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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5. 팜 파티

2023년 09월 13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사건 등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창작된 것임을 밝혀둡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팜 파티가 있기 며칠 전 영재와 현민이 읍에 있는 식당에서 만났다. 얼핏 보면 육개장 같아 보이는 붉은색 곰탕이 나왔다. 넓적하고 얇게 썬 쇠고기 편육을 곰탕 국물과 함께 떠먹으니 그간 가을걷이에서 쌓였던 피로가 한결 풀리는 것 같았다. 곰탕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영재가 입을 열었다.

“귀농 학교 출신들은 요즘 어때?”

“그쪽도 편차가 크지, 몸만 내려온 애들은 아직 집도 못 구해서 허덕이고, 일 배운답시고 농가에서 품이나 팔고 있는 수준이지.”

“참, 언제 돈 모아서 언제 집 사고, 땅 사고…….”

“몇 년 못 버티지. 그런 식으로는……, 여기서 뿌리 내리지 못하면 짐 싸서 가야지 어떻게 할 거야. 농촌에서 몇 년 동안 있다가 도시로 다시 나가면 시간 낭비만 하고 가는 거야.”

“자본 없이 오더라도 농촌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기반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당장 살 집부터 제공해주고 안정된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농촌 안 떠나지.”

“그렇게만 되면 청년들도 시골로 많이 오게 되겠지,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는 그 정도 복지 수준이 안되니까.”

“그래, 정부도 자꾸 내놓는 정책이 돈으로 사람 끌어들이려고 하지 기반을 만드는 데는 적극적이지 않거든.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고, 정작 필요한 건 잘 반영해 주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야.”

“매달 100만 원씩 준다는 것도 몇 명에 한정된 지원 방안이고,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긴 하지. 청년 농부 10만 명을 목표로 잡고, 귀농 3년 미만인 사람들만 한정적으로 지원했잖아. 수혜자의 약 70퍼센트 이상이 귀농 예정자들이라니, 돈으로 귀농 인구 늘리고 보자는 식인 거지.”

“그나저나 올해 가을걷이한 걸 팜 파티에 내놓아야 하는데, 나는 수확한 것도 시원찮아서, 이번에 참여 안 하고 싶다, 정말…….”

“그래도 시농(시작하는 농부들) 리던데 없으면 안 되지. 그날은 그냥 다 내려놓고 서로 위로하면서 보내자고.”

“참! 그날 실습농장에 대해 논의할 것도 있고, 나는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도 없겠는걸…….”

매년 하는 가을걷이지만, 청년 농부들에겐 농사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막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약 치는 시기가 조금만 늦어져도 바이러스가 퍼져 몇 년을 기다린 첫 수확의 기대가 무너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한 작물만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혼자 힘으로 여러 작물을 생산하기도 쉽지 않았다.

가을걷이가 시원찮을 땐 팜 파티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시농 회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영재의 고민과 그들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서 끙끙 속앓이하던 일들이 얼마간 해소되기도 하고 세상에서 내 편을 얻은 것 같은 위안을 받을 때도 있었다. 목화솜을 망쳐버린 영재는 올해는 정말 흥성거리는 파티에서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 농업기술센터에서 공용실습농장 마련을 위한 설명회가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시농의 리더로서 청년 농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의견 청취를 위해서라도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시농 회원 중 가장 어린 미래가 그곳으로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녀를 보기 위해서라도 팜 파티에는 가야만 했다. 처음엔 귀여운 여자 동생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시농의 모임이 있는 날이면 모임 장소로 가는 내내 마음이 설렜다.

시농이 팜 파티를 열기로 한 날이 되었다. 이날은 청년 농부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싼값으로 판매하기도 해서 농부가 아닌 사람들도 팜 파티 장소를 찾기도 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회원들이 함께 준비한 춤을 선보이기 시작하자 제법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현민의 기타 연주와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흥성거리는 장터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회원들의 무대를 구경하다가 판매대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장터의 분위기가 무르익도록 영재가 기다리는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영재는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을 놓친 건 아닌가 싶어 장터 코너 구석구석을 살폈다. 장터를 가득 메우던 구수한 삼겹살 굽는 냄새가 흩어지고 각 농가에서 준비한 음식들과 뽀얀 가양주가 동날 때까지도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날이 너무 어두워져 회의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영재는 마지막으로 장터를 둘러본 뒤 회원들을 테이블로 불러 모았다.

“농업기술센터가 경영 실습 임대농장을 조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조사와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청년 농부들의 의견을 취합하기 위해 저에게도 여러 차례 의견을 물어왔었습니다.

내년부터 향후 5년 동안 사업이 진행될 거라고 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에 대한 설명회가 개최될 것인데요. 그 전에 우리가 청년들을 위한 실습 농장이 생긴다면 어떻게 구현되길 바라는지를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설명회 당일 농업기술센터 측에 우리들의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천천히들 생각해 보시고 이 자리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들은 따로 정리해 의견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영재는 이야기의 끝에 설명회에 참석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 영재는 청년단체 조례제정을 위한 간담회의 장면을 떠올렸다. 청년회 회장들의 기에 눌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간담회 전에 사전 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이나 의견을 취합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청년 농부들의 정착을 위해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마련하는 사업인 만큼 이번에는 준비를 제대로 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싶었다. 회원들은 농사를 지으며 부딪히게 되는 어려운 점들과 정부나 군 차원에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첨단 설비가 갖추어진 실습 농장을 만드는 것 같은데, 청년들이 몇 년 동안 첨단 시설에서 실습하다가 실제로 개인이 농사를 지을 때는 그런 첨단 시설을 갖추기 어려울 텐데 실제로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농산물을 성공적으로 재배한다고 해도 지금으로선 생산유통과 관련된 지원이나 교육이 부족한 것 같은데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공시설 설비와 제품화 여건 구축에 정성을 들여서 실습 과정 중에도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청년들의 문화공연 시설, 체험 학습장, 상표를 찍어낼 수 있는 3D프린터, 회의장 등도 갖춰지면 좋겠습니다.”

시농 회원들은 최첨단 시설에 열광하기보다 자신들이 농업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농업기술센터 농업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청년, 부모님의 농장에서 일하거나 다른 농가에서 일하는 청년 등 이미 농업에 몸을 담고 있는 회원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영재는 회원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메모해 두었다.

팜 파티에 모인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아직 농사지을 땅을 가지지 못해 다른 농장에서 저 임금으로 일하고 있었다. 농사를 배운다는 명목으로 저임금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지만,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는 농가가 없었기 때문에 앞선 기술을 배울 기회를 좀처럼 얻기 어려웠다.

경영 실습 임대농장이 마련된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었다. 파티의 끝엔 허무감이 밀려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마음에 쌓인 막막함을 조금 밀어낸 기분이었다. 파티의 끝에 회의를 연 보람은 엉뚱한 곳에서도 나타났다. 여느 때와는 달리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비틀거리며 추태를 보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티의 끝엔 한구석에서 널브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고, 부스를 걷어낸 자리에 남몰래 쏟아낸 토사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회의가 끝나갈 때쯤 미래가 돼지 농장에서 일하던 작업복 차림 그대로 장화를 신은 채 파티장으로 들어섰다. 급히 오느라 바싹 마른 목을 적시기 위해 자리에 놓여 있는 음료수병을 열어 한 모금 마셨을 때 영재가 다가갔다.

“미안해, 교대해주기로 한 아저씨가 늦게 나오시는 바람에……. 파티는 몰라도 회의엔 참석하려고 했는데 벌써 끝난 거야?”

미래가 다가온 영재에게 말했다.

“응, 회의는 잘 끝났고, 회의내용은 정리해서 회원들에게 다시 한번 공지할 생각이야. 농업기술센터에서 설명회 개최하는 날은 제때 참석해라.”

빤히 쳐다보는 영재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미래가 고개를 돌렸다. 미래의 두 볼이 빨갛게 상기되는 바람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 더욱 앳돼 보였다. 영재는 번져나가는 미소를 감추지 않은 채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잘려 나간 벼의 아랫동아리 위로 눈처럼 하얀 서리가 내릴 무렵이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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