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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던 것들을 보기 위하여

2022년 11월 16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이른 아침, 무성서원을 향하여 집을 나서려고 문을 열고 나오니 세상은 겨울을 향해 가는 길목, 가을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다.

차창은 서리가 내려 하얗고 그 위에 떨어져 내린 단풍잎들이 알록달록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11월이다. 다른 나뭇잎들보다 먼저 가을을 맞이한 잎들은 끝부분부터 말라간다. 여전히 찬란한 빛깔을 보여주는 것들은 조금 늦게 가을 채비를 했겠지.

내가 사는 복흥면 추령 마을은 아기단풍으로 유명하다. 해발 400고지인 북카페에서 내장사 사거리까지, 평소라면 6분 정도 걸리지만 단풍이 절정이면 한 시간도, 두 시간도 족히 걸린다. 초점을 ‘6분’과 ‘한 시간’에 맞추면 답답할 노릇이지만 다시, 초점을 풍경과 계절에 맞추면 참으로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강의 때문에 내장사 방면이 아닌 쌍치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쌍치 방향으로 새로 뚫린 도로 때문에 평소에 추령 마을을 지나가는 차량들은 매우 적다. 서지와 하마 마을을 지난다.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터널을 지난다. 막다른 지점에 이르자 오른쪽은 쌍치 방향, 왼쪽은 정읍 방향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두 개의 터널을 지나면 과속 방지 카메라가 있다. 언젠가는 정신없이 서울을 향해 가다가 미처 카메라를 인지하지 못해 벌금을 문 적도 있다. 오늘 아침 나의 의식은 명료하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감지하면서 새롭게 느낀다.

정읍으로 가기 전에 칠보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꽤 긴 거리를 지나야 무성서원에 도착한다. 무성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원이다. 무성서원은 1615년에 지역 유림들이 통일신라시대 학자이자 관료인 고운 최치원을 기려 건립한 성리학 교육 시설이라고 한다.

1483년에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이 있던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서원은 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아 민가가 서원을 둘러싸고 있다. 최소한의 건물로 이루어진 소박한 장소다.

2019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돈암, 필암, 남계, 도동, 소수, 도산, 병산, 옥산 서원과 더불어 9개 서원 중 하나이다. 몇 년 동안 한 달에 서너 번 무성서원에서 인문 강의를 진행한다. 무성서원을 경험하기 위해 전국의 여행객들이 방문한다. 하룻밤 자고 나면 더욱 무성서원과 가까워진다. “10분이면 족해요!” 하던 이들이 “한 시간도 부족합니다!”라고 생각이 바뀌는 나의 인문 강의는 다시 한번 생각하는 습관에 대하여 재고하게 하고 책을 펼치게 만든다.

운전하다 생각해보니 네비게이션 없이 가고 있다. 네비를 켜놓고도 늘 목적지 근처에서 헤매곤 했다. 네비를 켤까 생각하다 그만둔다. ‘이번에는 그냥 가보자.’ 네비 없이 운전하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마미팜 엄니 농원’을 지나치지 않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안전하게 도착했다. 네비를 치고 가면서 줄곧 헤매던 곳을 네비 없이 헤매지 않고 한 번에 도착하다니 기특하다. 가만히 생각한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목적지를 향하여 그곳만을 보고 움직이는 우리들의 행보에 대하여. 출발점과 목적지 <사이>에 얼마나 많은 풍경들이 존재하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인간은 결핍이 없으면 깨달음에 도달하기 어렵다. 속도감을 느끼는 만큼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 네비만 보고 운전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추수를 마친 들판도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스치기만 하면 깊이 느낄 수 없다. 목적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경험하는 일, 우리가 할 일.*

이서영 / 작가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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