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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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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7월 12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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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리터러시(Literacy,文解力)’라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읽는 것을 넘어서 포괄적으로 어떤 분야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양한 능력의 종합을 ‘리터러시’라고 통칭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미로 소양(素養) 혹은 교양(敎養) 정도로 해석 하면 될듯하다.
‘리터러시’는 오늘날과 같이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생산적 길라잡이 임엔 틀림 없다. 이러한 개인이 능력이 모이면 국격이 된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보여준 눈부신 경제성장과 높은 교육열,민주주의에 대한 성과 등은 이에 기인한 선(善)한 결과 일수도 있다. 음식,영화,k-pop 등으로 대표되는 k-culture까지 포함하면 실로 대단하다는 말도 부족하다. 정치 분야의 저성장으로 약간의 부침이 있기는 하였어도 대한민국의 역동성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것으로 믿고 있었다. 심리적 G8도 어찌 보면 겸손한 표현 이라고 느낄 만큼 용기 백백한 시절이 엊그제 같다.
우리가 누렸던 당연한 일상 혹은 국제사회의 후한 평가 등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고 위상이 하락하는 시절을 눈 앞에 목도 할 듯 하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의 영역이 아닌 대응의 영역이기에 더욱 불안하다.
무엇이 순항하던 대한민국호를 격랑으로 내 모는가 ?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현명한 리더와 리더싶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위임된 선장의 무능한 선택과 선장이 임명한 선원들의 무책임함은 배에 타고 있는 다수의 승객 즉 국민들의 안전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 간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발탁하던 네 가지 기준을 말한다. 용모가 단정하고, 올바른 말을 하고, 자기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판단을 한다는 뜻일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기거하던 집의 이름이 사의제(四宜齊)이다.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하고, 용모는 엄숙해야 하고, 말은 아껴야 하고, 행동은 진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가 늘 가슴에 섬기는 말이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 느껴지는 작금의 시대에 용산과 그 가신들에게 해주고 싶은 간절함 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직 자신들의 판단만을 신뢰하는 거만한 소수가 오래된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린하는 것에 침묵하거나 암묵적 도움을 주는 세력들 또한 준엄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집권 여당, 사법부, 행정부, 언론 등 높은 도덕적 준칙들과 양심으로 사회적 행위를 결정하거나 인도 해야할 집단들의 충정 어린 목소리는 없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된 이래로 최악의 국가 시스템 붕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 국방, 경제, 사회, 교육 등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국정철학의 로드맵을 듣거나 본 적이 없다. 대다수 국민들이 불안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현재 세계정세는 일찍이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국익 우선주의를 지향한다. 정랭경온(政冷經溫), 정치는 차갑지만 경제는 따뜻하다. 거대 대국 미국과 중국이 그 중심에 있다. 정치는 패권을 두고 대립하지만 경제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웃음을 보낸다. 싸움의 당사자는 정랭경온인데, 중간에 낀 우리는 정랭경랭이다.
그 이전 정부들에서 노력했던 양쪽 사이에서 중심을 잡던 균형 외교 방식은 이제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왜 우리만 거꾸로 가는지 설명 조차 없다. 또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방국에 피해를 주는 일도 서슴치 않는 국가도 있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같은 비인간적인 행위를 넘어 지극히 범죄 행위에 가까운 일들이 버젓이 자행된다. 미래를 정확히 예단 할 수 없는 과학을 볼모로 일본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하는 듯한 퍼포먼스는 그래서 더욱 기가 막힌다. 참으로 나쁜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지금 가치 결핍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정량화 될 수 없는 정의(正義), 희망, 사랑, 행복, 기쁨, 슬픔 등 수많은 고부가 감정들의 정의(定義)를 외면하고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가치의 정의를 만들고 채워주는 것이 우리 시대 국가의 사회적 기능, 존재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가치를 공감하고, 이해하며, 나눌 수 있는 협력과 배려가 서로에게 필요하다. 여, 야의 리더가 서로 존중하며 만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아쉽게도 현재 대한민국을 위임 받은 최고 리더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한나 아렌트의 말로 가슴 먹먹함을 대신한다.
“저 엄청난 절대 악의 현상은 평범성, 즉 생각하기의 무능, 말하기의 무능, 판단 하기의 무능에서 비롯된다”
박희승 / 더불어민주당 남원임실순창 지역위원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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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정 기자 camio@naver.com “” - Copyrights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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