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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4. 청년 단체

2023년 07월 19일 [순창신문]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사건 등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창작된 허구임을 밝혀둡니다.

영재의 목화 수확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와중에 일호가 일부러 전화를 걸어 군청에서 주최하는 청년단체 조례제정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청년단체 조례제정 담당자인 일호는 영재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기간이다. 영재는 목화 수확으로 아무런 수익이 없는 상황이라 제 코가 석자였다. 하지만 일호가 어찌나 간곡히 부탁하는지 잠시 짬을 내어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엔 귀농한 청년들과 이미 마을에서 터를 잡은 청년회 사람들이 참석했다. 간담회의 첫 번째 안건은 ‘청년단체에 해당하는 대상의 나이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였다.

“정부에서 청년의 나이를 39세까지로 정하고 있지만, 우리 지역은 청년들이 적기 때문에 20세부터 49세까지로 정해야 단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일호가 먼저 간담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일호가 모두 발언을 끝내고 마이크를 끄자, 갑자기 실내가 조용했다. 참석자들이 멀뚱멀뚱 주위만 살피고 있을 때, 현민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다.

“20대 청년들은 사십 대를 부담스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20살 이상 차이가 나게 되면 고민의 내용도 다를 것이고 가치관 차이도 커서 같이 묶여서 활동하기가 불편할 수도 있어요.” 올해로 귀농 3년 차에 접어드는 현민이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40세를 막 넘긴 현민은 정부 기준으로 한다면 청년에 해당하지 않는 나이였다.

“하지만 현재 각 마을의 청년회는 오육십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청년회 사람들은 청년단체에서 모두 빠지게 되는디요. 청년회가 엄연히 존재허는디, 이 사람들을 모두 제외하면 시끄러울 것인디…….” 월곡 마을에서 온 청년회 대표가 말했다.

“어차피 정부에서 말하는 청년 농부는 이제 막 시골에 들어와 기반을 잡기 위해 시작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들이 농촌에 정착하는 것을 돕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삼십대로 정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현민이 청년 농부 지원책의 취지를 근거로 대답하자 회향 마을에서 온 청년회 대표가 잔뜩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라면 우리더러 청년 농부 지원을 받지 말라는 말이요, 시방. 몇 명 되지도 않는 젊은 사람들끼리 나눠 먹어야 쓰것다 이거요.”

마이크를 켜지 않은 청년회 대표들은 자기네들끼리 웅성거리다가 “쳇”, “허참”과 같은 쇳소리를 흘렸다.

“저금리 대출에 이어 아예 한 달에 한 번씩 지원금을 개인에게 직접 넣어주는 방식까지 정부 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청년단체에 소속되고 안 되고가 별일이 아닌 거요.”

율과면 청년회 대표가 마이크도 켜지 않은 채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진행 석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일호가 마이크를 켰다.

“이 자리는 정부 지원의 수혜 대상을 정하는 자리는 아니고요. 정부에서 지원이 내려온다면 지원 범위나 대상이 정해져서 나올 겁니다.”

“고것이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여. 그라면 조례제정은 왜 하는 것인디요. 시방 내 말이 틀렸는가.”

청년회 대표들도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의견을 말하자 간담회장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영재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문제는 정부 지원을 누가 받고 못 받고를 떠나서 청년층을 이렇게 폭넓게 정해버리면 모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세대 간 차이도 있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나 놀이도 다를 것이고, 이건 아무리 봐도 같이 함께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청년단체를 같이 놀자고 만드는 것이요? 농사를 지으려면 형님들 조언도 듣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친해지는 것이제……, 매 노는 것만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일이요 요것이.” 월곡면 대표가 서늘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냉랭한 말투에 비아냥이 묻어났다.

“꼭 놀자고 그러는 것보다, 농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힘들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민의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사십 대 후반은 중년층에 가깝고,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있는데, 이삼십 대는 애초에 농사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영재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아래에 두며 말했다. 입을 열면 열수록 말꼬리를 잡히는 것 같았지만 이대로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게 더 문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영재의 발언이 청년회 대표들에게 순순히 먹혀들리 없었다. 청년회 대표들은 앞다투어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뭔 얘기를 헐 것이여. 청년 농부네 어쩌네 하면서 들어와서 도대체 자기네들이 하는 것이 뭣이어요. 맨날 몰려다닐 줄만 알았지 농사짓는 법은 지대로 알기나 허고……참나!”

“39세 꺼정 딱 잘라버리면, 청년이 한 사람도 없는 마을도 있을 것인디 고것은 어쩔 것이요. 마을에선 멀쩡히 청년회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청년 단체에 가입할 수 없다는 얘기 아니여.”
귀농 학교를 통해 시골로 들어온 젊은이들과 자체적으로 단체를 만들어 이미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자리에 있었지만 분위기를 살피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입을 열지 못했다.

청년단체 조례제정을 위한 1차 간담회는 어떤 결론으로 도달하지 못한 채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고 끝나 버렸다. 한 달 후 2차 간담회가 열렸다. 영재는 이날 농진청을 찾아갔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간담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간담회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중간 지원 단체장들까지 참여한 자리가 되었다. 1차 간담회에서 아무런 결론도 없이 답보 상태로 끝나버리게 되자 일호는 단체장들이 객관적인 의견을 내놓으며 간담회를 이끌어나가 주길 바랐다. 49세까지 청년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선 반론이 제기되지 않았다. 이삼십대 청년층이 한 명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차 간담회에서 39세까지 나이를 제한하자고 주장했던 현민이 참석했지만, 그도 더는 반론을 제기할 기분이 아니었다. 청년회 대표들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고 기관장들도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는 일이 아니다 보니 주무관이 지명하지 않으면 스스로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일호는 현민을 지명하여 의견을 물었다.

“농산물 판매장을 운영하고 계신 이현민 대표님, 한 말씀 해주시죠.”

“……, 청년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대회도 참여하는 사람만 참여하게 되고 20대들의 참여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대 간 격차를 줄일 방안들이 먼저 마련되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저도 제안할 만한 의견이 없네요.”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현민이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간담회는 청년대회 추진위원회 구성안을 정하고 내년부터 시행될 일자리 창업, 귀농·귀촌, 육아 지원 등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날 저녁 영재는 현민이 운영하고 있는 농산물 판매장을 찾았다. 영재는 이삼십대 청년들이 없는 상태에서 간담회가 끝나버린 것을 알고 괜히 현민에게 툴툴거렸다.

“형은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나왔어?”

“인마, 할 만큼 했지 이 정도면……. 이곳에 연고도 없고 이제 겨우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괜한 트집이나 잡히면 뭐가 좋겠냐.”

“아니 막말로 고향인 사람들이 더 눈치 보이지 형은 눈치 볼 것도 없잖아. 우리야 ‘뉘 집 자식이냐’, ‘너희 집 어딘지 다 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나라고 별수 있냐. 그저 판이나 깔아주는 거고, 당사자들이 나서야지.”

“아, 내가 갔어야 했는데, 다들 참석도 안 하고 이게 뭐냐고.”

“결론이 달라졌겠냐. 실정을 반영한 게 49세라지만 그것도 다 어불성설이지. 결국, 공무원들이 큰 틀은 이미 다 정해놓고 통고만 하는 거야. 영재 너가 왔다고 어떻게 해볼 수나 있었겠니?”

현민의 얘기를 듣고 있던 영재는 고향으로 귀농을 하고 처음 마을 청년회를 찾아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곳엔 머리가 허옇게 센 어른들이 몇 명 앉아 있었다.

박진희 / 복흥작은도서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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