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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천렵 덕에 지서에서 하룻밤

2025년 10월 17일 [순창신문]

 

↑↑ 송일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순창신문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학교는 날씨가 덥다고 방학을 하지만, 시골은 농사일로 더 바빠지는 시간이다. 논에 김도 매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뿌리기도 해야 했다. 나도 모처럼 몸이 약해서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를 돕겠다고 나섰다. 즉, 볏논에 농약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농약을 챙겨 분무기를 짊어지고 집을 나서는데, 마을 우물가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내가 살던 마을은 동네가 크지 않아서 나이가 1~2년 차이 나도 늘 함께 놀았다. 그 중에는 초등학교 동창도 있었다. 방학이 되어 집에 온 나를 친구들이 반겼다. 친구들의 차림을 보니 천렵이라도 가는 행색이었다. 한 친구가 나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야, 친구, 오랜만이다. 우리 오늘 호정소로 천렵하러 가는데 함께 가자. ”

나는 함께 놀러 가자는 말이 고마웠지만, “오늘, 아버지를 도와 농약을 해드리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자 K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야, 오늘은 우리랑 천렵하러 가고, 내일 아버지 도와드리면 되잖아!”

그 말을 듣고 보니, 까짓 하루 차인데 그렇게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되돌아가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친구들이 호정소로 천렵하러 간다는데 나도 따라가서 놀다 올게요. 농약은 내일 해드릴게요.”

나는 분무기와 약통을 내려놓고 우물가로 달려갔다. 우리는 마을 뒤 밭질재 넘어 무직산으로 향했다. 모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가는 것이 마냥 좋았다. 해마다 겨울방학 때 나무하러 다니던 길이었다. 깊은 산속으로 가서 땔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나오다가 이곳저곳에서 넘어졌던 기억이 새로웠다. 나는 유독 많이 넘어졌다. 그 이유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아버지의 지게를 지고 왔기 때문이다. 양쪽 지겟다리가 나무나 바위 등에 걸리면 비틀거리다가 넘어졌다. 집에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무하라고 시키지 않았지만, 순전히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몸에 맞지 않은 아버지 지게를 짊어지고 나온 것이 항상 문제였다.

무직산 중간 지점에 할매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를 볼 때마다 신령스러웠다. 마치 우리를 지켜주는 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할매바위를 지나면서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그 길이 가팔라서 잘못하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앞다투어 아래쪽으로 호정소로 내려갔다. 호정소는 언제 보아도 두렵고 무서웠다. 유유히 흐르는 구림천의 물이 이곳에 모여들어 크게 소용돌이쳤기 때문이다.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는 제법 큰 구멍이 하나 생겼다. 거기에 빨려들면 사람은 물론이고 그 어떤 것도 살아나오지 못할 만큼 공포감을 주었다. 마을 형님들이랑 물고기 잡으러 왔을 때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워서 그 근처에는 잘 가지 않았다. 중학교 때 소풍왔을 때도 눈길조차 주기 싫은 곳이었다.

우리는 물가 너럭바위에다 짐을 내려놓고 고기 잡을 준비를 했다. 뜰망도 보이지 않고, 법수같은 것도 보이지 않은 걸 보니 누군가가 배터리라도 가져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리번거려도 배터리는 보이지 않았고 그물 같은 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 H가 무엇인가 비닐로 싼 것을 들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더니 무엇인가 하얀 액체를 강물에 뿌리는 것이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농약이라고 했다. 그것을 두 병이나 강을 가로질러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기들은 기척도 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친구 하나가 검은 봉지에서 약병 두 개를 꺼내 냇가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난 후 채 5분도 안 되어 우리들 앞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하얀 은어가 번쩍번쩍 튀면서 냇가로 흩어졌다. 바위 밑에서는 팔뚝보다 더 큰 메기가 어기적거리면서 나왔다. 주둥이가 큰 꺽지는 팔딱거리다가 바위에 부딪히기도 했다. 길고 통통한 뱀장어도 흐물거리면서 나왔다. 우리는 정신없이 이놈들을 잡느라고 바빴다. 누군가가 바로 창자를 발라내면 그런 고기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고기를 잡은 족족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느라 바빴다. 처음에는 보이는 대로 고기를 잡다가 나중에는 하도 고기가 많이 쏟아져 나오니까 대물들만 골랐다. 한쪽에서는 밥 짓고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 허약한 아버지에게 드릴 뱀장어와 메기를 몇 마리 챙겼다. 호정소에 터 잡고 살던 물고기가 한꺼번에 초상 치른 대참사였다. 냇가에서 끓인 매운탕과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저마다 자기 집에 가져갈 물고기들을 챙겼다. 나도 대물의 메기와 뱀장어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 앞에 내놓으니 아버지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그러더니 이 고기를 어떻게 잡았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농약을 쳤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금세 표정이 바뀌더니 고기를 두엄자리에다 버리라고 했다.

“농약 친 물고기 먹다가 죽는 법이여! 어서 두엄자리에다 버려라!”

사실은 나도 꺼림칙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마을 친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어울렸을 뿐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아버지처럼 물고기를 버린 집이 많았다. 그러고는 한 삼일 정도 지날 무렵이었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저 아래쪽에서 아이들이 떼를 지어 우리 집으로 오는 것이었다. 얼핏 보니 내 동생이 앞장서고, 그 뒤에 마을 친구들이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들이 가까이 왔을 때 보니, 낯 모르는 어른이 하나 섞여 있었다. 살짝 두려웠지만, 친구들 표정이 밝은 것으로 보아 별일 아니겠지 하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아저씨 하나가 내 이름을 물었다. 그러더니 친구들과 함께 연산 지서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친구들은 뭣도 모르고 웃고 있지만, 나는 뭔가 큰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사복 입은 아저씨 둘을 따라 우리가 지서에 도착하자 그들은 말씨부터 거칠어졌다.

“야 새끼들아, 네놈들이 호정소에다 농약 뿌려 물고기 잡아먹은 놈들이지?”
“누가 농약 뿌렸냐?”
“몇 병?”
“누가 천렵하러 가자고 했어?”

나를 심문하는 차례가 되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이랬다.
“너는 이제 학교는 다 다녔다. 학교에서 뭘 배웠냐?”

사실 당시 마을 친구들 중에서 학교 다니는 놈은 나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다니게 된 학교인데, 더 이상 못 다닌다는 말에 가슴이 푹 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들이 계획한 일에 맨 어쩌다가 마지막에 참여한 상황이었으니 특별히 할 말도 없었다.

“아버지 농약치는 일 도와주려고 가는데, 친구들이 천렵하러 가자고 해서 따라왔을 뿐입니다.”

호통치며 윽박지르면서 조사는 끝났다. 그런데도 경찰은 우리를 풀어주지 않았다. 저녁이 되었지만, 밥을 챙겨주기는커녕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 난생처음 지서에 갇혀서 멍석 위에서 앉은 채로 그 무더운 여름밤을 보냈다. 경찰은 밤새도록 무엇인가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아침이 밝았지만, 여전히 굶은 채로 지루한 대기 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점심때가 될 무렵이 되어서야 마을 어른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이장님과 친구의 아버지가 상기된 표정으로 지서에 들락거리면서 무슨 거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우리는 가까스로 풀려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뙤약볕 아래서 수확한 보리농사의 상당량이 들어갔다고 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우리가 뿌린 농약으로 회문산 아래부터 동계 요강바위 근처까지 물고기들이 다 죽어버렸다고 했다. 강가를 지나가면 물고기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고 했다.

한순간에 엄청난 범죄에 휘말려 버린 나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몸이 편찮아서 늘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뵐 염치가 없을 만큼 괴로웠다. 아버지를 도와드리기는커녕 없는 살림만 축내고 말았다. 하마터면 그 경찰관 말대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괴롭고 힘들었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린 시절 철모르고 했던 만행이지만, 그때 아니었다면 호정소의 모든 고기를 일시에 불러냈던 그 장엄한 서사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지금도 호정소라는 말만 들으면 어린 시절의 만행이 저절로 떠오른다.

송일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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