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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소설) 에피소드 15. 삼거리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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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 23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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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 진 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 ⓒ 순창신문--- | |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사건 등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창작된 허구임을 밝혀둡니다.
해가 바뀌고 입춘이 지났지만, 여전히 눈이 내렸다. 갈재의 눈은 내린다기보다 퍼붓는 수준이었다. 어르신들의 말처럼 때가 되면 희한하게 찾아오는 계절은 없었다. 올 때가 지났는데도, 기다리는 봄은 소식이 없었고, 여전히 머물러 있는 한겨울 속에 신년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했다. 수인이 지난달 신청해둔 현수막이 폭설로 인해 배송이 지연되었다. 물러나지 않는 겨울은 봄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폭설 때문에 2월 첫 주가 발이 묶인 채 훌쩍 지나가 버렸고, 질긴 겨울은 봄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을 지치게 했다.
수인은 지난해 연말부터 쌓였던 피로가 몰려와 몸살이 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삶도 이력이 나야 하는데, 몸이 마음보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사업 보고를 끝내고 유일하게 조용히 보낼 수 있는 1월에 제대로 쉬지 못하면 4월까지 몸이 풀리지 않았다. 다른 곳에 비가 내릴 때마다 이곳엔 눈이 내렸고, 겨울이 모두 물러난 계절에도 뜬금없이 눈발이 날리고 서리가 내려 봄조차 그저 겨울이기만 했다. 느지막하게 온 봄은 오기 바쁘게 흩어져 버려 무심하기까지 했다. 어느 순간부터 수인은 봄이 왔다고 섣불리 겨울옷을 정리하지 않았다. 그저 봄도 겨울로 여겨야 몸과 마음에 탈이 없었다.
눈이 그치자 간판 아저씨가 현수막을 달기 위해 읍에서 30여 분을 운전해 면 소재지를 찾았다. 눈은 그쳤지만, 도로는 여러 날 쌓인 눈의 잔해가 얼룩진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제설차가 지나간 가장자리에 지저분하게 쌓여 있는 눈이 좀처럼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꽁꽁 얼어붙은 도로 위로 차들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으로 서행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수막 비용도 웃돈을 주고 달아야 했다. 날이 풀리고 작업하기 좋은 날을 잡아 오면 좋으련만 날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데다가 한 번 나오기가 힘든 곳이라는 이유로 업자들은 근처에 작업이 있는 날 몰아서 일을 잡곤 했다.
몇 해째 거래해 오고 있는 간판 아저씨가 수인이 의뢰한 현수막을 달고 수인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현수막이 제 자리에 달리지 못하고 게시대의 다리 부분에 줄로 묶여 있었다. 사진을 확인한 수인이 아저씨에게 문자를 넣었다.
“여기밖에 달 데가 없나요?”
“이것도 겨우 단 거예요.”
“이렇게 달아 두면 마을 사람들이 입을 댈 텐데요. 공공기관 현수막이라 바로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고요.”
“제가 잠시 후에 문화센터로 들리겠습니다. 밖에서 작업 중이라서요.”
간판 아저씨가 근무 중이라 띄엄띄엄 답변이 왔다. 현수막을 제작하여 달아주는 곳이 군 내에 두 군데밖에 없었다. 수인과 거래하는 간판 집 외에 다른 곳은 일이 만 원 저렴하게 해 주었지만, 현수막 편집이 엉성한 데다가 주문자의 확인도 없이 출력해버렸다. 그런데도 일이 줄어들지 않으니, 주인의 태도가 나아질 리 없었다. 그러니 웃돈을 주더라도 지금 거래처에서 현수막을 제작하여 게시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거래처 아저씨는 수인에게 현수막 출력 전에 확인받는 일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았고, 여러 번 수정해도 귀찮게 여기는 법이 없었다. 도시보다 비용이 조금 더 비싼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안타까운 건 수인과 거래하는 간판 집의 유지 유무였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갑작스레 간판사업을 물려받은 아저씨는 기존의 거래처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쟁 간판 집과 가격에서 밀리기까지 하는 바람에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시골에서는 디자인이랄 것도 없는 단순한 현수막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서 따로 확인을 받지 않고 출력해도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싼 곳으로 몰리는 건 당연했다. 수인은 지금 거래하는 간판 집이 살아남길 바라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한참 뒤 작업을 끝낸 간판 아저씨가 문화센터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날이 추워서 작업하시기 힘드셨죠.”
간판 아저씨가 센터로 들어오기 위해 문을 열자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닫히자 진공청소기 같은 곳으로 소리가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바람 소리가 사라졌다. 간판 아저씨는 센터 안팎의 온도 차를 느끼고선 옷에 묻은 찬 기운을 양손을 번갈아 가며 쓸어내렸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우리도 어쩔 수가 없네요.”
간판 아저씨가 견적서를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며, 수인과 눈을 맞추지 못한 채 말했다.
“아니에요. 고생하시는 만큼 남는 게 없으셔서 어떻게 해요.”
“이렇게 달아봐야 오가면서 드는 기름 비용까지 생각하면 정말 남는 게 없어요.”
수인의 말에 간판 아저씨가 슬며시 웃으며 멋쩍은 듯이 말했다.
“알죠. 날씨까지 이렇게 추워서 제가 다 죄송하네요.”
“죄송하긴요. 그래도 이렇게 늘 찾아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그런데, 면 소재지 삼거리 현수막은 게시대 자리가 없었나요?”
“네, 날짜가 다 남아 있는 현수막이더라고요.”
“며칠 뒤에 자리가 나면 다시 옮겨서 달아주시기는 어렵잖아요?”
“우리가 갈재로 오는 날이 많지 않다 보니까 다시 오기는 어렵죠.”
“저렇게 줄로 달아 놓으면 잘 찢어지거나 풀려서, 제가 지나가다가 보면서 제거해 버릴 때가 있거든요.”
“아, 그렇군요.”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다가 입을 대시기도 하세요.”
“면 소재지 삼거리만 항상 현수막이 가득 차 있더라고요. 똑같은 현수막이 여러 개 달려 있던데……. 날짜가 얼마 안 남은 게 있어서 슬쩍 떼버리고 달까 하다가 혹시라도 뭐라고 할까 봐 그냥 왔죠. 뭐 한다고 그렇게 똑같은 걸 여러 개 달아 놓았는지 모르겠어요. 게시비를 냈다고는 하지만 면 소재지 삼거리는 항상 붐비는 곳인데, 다른 사람 생각도 좀 해야지 말입니다.”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간 홍보 기간을 놓칠 판이니……, 어쩔 수 없죠. 뭐!”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소재지에 네 개의 현수막을 게시했다. 어느 곳에는 달고 안 달고 할 수 없어 늘 하던 대로 현수막을 게시했지만, 비용이 신경 쓰였다. 마음 같아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고 가는 면 소재지 삼거리에 하나만 게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현수막 한 장만 달기 위해 업자를 부르는 것도 면목 없었다. 수인은 업자의 사정까지 고려해야 할까 하는 회의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뻔히 아는 사정에 도시에서처럼 딱 잘라 거래하기 어려운 게 또 시골이었다.
십 년 넘게 시골에 살면서 현수막을 제대로 보고 다닌 적이 없던 수인이 현수막을 신경 쓰기 시작한 건 문화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문화 프로그램을 홍보해야 했기에 그때부터 현수막 게시대로 눈이 갔다. 그러면서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 하나를 발견했다. 면 소재지 삼거리 게시대는 2월이 되면 특정 상가나 공공기관의 알림보다 더 많은 게 있었다. 바로 개인의 경사를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면 단위마다 보통 네 개에서 여섯 개의 게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유독 면 소재지 삼거리의 게시대를 빼곡하게 점거하고 있는 게 개인의 경사를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축 **마을 이차돈 씨 아들 이충현 *** 진급”
“축 **마을 김말자 여사 딸 서수진 **대 **학과 입학”
“축 **마을 양지철 씨 아들 양문호 *** 부임”
처음 보는 낯선 이름들이었다. 면 단위별로 10개 내외의 마을이 있는데, 10년이 넘도록 이곳에 살았어도 결코 만난 적도 들은 적도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의 소식이었다. 시골은 이웃집에 수저가 몇 개 있는지도 알고 지낼 것 같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었다. 인구가 적은 만큼 이웃과 이웃 사이의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같은 면에 살아도 평생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인은 어느 마을 아무개 씨의 진급과 입학과 부임을 면 전체가 알아야 하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같이 기뻐해 줄 사이도 아니어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무엇보다 문화센터에서 시기에 맞춰 마을 사람들에게 홍보해야 할 사항이 있을 때는 같은 내용으로 서너 개가 달린 현수막을 떼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간판 아저씨가 엄동설한에 제 자리가 아닌 게시대 아랫도리에 억지로 묶어 놓은 현수막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질긴 겨울바람에 찢어져 버렸다. 수인이 출근길에 삼거리 게시대에 묶어 놓은 현수막이 찢어진 채 나부끼고 있는 걸 보았다.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프로그램 모집 공고 현수막이 인도를 가로질러 처참하게 늘어져 있었다. 수인은 현수막을 걷어내기 위해 차를 세웠다. 간판 아저씨가 어찌나 세게 묶어 놓았는지 여자의 손으로 아무리 아귀에 힘을 주어도 끈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센터로 다시 차를 몰고 가서 가위와 칼을 챙겨왔다. 현수막 하나가 찢어지면 다시 달면 간단히 해결될 일 같지만, 같은 항목으로 여러 번 지출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올해는 문화센터 예산이 줄어들지 않았던가. 예년보다 40%나 오른 현수막값을 치르면서 수인은 마치 자신의 돈을 지출하는 것처럼 아까워했다. 출근도 하기 전에 처참하게 나부끼는 현수막을 수거하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날은 여전히 춥고 바람은 또 왜 그토록 경망스럽게 불어대는지……. 센터로 돌아왔을 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마치 한바탕 일을 치르고 온 사람 같았다.
“어디에 있던 현수막이요?”
청소 할아버지가 현수막을 들고 들어오는 수인을 보고 말을 걸었다.
“오셨어요. 요 앞 사거리에 걸려 있던 건데, 밤새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찢어졌지 뭐예요.”
“말씀하시지. 제가 수거해와도 되는 것인디…….”
“날도 차고, 제가 얼른 가서 수거해오면 될 일인데요, 뭘. 매년 있는 일이라 이 정도는 혼자 해도 괜찮아요.”
수인이 청소 할아버지를 보며 상냥하게 대꾸했다.
제대로 홍보도 못 해보고 이틀 만에 현수막이 떨어졌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고 가는 곳이 이곳 삼거리인데 딱, 이곳의 현수막만 떨어져 버린 것이다. 수인은 어쩔 수 없이 인터넷으로 네 배는 저렴한 현수막을 주문했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현수막은 게시대에 달 수 있는 현수막과 크기가 달랐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틀 만에 현수막이 도착했다. 수인은 혼자서 게시대의 다리 부분에 현수막을 달기 위해 사거리로 나갔다. 수인이 현수막을 달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게시대 앞을 지나쳤다.
“거기는 지 자리가 아닌디, 사람들이 자꾸 달아 쌓고 그랴!” 수인이 민망하여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자리가 나야 지 자리에 달던가 헐 것 아녀. 여기 삼거리만 그랴. 요 위에 것은 매 똑같은 것이구먼 여러 개를 달아놨네 그랴.”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말했다.
“긍게 말여. 그러니께 사람들이 지 자리에 달지를 못 허고, 여불따구에 달고 그러는 것이여. 글구 거기 그렇게 달아 놓으면 금세 찢어질 것이구먼.”
“걸 데가 없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어르신. 홍보는 해야 하고 길에다가 걸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수인이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할아버지들도 더는 말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마을 어르신들의 면박 아닌 면박을 받으면서 현수막을 달아 놓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현수막보다 한참이나 짧은 현수막은 없어도 너무 없어 보였다. 게다가 몰래 달아 놓고 가도 마음이 쓰일 텐데, 무허가 현수막을 게시하는 현장을 들키기까지 했으니 민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인은 괜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 건너편 전봇대에 달아 놓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항상 저 자리에는 아무개 지역 의원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바람길이 아닌지 게시대가 없는 자리임에도 찢어지거나 인도로 늘어지는 일이 없었다. 의원 사진까지 당당하게 박아 놓은 현수막이 바람결에 아랑곳없이 짱짱하게 달려 있었다.
‘이게 뭐 나 좋자고 하는 일인가.’
수인은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해보았지만, 그런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현수막이 떨어진 자리에 다시 현수막을 내걸면서 오래된 피로감 같은 게 밀려왔다. 인구소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시골에서 현수막 거치대가 비어 있는 날이 없다는 게 모순처럼 다가왔다.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시골에서도 개인의 경사는 철저히 사회가 정해 놓은 잦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수인은 누가 무엇을 알리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업무적인 이유로 여러 번 불편함을 겪게 되면서 마주치게 되는 풍경에 대해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프로그램 홍보가 끝나고 수인이 잠시 짬을 내어 주민 회의에 참석했다. 세 개 마을 주민들이 법인을 만들어 올해부터 사업을 시작해야 해서 모인 자리였다. 회의를 겸해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주민들은 수인을 반기며 밥과 국을 챙겨주며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마을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어쩌다 회의에 참여하면 늘 만나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반겨주었다. 세 개 마을이 모두 모이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네 딸 대학은 어디 들어갔는가?”
개암 마을 이장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초로의 남자에게 물었다. 주민 회의에는 수인의 남편 산이 주로 참석했기 때문에 수인은 가까운 이웃 외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응, 우리 딸 이번에 **대랑 **대 두 군데 붙었는데, **대로 가기로 했어,”
초로의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화색을 뛰며 대답했다. 수인은 속으로 자리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 초로의 남자가 수인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분위기로 봐서 밥 먹는 내내 딸 자랑을 할 게 분명했다.
“무슨 과에 들어가는디?”
개암 마을 이장이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초로의 남자가 뭐라고 대답했지만, 그 자리에 앉은 사람 중에 알아듣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수인조차 처음 들어보는 학과였다. 그저 초로의 남성이 들떠서 이야기하는 분위기로 봐서 입시 결과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잘 들어간 모양이구먼. 그래 거기 들어가면 졸업해서 뭘 허는디?”
이장이 수저는 들지도 않은 채 꼬치꼬치 캐물었다.
“공공기관 같은데 들어가서 일하는 모양이더라고.”
“공공기관?”
“공공기관은 어디 사라지는 기관이 아니니까, 보장된 곳이라고 봐야지. 그리고 그 학과가 취업도 거의 백 퍼센트라고 그러고…….”
“그러면, 그것도 공무원인가?”
“공무원은 아니고……. 뭐,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지.”
“우찌 됐든, 잘된 일이네, 그랴.”
이장은 아는지 모르는지 잘된 일이라고 했다. 수인은 회의 안건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빨리 마무리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밥을 먹는 내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듣고 있어야 하는 게 불편했다. 여기서 이야기가 일단락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옆 테이블에 앉아 듣고 있던 초로의 여성이 바톤을 이어받기라도 한 것처럼 질문을 시작했다.
“아이고, 따님이 엄청 공부를 잘 한 모양이네요. 취업이 보장된 학교를 그렇게 잘 들어갔으니. 그런데 포기한 **대는 왜 안 들어갔어요? 거기가 더 좋은 대학교 아니에요?”
“학과 보고 선택한 거죠.”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어볼 줄 몰랐는지 초로의 남성 목소리가 좀 전보다 낮아졌다.
“포기한 **대는 무슨 과였는데요?”
“아, 거기는…….”
초로의 남성이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하하, 어쨌거나, 축하드려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질문한 여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성의 말투가 미묘하게 무례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인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 번, 미래에 기약된 직업이 공무원이 아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싱거워하는 눈치였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수인이 면 소재지 삼거리를 지나쳐 왔다.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현수막을 게시하려고 할 때는 도무지 자리가 나지 않던 게시대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수인이 홍보 현수막을 걸 때마다 먼저 자리를 차지했던 현수막들이 온데간데없었다. 수인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란 걸. 결코 올 것 같지 않은 봄은 무심히 다가와 삼거리 주변으로 샛노란 개나리가 피었고, 겨울은 이미 까마득히 잊히고 있었다.
박진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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