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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소설. 에피소드 11. 어쩌다 생긴 선물

2024년 06월 19일 [순창신문]

 

↑↑ 박 진 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 순창신문---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사건 등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창작된 허구임을 밝혀둡니다.

기타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빠져나간 문화센터를 정리하는 시간은 밤 9시. 수인이 문화센터를 맡고부터 일주일에 하루는 홀로 야근이다. 마을에 직장이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늦은 퇴근 시간에 대한 부담이 적다. 출퇴근의 거리와 일에 대한 피로감은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걸, 수인은 5분 거리의 직장을 다니며 알게 되었다. 뒷정리와 문단속을 끝내고 나가면 텅 빈 주차장에 수인의 자가용만 덩그러니 있기 마련이다. 고즈넉한 외로움이 고여있는 주차장에 오늘은 차 한 대가 불을 켜고 있다. 갈재 이장 차다.

“이장님, 왜 안 가시고 계세요?”

“김 여사한테 전해줄 게 있는데. 오늘 수업에 안 나오셨구먼.”

“뭔데요?”

“요것이 바위솔인디, 마누라가 전해주라고 혀서. 김 여사한테 전화 한 번 넣어줄 테야?”

“전화번호 알려드릴게요.”

“이 시간에 남자가 전화하면 거시기한께…….”

“아! 네.”

수인이 김 여사에게 전화를 건다.

“여사님, 저 수인입니다. 갈재 이장님께서 바위솔 전해주신다고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하시네요.”

“바위솔은 받아둔 게 많은디 어쩔까나.”

김 여사는 바위솔에 관심이 없는 눈치다.

“이장님 바위솔이 여사님 집에 있다고 그러시는데요.”

수인이 김 여사의 말을 이장에게 전한다.

“그라면 요것은 수인 씨가 가져갈랑가?”

“이장님 잠깐만요. 여사님, 그럼 이 바위솔은 도로 가져가시라고 할까요?”

“수인 씨가 가져가시면 되겠네. 난 집에 있응께.”

“이걸 제가 가져가도 될지 모르겠네요. 이장님 사모님께서 엉뚱한 사람한테 갔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수인이 김 여사와 통화하면서 동시에 이장을 보고 말한다. 사실 수인은 식물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어쩌다 선물로 들어온 화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거기다 어부지리로 생기는 바위솔에는 욕심이 없다.

“아무렴, 나는 사실 우리 수인 씨 주고 싶었구먼!”

이왕 이렇게 된 일, 이장은 말 인심이라고 후하게 쓴다. 수인 앞으로 까만 봉지 하나를 내민다. 어두운 주차장에서 건네받은 까만 봉지. 수인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다. 살짝 귀찮은 느낌도 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주시는 분에 대한 예의로 귀찮은 내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사님, 그럼 바위솔은 제가 대신 받아 가요. 어부지리로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괜찮지.”

김 여사와 통화를 종료하고 이장님께도 인사를 전한다.

“남편이 식물을 좋아해서 가져다주면 좋아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잘 들어가게요.”

집으로 돌아온 수인은 검은 봉지째 남편 산에게 건넨다.

“웬 거야?

”바위솔이래. 센터에서 이장님이 주셨어. 자기가 좀 심어줘.”

“바위솔은 우리 집에도 있는데…….”

“우리 마당도 넓고, 빈 화분도 많아서 가져왔어. 자기는 식물 좋아하잖아.”

부지런한 산이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에 바위솔을 화분에 심어두었다. 수인은 출근길에 남편이 심어 놓은 바위솔을 곁눈질로 대충 훑고 지나친다.

“벌써 심었네.”

“요즘 날이 더워서 그냥 두면 말라버리잖아. 빨리 심어 놔야지.”

“이거 심느라고 괜히 아침부터 땀 뺀 거 아니야.”

“생각보다 양이 많더라.”

“그랬어? 무게가 별로 안 느껴져서 많은 줄 몰랐어.”

“종류별로 담아서 보냈더라고. 다육이는 나도 잘 몰라서 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더라.”

수인은 출근해야 할 남편에게 일거리 하나를 만들어준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센터를 찾은 김 여사를 만났다.

“수인 씨, 바위솔은 다 심었는가?”

김 여사가 말할 때까지 수인은 바위솔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아. 여사님 덕분에 예쁘게 심어놨죠. 감사합니다. 남편이 심었어요.”

“며칠 전에 목욕탕서 이장님 부인 만났잖아. 왜 그걸 안 받았냐고 막 안타까워 함시롱. 종류별로 일일이 다듬어서 예쁜 놈들만 골라서 담았다고 그러면서 막 속상해 하는 겨.”

“그래요? 저는, 음, 두 분이 가져가라고 하셔서……. 어쩌죠? 다시 가져다드려요?”

수인은 괜히 민망한 마음에 화분째로 갖다 드려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고것이 아니고, 수인 씨가 받았으니 괜찮다고 했어. 작년에 포크 아트 그림 그려주니라고 고생 많이 하셨잖아.”

김 여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그건 그거고. 여사님 주시려고 준비한 건데, 본의 아니게 제가 받게 된 거라…….”

“이장님이 이것저것 한다고 벌여놓고 그만둔 게 한두 개가 아니래. 포크 아트 작품은 수인 씨 아니었으면 남지도 않았을 테데. 그 많은 걸 다 그려서 줬응께, 괜찮혀!”

“이장님께서 적은 돈도 아니고 재료비 다 내놓고 안 나오셔서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그게 어디 적은 공인가. 한두 개도 아니고, 우리야 옆에서 다 봤으니 알지. 그러니까 수인 씨가 받아도 된다고 혔지.”

“주시는 분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요. 들어보니 김 여사님 생각하면서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것 같은데, 그게 엉뚱한 사람한테 갔으니 얼마나 속상하셨겠어요. 저는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까만 봉지째 건네받았네요.”

“괜찮아. 내가 설명 잘 해줬어.”

“그럼 제가 잘 길러서 분양해 드릴게요. 아! 그리고 남편이 이번에 수국 꺾꽂이를 많이 해뒀더라고요. 뿌리 내리면 좀 나눠드릴게요. 석죽 패랭이 씨앗도 나오면 챙겨드리고요.”

못 받은 사람이나 대신 받은 사람이나 서로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김 여사의 마음이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수인도 모르지 않았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수인은 남편 산이 심어 놓은 바위솔을 그제야 유심히 살펴본다. 사실 남편에게 바위솔을 넘긴 후 관심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김 여사의 말대로 제각각 모양과 크기가 다른 바위솔이다.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 그런지 주는 이의 마음도 느껴진다. 정성껏 길러낸 바위솔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로 아무런 감응도 없이 전달되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수인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며칠 뒤 문화센터로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지난 워크숍에서 경품으로 걸린 상품이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상자를 열자 도서 24권이 들어 있다. 20만 원 상당의 도서다. 경품 운은 없는 편인데, 이번엔 어쩐 일로 당첨이 되었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초등학생들이 읽기 좋은 책 12권과 학습지 12권이 들어 있다.

“올해 유월은 공으로 떨어지는 게 많은 달인가 보네! 생전 안 걸리던 경품이 다 걸리고.”

상자에서 테이프를 뜯어내면서 수인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책 12권은 센터에 두고 여러 사람이 이용하게 하면 될 것 같은데, 학습지는 센터에 두기가 모호하다. 여러 명이 풀 수가 없고, 그냥 두면 아무도 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김 여사가 떠오른다. 손주 챙기러 읍으로 종종 나가는 눈치였다. 마을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 밴드에 공유해서 나눔 공지를 할 수도 있지만 어쩐지 이번만큼은 김 여사에게 우선권을 주고 싶다. 수인이 김 여사에게 전화를 건다.

“여사님, 안녕하세요. 수인이에요.”

“네, 센터장님 어쩐 일이셔요.”

“여사님 손주가 있다고 하셨죠? 몇 학년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인디.”

“그럼 잘됐네요. 제가 지난 워크숍에서 받은 학습지 12권인데요. 초등 저학년이 풀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주시면 저야 좋지.”

“그럼. 다음 수업 때 오셔서 받아 가세요.”

김 여사는 어쩜 당장은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수인이 바위솔을 받고 그랬듯이. 하지만 선물이란 문득 준 사람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다. 수인이 이장을 위해 그려준 포크 아트 작품이 그렇고, 이장의 아내가 김 여사를 생각하며 준비한 바위솔이 그렇고, 수인이 경품으로 얻어 김 여사의 손주에게 주어질 학습지가 그렇듯. 어쩌다 생긴 선물들은 또 그렇게 돌고 돌아 주는 이의 마음이 한발 늦게 도착하는 것이다.


박진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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