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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6. 불편한 혜택

2024년 01월 24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사건 등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창작된 허구임을 밝혀둡니다.

수인은 현관 앞에 가만히 서서 아이의 등굣길을 바라봤다. 윤은 등교 시간에 맞춰 너른 마당을 자박자박 걸어나가 밤나무가 길게 가지를 내어 아름드리를 이룬 곳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나지막한 담장 너머에서 딸아이가 수인을 향해 몸을 돌려 손을 흔들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인도가 없는 시골의 이차선 도로로 윤이 걸어 나갔다. 인적이 드문 마을엔 신호등도, 도시에선 지나치게 많았던 과속 단속 카메라도 없다. 아침이면 마을을 지나는 출근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속도를 냈다. 오래전 건넛집 노부부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그곳에 과속 방지턱이 만들어졌지만, 오랜 세월 탓인지 완만하기만 한 방지턱은 사고의 섬뜩함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차들은 여전히 제한 속도를 훌쩍 넘어 위협적으로 내달렸다. 노란 통학버스가 굽은 도로를 따라 들어오고 윤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렇게 아이의 등굣길을 바라보는 시간부터 수인의 불안이 시작됐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나와 시간이 멈춘 공간으로 들어와 살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곳에선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다. 도시의 삶을 접고 시골로 들어온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여행을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렇게 느리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예전엔 없었던 여유가 막연한 불안함으로 밀려왔다.

전교생을 다 모아야 열댓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것은 수인으로선 많은 것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 산의 말처럼 자연을 통해 아이가 보고 느끼는 것이 더욱 많을 것이고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순박한 아이로 잘 자라줄 것이라 믿었다. 윤은 시골 학교의 생활에 적응했는지 감기 기운이 있어 얼굴이 상기된 날에도 기운 없는 몸을 추스르고 학교에 가고야 말았다.

“윤아, 열도 나는데 집에서 쉬는 게 좋겠다.”

“그럼 엄마 조금 쉬었다가 중간에 학교 가면 안 돼?”

“좀 쉬어야 열이 내리지, 무리하면 덧나.”

“그래도 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하단 말이야.”

이렇게 졸라대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기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학교를 보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학교는 점점 가고 싶지 않은 학교가 되고 있었다.

“엄마 나 통학버스 안 타고 다닐래.”

“왜 그러는데?”

“6학년 오빠들이 막 욕하고 동생들 벌세우고, 핸드폰 한다고 소리 지르고……”

“버스 안에 지도 선생님 안 계시니?”

“계시는데, 6학년들이 알아서 동생들 교육하라고 하고 상관 안 하셔. 비 오는 날 남자아이들 비 맞으면서 엎드려뻗쳐도 하게 했어. 자기들은 핸드폰 하면서 저학년생들이 핸드폰 꺼내면 엄청 소리 지르고 욕해!”

“그런지 얼마나 됐어?”

“처음부터 욕하고 그랬는데,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나 버스 안 타면 안 돼?”

“그래 엄마가 데려다줄게. 학교 선생님께도 전화해서 지도해달라고 하자. 걱정하지 마.”

풍요 속의 빈곤처럼 시골 학교에 주어지는 각종 혜택이라는 것이 이런 수준이었다. 1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을 위해 통학버스와 지도 선생님까지 배치되었지만 정작 아이들은 불편한 버스……. 수인은 곧장 부장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했다.

“어머님, 윤이 얘기만 듣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고요. 일단 설문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여태껏 한 번도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보니 저희도 당황스럽네요.”

수인은 통학버스 운행에 대해 단 한 번의 불만 접수가 없었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윤처럼 집에서 통학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부모에서 말하는 아이들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으므로. 6학년들이 내뱉었다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은 버스 안에 동승하고 있던 지도 선생님과 버스 기사 아저씨도 들었을 텐데, 모두 방관하고 있었다는 얘기이기에……. 아니 6학년에게 동생들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권한을 부여한 사람이 지도 선생이 아니었던가.

며칠 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님, 설문조사를 해 봤는데요. 윤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일단 통학버스 지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고요. 6학년 학생들이 동생들을 혼내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연락하셔서 감사합니다.”

학교에서 연락받은 다음 날부터 윤을 통학버스에 태워 보냈다. 얼마 뒤 학교에서 아나바다 행사가 있어 학부모들이 모인 날이 있었다. 통학버스 안에서 욕설하고 동생들을 벌세웠던 학생의 어머니도 행사에 참여했다. 수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가해 학생의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모습을 드러내며 인사를 받지 않았다. 통학버스 사건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생각보다 심각한 피해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가해 학생을 불러 타이르는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학교에서 어떻게 일을 처리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인의 입을 통해 신고가 들어갔다는 것을 학부모들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머니 중 몇몇은 수인이 있는 곳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마치 수인 이전엔 민원이 접수된 적이 없는 해가 없는 곳에서 수인만 유별난 학부모가 된 기분이었다.

통학버스 문제로 불편한 마음을 잊게 될 즈음 윤이 안내장을 가져왔다. 체험학습의 하나로 7월에 일본 나고야를 방문하여 홈스테이 체험과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을 통보해온 것이었다.
수인은 2년 전 발생한 원전 사고로 일본 방사능 오염 문제가 걸렸다. 왜 하필 원전 사고까지 발생한 일본을 택한 것인지 께름칙한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진으로 인한 피해 소식이 있었고, 여전히 여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고야 체험학습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듣게 된 건 설명회에 참석한 자리에서였다. 사회를 맡은 교무부장 선생은 작년과 비교해 교육예산이 줄었지만 체험활동 내용이 축소되지 않도록 학교 측에서 각별히 신경 썼다는 것을 강조했다.

“교육예산이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체험활동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오륙 학년까지만 계획했던 일본체험이었지만 인원을 좀 더 늘였으면 좋겠다는 일본 측의 요청에 따라 삼사 학년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삼사 학년이 운이 좋은 것 같죠.”

작은 분교에서 두 학년을 모아 봐야 열 명을 넘기기 어려운 수준이다 보니 당초 계획에 없었던 저학년까지 일본행에 끼게 되었다. 젊은 교무부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시골 학교에서 특별한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자랑스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 대해선 왠지 혜택을 본다는 느낌보다 잘 정비되지 못한 허름한 버스에 아이를 태우는 것처럼 불안했다. 원하지 않았고 유해하기까지 한 음식을 억지로 삼키는 기분이었다. 산 또한 딸아이 윤을 나고야로 보내고 싶어 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학생들의 안전도 염려했다.

수인은 방사능 오염지역이 표시된 자료와 여진의 위험성을 근거로 담임선생님과 학부모회장에게 나고야 여행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어떤 재고의 제스처도 없이 이미 계획된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결국 윤 혼자만 여행에서 빠지게 되었다. 윤을 제외한 반 친구들이 여행 준비를 위해 함께 일본어를 공부했고, 자매결연을 한 학교에서 선보일 공연 준비로 똘똘 뭉쳐 다녔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자기들끼리 여담을 나누면서 윤은 자연스레 소외되었다. 수인과 산은 아주 오랫동안 윤에게 여행을 보낼 수 없었던 이유에 관해 설명해야 했고, 소외감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야 했다.

도시를 떠나 시골을 찾았을 때는 수인은 나름대로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일테면 학교 주변에 구멍만 한 문방구조차 없는 환경에서 논두렁과 밭두렁을 온몸이 꼬질꼬질해지도록 뛰어다니며 자라주는 것.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시골 학교에 투여되는 넘치는 예산을 모두 소진해야 해서인지 어떻게 해서든 행사를 만들어 틈만 나면 아이들을 도시로 데리고 다녔다. 기껏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더니 빙상경기장과 놀이공원,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학교라니……. 도시에서의 무의미한 소비패턴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학교 측의 논리는 이랬다.

“시골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도시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농사짓느라 아이들과 함께 도시로 나가지 못하는 농촌 사정을 고려하여 다소 번거롭더라도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거죠.”

수인은 마치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을 대하는 것 같은 교육자들의 태도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고요히 풀벌레 소리를 듣고 어느 계절에 어떤 풀과 꽃들이 향기를 뿜어내는지 그저 무심히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골의 교육환경이 도시와 해외를 동경하는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더욱 커질 뿐이었다. 앞으로도 불편한 혜택은 수없이 주어질 것이고, 주어지는 혜택을 받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에 따른 소외감과 불편한 기류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막상 어린 윤이었다.

박진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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