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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3. 목화솜 이불

2023년 05월 31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사건 등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창작된 허구임을 밝혀둡니다.

고도가 높은 갈재 마을에 단풍이 절정을 이룰 무렵, 영재의 목화밭은 아직 수확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하얀 솜이 탐스럽게 영글어야 할 다래가 말라비틀어졌다. 영재는 드물게 보이는 목화솜을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요것을 뭣 헌다고 따고 있냐. 확 갈아서 엎어 버려야제. 어디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시원찮은 종자를 가져와서는, 쯧쯧…….”

영재의 아버지는 바싹 말라버린 목화밭에서 수확을 시작한 영재에게 다가와 면박을 줬다.
“농사지어서 기른 것인데, 수확은 해야 할 것 아녜요.”

영재는 수확 시기를 놓쳐 안 그래도 심사가 복잡했다. 그런데 밭까지 좇아 나온 아버지의 잔소리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설움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금세라도 터져 나올 기세였다. 여름에 농진청에서 검사관이 나와 엘엠오(LMO, 유전자 변형 작물) 검사를 실시했다. 1차 검사에서 엘엠오 의심 판정을 받아 격리되었다가 2차 정밀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와 격리 조치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9월 초까지 격리 조치를 받는 동안 목화밭에 약을 뿌리거나 물을 주지 못했다. 그 사이 목화 다래에 병해충이 와서 썩어 버리고 크지도 못한 채 말라버린 것이다. 올해의 수확량은 다 끌어모아 봐야 오십 킬로그램이 채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목화는 수요도 적고 판로를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영재가 목화를 재배하는 목적은 이불집에 솜을 팔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플라테라피와 체험 농장을 경영해볼 생각이었다. 영재는 군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조선소 협력업체인 공업사에서 선박 부속품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 몇 해 전 군산의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한때 협력업체였던 공장의 기계도 같이 멈춰버리게 되었다. 조선업의 불황에 이어 키코(KIKO) 금융사태까지 겹치면서 조선업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조선소가 문을 닫고 부속품을 만들던 공장 마저 떠나버려 폐허가 된 군산에 기계쟁이들이 남아 있을 이유가 더는 없었다. 그때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지의 권유로 고향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한 영재에게 이곳의 생활은 너무나 적막했다.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사는 시골은 어느 마을에 누가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마을에 청년회가 있긴 했지만, 말이 청년회지 60대가 대부분이었다.

영재는 농진청 홈페이지에 엘엠오 검사로 인해 목화를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민원을 넣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영재는 농진청까지 직접 찾아가게 되었다.

“죄송하다고만 하시지 말고요. 1년 농사가 다 날아가 버렸는데, 이런 식으로 나 몰라라 하시면 곤란하죠.”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만 돌아가 주세요.”

“수확 시기를 고려해서 검사해 주시던가, 피해 농가에 대한 보상 대책을 세워 주셔야지, 농민이 무슨 호구도 아니고 손해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건가요?”

“호구라니요! 거 참, 1차에서 의심 반응이 나오니 검사에 들어간 거고, 우린 우리 할 일 한 것뿐입니다.”

“적어도 농진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라면 농산물의 생육 특성과 수확 시기, 그 피해 상황까지 고려해서 일을 처리해 주셔야지 그런 고려 없이 내 할 일만 했다고 하면 다인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상해드릴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게 탁상공론 아닙니까?”

“탁상공론이라니요!”

주름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머리카락이 새치로 뒤덮여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직원이 팔짱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제가 발생하면 농부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는 게 세상천지에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요!”

처음엔 죄송하게 되었다며 난처한 표정을 짓던 담당자도 상사들까지 앞세우며 숫제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식이었다. 직원들은 치기 어린 젊은 농부를 그 자리에서 얼른 치워버리고 싶은 사람들처럼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직원들과 말씨름 끝에 쫓겨나듯 사무실을 나왔다. 영재는 자신이 패배한 싸움닭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까지 홀로 싸워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공공기관의 사람들과 등을 지고 또 무슨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생겼다. 토종 목화를 키우는 농가가 거의 없다 보니 함께 머리를 맞대어 볼 만한 작목반도 없었다. 끊임없이 길을 헤매는 막막함과 혼자라는 외로움에 내몰리는 기분이었다.

영재의 차가 가을 절정기에 이른 갈재의 굽은 길을 따라 내려갔다. 유난히 붉게 물든 단풍길을 따라 20여 분을 달려 정읍에 있는 샘고을시장에 도착했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기름집과 장고와 북을 천장까지 쌓아 놓은 남루한 악기집을 지나면, 한자리에 오래도록 눌어붙어 떼가 낀 솜틀집이 나왔다. 솜틀집은 100년이 넘은 재래시장만큼이나 늙었다. 사람들의 이목에서 멀어진 유물처럼 낡아버린 솜틀집, 주인장은 그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솜틀기에 들어간 목화솜이 씨앗과 분리되어 하얗게 부풀어 올랐다. 말라붙은 다래를 끌어모아 수확한 목화는 어느새 이불 한 채를 너끈하게 만들 수 있는 모습으로 펼쳐졌다. 영재는 준비해온 광목천을 주인장에게 넘겼다. 주인장은 순식간에 목화솜 이불 하나를 군더더기 없이 뚝딱 만들어냈다.

“요즘 국내산 목화는 보기도 힘든데, 귀한 이불 만들어 가는 게요. 몇 년에 한 번씩 솜을 털어주면 평생 쓸 수 있는 게 목화솜이지…….”

솜틀집 주인은 묵직한 이불을 단정히 포장해 건네주었다. 장인의 솜씨는 남루한 것들도 품격을 지니게 했다.

“말라 비틀어진 다래에서 솜 딴다고 타박을 했건만, 목화솜 이불을 만들어 와버렸네…….”

나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아버지가 영재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목화솜 이불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수확할 때 마음이 짠 혔는디. 고생혔다, 영재야! 참말로 따뜻하구먼. 당신도 구박만 말고 영재 좀 잘 도와주시요잉.”

어머니가 뻘쭘하게 서 있는 영재의 손을 잡아끌어 앉히며 목화솜 이불을 덮어주었다. 부모님과 함께 이불을 덮으니 코끝이 쨍하니 아려왔다.

“너는 사내 아닌겨. 요런 일루다 눈에 물기를 비치면 쓰것냐! 앞으로도 이보다 더 거시기한 일도 많을 것인디. 정신 바짝 챙겨야 혀.”

아버지의 시선이 가을볕에 까맣게 그을린 영재의 얼굴에 가만히 머물렀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버지의 왼쪽 팔이 아들의 어깨를 감샀다. 달도 어둠 쪽으로 기우는 밤이었다.

박진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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