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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킬과 부처님 오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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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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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서 영 / 작 가 | ⓒ 순창신문--- | |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은 5월 15일, 수요일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하며 깊다.
도로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은 특히 시골길에서는 로드킬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몇 년 전 순창군립도서관 상주작가를 한 뒤, 야간 사서를 한 적이 있다. 퇴근 시간은 11시 10분이 넘었다. 밤길에 두 번쯤 로드킬을 만난 적이 있다. 마음이 무거웠다. 차가 고장난 것은 그렇다고 치고 그들의 목숨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
로드 킬이란 '차에 받혀 죽은 동물' 또는 '차에 동물이 받히는 일'을 뜻한다. 자동차가 등장한 20세기 초반부터 모든 산업화 국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2006년,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동물이 5,600마리에 이를 정도였다고 다음백과에 기록되어 있다. 노루, 고라니, 개, 고양이, 오소리 등 다양한 동물들이 로드킬에 의해 희생된다. 산업화로 인해 도로가 생기고 새로운 길이 끊임없이 생기니 동물들이 이전에 다녔던 길이 차단되어 버렸다. 그들 또한 부단히 이동해야 할 텐데 이동 경로가 중간에서 끊겨 버렸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별도의 생태 통로를 만들거나 운전자 주의 표지판을 설치해 그들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물과 인간들의 경로가 겹칠 때 로드킬은 피할 수 없는 재난이 되곤 한다.
나는 인문 강의를 위해 부지런히 직접 운전하면서 전국을 누볐다. 동두천 영재교육원에서 강의할 때는 왕복 12시간 운전한 적도 있다. 하여 내 차는 36만 킬로미터 이상을 주행했다. 잔고장이 잦아졌다. 차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잠이 부족해 늘 졸음 운전하는 것이 걱정인 나의 어머니와의 협업으로 새 차가 하늘빛 정원에 도착했다. 6개월쯤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 장성담양간 도로를 운전하는 중이었다. SNS 대행 상담을 위해 이동 중이었다. 이 도로는 차량 통행이 많은 편은 아니다. 주말이나 되어야 연속적인 차량 행렬을 볼 수 있을 뿐 평일에는 간간이 이웃 차량들을 만나는 한적한 도로다. 양방향 4차선 도로이다. 나는 장성에서 담양으로 가는 도로 2차선에서 운행 중이었다. 속도는 80킬로미터 안팎이었을 것이다. 약속 시간은 10시인데 막 10시로 숫자가 바뀌고 있다.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차에 급격한 충격이 왔다.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멍한 상태였다. 2차선을 달리는 중에 갑자기 고라니가 뛰어든 것이다.
로드킬을 만나면 핸들을 꺾어서는 안 된다고 선배들이 조언해주었다. 핸들을 꺾으면 차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지 핸들을 돌리면 죽을 위험이 매우 높다고 알려준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차가 핸들을 돌리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며칠 동안 로드킬의 충격에 빠져 있었다. 내가 하늘빛 정원을 출발한 것은 9시 34분, 고라니와 부딪힌 시간은 10시 1분쯤 되었을 것이다. 내가 조금만 빠르거나 조금만 느리게 운전했다면 로드킬은 면할 수 있었을까.
부잣집에서 평생을 일하던 집사가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왔다. 주인이 물었다. "왜 그렇게 사색이 되었느냐."
집사가 답했다. "시장에서 저를 쫓아오는 죽음을 만났습니다."
주인도 놀랐다. 평생 자신을 위해 애써 온 집사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싶었다. 주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죽음으로부터 먼저 피하고 봐야지. 평생 나를 위해 고생했으니 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게. 이곳이 아니면 더 안전하지 않겠나."
집사는 주인에게 감사하며 고개를 몇 번이고 숙이며 인사했다. 집사는 부지런히 말을 달려 고향 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 당산 나무가 보이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잠시 쉬어가려 말에서 내렸다. 놀랍게도 죽음은 이미 도착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이 말했다. "자네가 죽을 장소는 주인 집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었다네. 잘 도착했네."
영성가 오쇼 라즈니쉬를 통해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바꿀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있게 마련이다. 이 이야기는 나를 매우 겸손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일생을 산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지만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일회성이며 리허설도 없고 과거를 바꿀 수도 없다. 미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더듬더듬 지금, 여기에서 과거를 재해석하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대개 무언가를 갖게 되면 그것이 원래부터 '내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산다. 명예, 권력, 욕망, 부유함 등 내게 껍질과 같은 것들이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면서 산다. 내 얼굴, 내 몸뚱이, 내 주변 환경 등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부끄러워하거나 자긍심을 느끼며 산다.
잠시 이 지구별에 머물다 100여 년 정도 지구별을 걷다가 지구별을 떠나는 게 우리 인간이다. 나라는 이름으로 산다고 나와 타자를 구별하고 남보다 더 잘산다고 우쭐하고 남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우쭐하고 남보다 더 건강하다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애초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내게 주어진 게 있으면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당연한 것은 없다. 장애로 태어나는 게 당연한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게 당연한가? 귀 하나 없는 게 당연한가? 귀 코 입 다 있는 게 당연한가?
고라니와 로드킬을 경험하면서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만났다. 고라니가 혹여 자살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무모한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의 논리로 보면 그 짧은 거리에서 속도를 내며 달려오는 육중한 차의 무게감과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그는 혹시 삶이 너무 힘들어 자살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데 혹시~.
우리의 삶. 꼴랑 100년이다. 생물학적으로 늙어간다는 것은 겸손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이 겸손은 배우는 자세를 놓치면 결코 얻을 수 없다. 학교에서의 배움은 극히 짧다. 삶이라는 긴 여정 자체가 배움터이다. 배우는 것을 멈추면 인간은 늙는다. 배워야 깨닫는다. 로드킬을 만나면서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생명은 너나 없이 귀하다. 누구의 목숨값에 경중이 있을 수 있을까. 부처님 오신 날. 왜 인간이고 왜 동물일까 질문한다. 왜 삶이고 왜 죽음일까 질문한다. 삶 속에 이미 죽음이 공존한다. 죽음으로 완결되는 삶.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고라니를 위해 합장했다.
이서영 / 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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