깊은 느낌을 주고, 마음의 등불처럼 삶을 안내해 줄 것이다

한적한 산골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마음을 다잡으며, 세종에 사는 친구 L 작가와의 소통하기 시작했다. 아직 글쓰기 초보인 나로서는 이런 만남은 자신을 돌아보는 더없이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마음을 열어 글쓰기에 겸손히 머리 숙이게 한다. 아직도 발화되지 못한 나만의 깊숙이 숨겨진 속내를 드러내어 새로운 시각으로 참신한 삶의 변화를 꿈꾸게 한다.

지금 나의 서재는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에 서 있다. 그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응시하고, 사유를 빚어내는 공간이자. 성소(聖召)가 되어줄 것이다. 글벗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나의 흐트러진 글도 한 귀퉁이에 장식해 보려는 꿈을 꾸어 본다.

생각만큼 술술 풀리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쓰고 지우기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글쓰기와 거리를 두었던 삶이었지만, 이 또한 글쓰는 데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으니 세상사 참 모를 일이다. 오늘도 깊이 숨겨진 나를 찾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는 실타래가 술술 풀려나오기를 소망해 본다. 나의 서재, 새로운 여정의 시작으로

우장식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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