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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윤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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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05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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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승주 / 광고대행사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 | ⓒ 순창신문 | |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 불렀다. 그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규정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은 자기 존재를 물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존재는 완성된 형상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또 지워가는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사르트르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윤곽을 갖지 않으며, 살아가며 스스로를 깎아 윤곽을 만든다. 그 윤곽은 선명해지기도 하고 무뎌지기도 하며, 때로는 닳아 없어지기도 한다.
내 집 근처에 순대국밥 가게가 있다. 오후 네 시나 다섯 시쯤이면 사람들이 모인다. 대부분은 육십, 칠십을 넘긴 남자들이다. 몇몇 여자도 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 이미 식어버린 순대국밥을 숟가락으로 휘젓고, 소주잔을 들이킨다. 국물 위에 기름막이 굳어 있다. 말들은 뜨겁지 않다. 정치 이야기, 건강 이야기, 이미 여러 번 한 이야기들이 돌고 돈다. 웃음은 크고, 의미는 얕다. 시간은 소주잔처럼 비워지고 다시 채워진다.
그들을 보며 나는 잔인한 생각을 한다. 남은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 존재의 윤곽을 스스로 지워가며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 말이 많을수록 침묵은 깊지 않고, 웃음이 클수록 삶의 무게는 가벼워 보인다. 물론 그 판단이 오만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 풍경 앞에서 나는 나의 미래를 본다.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을지 모른다. 국은 식고, 말은 허공에 떠돌고, 하루는 사라질 것이다.
내 삶에서 존재의 윤곽이 가장 뚜렷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화양연화는 늘 지나간 뒤에야 이름을 얻는다. 나에게 그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교수가 되겠다는 막연하고도 단단한 꿈을 붙들고, 미친 듯이 공부하던 시절. 책상 위에는 책과 논문이 쌓였고, 밤은 길었으며, 새벽의 커피는 썼다. 세상은 좁았고, 목표는 분명했다. 그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루의 끝에서 오늘도 나를 조금 더 만들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삶은 뒤틀린다. 계획은 꺾이고, 선택은 강요된다.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생계는 시간을 요구했고, 꿈은 뒤로 밀렸다. 딸이 태어났다. 아이의 울음은 세상의 모든 논문보다 무거웠다. 기쁨은 분명했으나, 동시에 무언가를 접어야 했다. 나는 가정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다. 목적은 명확했으나, 방향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기계가 되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잠든다. 반복은 삶을 유지시키지만, 윤곽은 흐릿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존재는 확장되지 않고 마모된다. 젊을 때는 나를 증명하려 애썼고, 지금은 나를 유지하려 애쓴다. 증명과 유지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
삶은 왜 나이가 들수록 흐릿해지는가.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스스로를 질문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의 불안은, 존재를 묻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순대국밥 가게의 그들은 불안하지 않다. 그래서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편안함은 윤곽을 깎는다. 불안은 아프지만, 존재를 선명하게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다시 읽어야겠다.
나는 아직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순대국밥 가게의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안으로 들어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상태. 나의 존재의 윤곽은 희미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직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려 했는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삶이 슬픈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도 점점 사라지는 자신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곽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칼로 새긴 흔적처럼, 깊이 들어간 자국은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그 시절의 나, 미친 듯이 공부하던 나는 지금의 내 안에 아직 있다. 희미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존재의 윤곽은 다시 그릴 수 있다. 크지 않아도 된다.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스스로 그은 선이어야 한다. 그 선을 다시 긋기 위해, 나는 오늘도 질문을 붙든다. 식지 않은 국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나의 윤곽을 확인하기 위해서. 2026년을 앞둔 오늘도
이 승 주 / 광고대행사 미디어사업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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