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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2023년 09월 06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늦은 장마가 멈칫거리는 오후 나절 순창을 넘어오는 비홍재 꼭대기에서 불현듯 이생진 시인의 한마디가 척수를 간지럽힌다.

반듯한 정신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그래서 더욱 팍팍한 시절이 도래할 거란 인식의 불안함 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뉴스가 들리지 않는 혼돈의 시대에 정치인으로 법률가로서 느끼는 책임과 절망도 함께한 듯하다.

몇일 전 국방부와 육사에서 발표한 뜬금없는 역사 논쟁에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육사 교정에 있던 홍범도, 이회영, 이범석, 김좌진, 지청천 이상 다섯 분의 흉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 하겠다는 뜻을 표명하였으나 여론이 들끓자 슬그머니 홍범도 장군을 제외한 네 분은 이전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애시당초 얼마나 즉흥적이고 명분 없는 결정 이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 강점기에 공산주의 경력과 자유시 참변 때 민족진영 독립운동가 학살에 개입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추측성 논거들 (극우 유투버 주장)을 흘리며 제외 이유를 설명하였다.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일제 강점기 무장 독립운동의 시기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방법의 문제가 우선하지 않았을까? 그 엄혹한 시절 무장 독립운동의 두 축 이였던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 모두 방법의 차이는 존재 하였으나 궁극적 목표는 일제를 몰아내고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는 뜻에는 함께 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몇 해 전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자유시 참변과 관련해서는 이번 발표와는 상반된 내용을 기술하기도 하였다. 학계에서는 자유시 참변과 홍범도 장군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이미 여러 논문으로 설명하였다.

안타깝게도 국방부의 이번 결정 과정에서 학계에 문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와 논의하지 않은 국방부의 일방적 주장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며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다.

무릇 역사는 정권이 상상하는 게 아니고 양심 있는 학자와 깨어 있는 시민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동감은 당연한 몫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독재 시대가 아닌 민주 공화정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미칠 듯이 가슴 뛰게 했던 봉오동전투가 미화된 역사가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의 호도는 멈춰야 한다. 봉오동전투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부인과 큰아들이 구속되어 갖은 고문에 힘들어했을 즈음 장군을 회유하려 또 다른 아들을 보냈을 때 대노(大怒)하며 금쪽같았을 아들에게 총을 쏘며 대의를 지키려 했던 그 큰 뜻과 아버지로서의 슬픔을 감히 판단하려는 게 잔인하다.

먼 훗날 역사는 지금의 시대를 예의 없는 야만의 시대로 서술하지는 않을까?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문재인 등 역대 대통령들이 진보, 보수의 이념을 넘어 추진했던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예우나 평가 들을 육사 졸업생 일부와 국방부 관료 몇 사람이 판단해서 바꿨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얼마 전 고 채수근(남원출신) 상병의 순직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서도 밝혀 졌듯이 더 높은 윗선이 부정하게 개입되었다면 당장 멈추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해묵은 이념 갈등의 아젠다가 아니고 상식과 비상식, 정의와 불의, 예의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국회에서 호남지역 현역 국회의원 16명이 모여서 ‘전라도천년사’와 관련 왜곡 서술된 내용에 대해 토론회를 연 적이 있었다. 물론 필자는 아직 자격이 충분치 않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머지않아 꼭 한번 지면을 통해 필자의 의견을 전할 생각이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전라도천년사’란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이하여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호남권 3개 지자체가 함께 추진한 사업이다.

역사,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공동 편찬 역사서로, 전라도 지역의 안내서이자 한국사 속 전라도의 위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초석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내용은 상당히 부실하다고 평가된다. 지명과 관련해서 일본서기에 의존한 부분이 있고 강단 사학자들의 소신(?) 있는 의견만이 인용되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검증을 새로 하여 원점에서 제작하자는 의견이 상당하다. 늦었지만 박수 칠 일이다.

역사란 이렇듯 특정 집단이나 세력에 의해 정의될 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갈등을 유발한다. 감내해야 할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미래로 가야 할 국운이 동력을 상실한다.
모든 게 상식과 정의에 맞게 재 정비 되어야 한다.

너무 늦지 않기를 소망한다.

우리 세대는 역사의 연결고리지 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희승 / 더불어민주당 남원임실순창 지역위원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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