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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나, 안자고

2023년 04월 19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봄꽃들이 지천이다. 이 봄을 충분히 만끽하기 위해 새벽 4시 20분이면 눈떠 하루를 시작한다. 이번주에는 용인에서 출판기념회가 진행된다. 68년째 지구별을 여행중인 그녀의 첫,책이 솔아북스출판사를 통해 나왔다. 책 제목은 <뭐하나, 안자고>. 솔아북스출판사의 27번째 작품이다.

나는 1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 아침편지를 쓰고 배달하는 작업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진행해왔다. 누군가에게는 단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스팸이겠지만 누군가는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읽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답장을 보내온다. 그러한 답장들이 쌓이고 쌓이면 사유의 깊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어지게 된다. 정사강, 그녀는 아침편지를 통해 나를 만났고 날마다 아침편지에 답글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SNS 속의 내가 너무 궁금해 용인에서 남편을 졸라 담양까지 온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워 그냥 올라간 적도 있다고.

그녀는 밤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공부 속도를 따라붙으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서영 작가가 1860일째 그리는 만다라로 만든 책을 펼쳐 정성껏 컬러링을 하는 데 1시간쯤 걸린다. 아침편지를 읽고 성경을 읽고 필사한다. 반려견 달콩이와 아침 식사 후 산책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숲을 여행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책들을 반납하고 새 책을 빌려와 탐독하고 밑줄치면서 그것을 나만의 시선으로 바꾸는 작업을 쉬지 않는다.

그녀는 20대 때부터 글쟁이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삶이 주는 숙제를 하느라 지금껏 기회를 갖지 못했다가 우연히 SNS에서 책읽어주는여자 블루노트 이서영 작가를 만난 뒤 그녀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공부하고 강의하는 인문학은 시서화문사철로 대개의 공부는 철학 분야여서 이해하기도 어려웠겠지만 그녀는 꾸준히 함께 걸으며 공부를 해왔다. 이해되지 않으면 읽고 또 읽고 자꾸 질문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 알아간다고 교만해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걷는 법을 알았다. 언젠가는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편씩 2,000자를 쓰는 카톡방을 열어서 진행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30여 명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숫자가 줄어들었다. 1년쯤 함께하던 멤버들은 조금씩 글쓰는 실력이 늘었다. 하지만 인문공부를 하지 않고 쓰는 기교만 배우게 되면 글의 안팎에 균열이 생긴다. 말하자면 글의 외피는 점점 세련되어지지만 그 외피 안에 담기는 사유의 깊이까지 함께 깊어지지는 않는다. 사유의 깊이 또한 지속적인 훈련이 요구되는 법이다.

대기업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평소 성공의 3대 비결, 3대 요소를 말해왔는데 그것은 운運, 둔鈍, 근根이라는 단어였다. 운이 좋아야 하고 고지식하고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운運이란 그저 우연히 내게 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의 시간들 동안 오랜 노력과 훈련이 쌓이고 쌓여 행운幸運이 스스로 굴러오는 것처럼 보이는 때를 만나는 것이다. 둔鈍함이란 상황에 따라 조변석개하지 않고 고지식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내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근기根氣란 '근본이 되는 힘', '끈기', '참을성 있게 견디는 힘'을 의미한다.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넘어지면 일어서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끈기가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 또한 거대한 책들의 무게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지치지 않고, 성실하게 함께 사유의 숲을 걸어왔다.

<뭐하나, 안자고>라는 책 제목은 그녀의 아버지의 말씀이었다고 한다. 늘 밤늦게까지 깨어서 무언가를 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뭐하나, 안자고?"라고 질문하셨단다. 후에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뭐하나, 안자고?"라며 물었단다. 그렇듯 그녀는 늘 깨어서 궁구하는 삶을 살아왔고 그 결과물이 이제 한 권의 종이책이 되어 세상에 도착했다. 이 귀한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권유하면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는 책 안 읽어요.", "저는 노안이라 책을 읽고 싶어도 못 읽어요."

우리는 이제 SNS의 바다에서 함께 표류하며 살고 있다. 공간 감각이 사라지고 글로벌한 친구들을 사귀는 세상이다. 좋은 말들이 넘쳐난다. 한 지인은 지속적으로 날마다 좋은 글을 보내온다. 그러나 책 한 권을 사라 권유하면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책을 벽壁처럼 생각하면서도 좋은 말들은 끊임없이 실어나르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막막한 벽壁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빵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작업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물질세상의 풍요로움과 외피의 화려함은 정신세상의 풍요로움이 담보되지 않으면 껍질에 불과하다. 허우대는 멀쩡하나 밀면 툭 넘어지는, 근력 부재의 사회. 그런 사회에서 <뭐하나, 안자고>라는 종이책, 한 권을 세상에 내어놓은 그녀를 새삼 존경하고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 '정신이 부재한 건강'에 대한 담론은 불가능하다. 책빵에 대한 관심을 부탁드린다. 한 달에 한 권쯤은 책빵을 먹는 것으로, 꽃을 보면 행복하듯 책빵을 보면 맛나게 먹는 것으로.

이서영 / 작 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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