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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낮 신선(神仙)이 되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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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6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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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내장산內臟山은 나지막하면서도 2도 3군을 걸치고 앉아 있다. 주봉은 신선봉으로, 해발 763 미터. 글자 그대로 비경들을 안으로 간직한, 겉으로는 펑퍼짐한 산이다.
신선봉에 오르면 내장산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갈래의 능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리저리 뻗은 능선들은 더 많은 지류들을 거느리며 뻗어나가 비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골짜기를 만들어 구슬같은 물방울들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능선과 골짜기들은 유구한 세월을 견디며 더러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칼날바위 전설도 그 가운데 하나다.
신선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은 얼마 내려가지 않아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오른쪽 갈래는 호남 제일의 명당이 있다는 화개산으로 이어지고, 왼쪽 갈래는 장군봉 능선과 마주보며 달리다가 바위 한 무더기를 길다라니 올려놓는다. 칼날바위다. 능선은 여기에서 앞으로 더 내닫다가 갑자기 꼬리를 내리며 봉서리라는 작은 마을을 떨구어 놓는다.
봉서리 뒷편으로는 신선봉 바로 밑까지 이어지는 골짜기 하나가 길게 뻗어 있다. 칼날바위 능선과 장군봉 사이의 전골이라는 골짜기다. 전(뱀의 한 종류)이 살고 있어 이름 붙여진 이 골짜기는 넓고 깊어 육이오 동란 전까지만 해도 마을이 있던 곳이다.
이 전골에서 계곡 상류를 향하여 오르다가 왼쪽 능선을 올려다 보면 이 빠진 칼날처럼 뾰족뾰족 늘어선 바위가 보이니 이, 바로 칼날바위다.
나는 칼날바위를 바라볼 때마다 전설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저 바위 위엘 한번 올라보리라 마음먹곤 했었다.
이 땅에 삼한三韓도 성립되기 훨씬 전, 높은 산봉우리마다에는 신선 할아버지들이 구름과 더불어 살아가고, 사람들은 아주 드물게 촌락을 이루며 살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 시절, 어느 마을에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가난한 총각이 있었다. 총각은 나무를 해서 내다 팔거나 다른 집 일을 거들어 주고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나 자리에 눕게 되자 총각은 약초를 캐러 산으로 갔다. 깊은 산의 약초라야 약효가 좋다는 말을 들은 그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숲이 우거지고 짐승 소리 가끔 들려와 무섬증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어머니께 달여드릴 약초를 캐야한다는 일념으로 산을 뒤지고 있었다.
산속을 얼마나 헤맸을까,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땀을 식히려니 어디선가 따-ㅇ 하는 맑은 소리가 울려왔다. 어디서 들려오는 무슨 소릴까? 귀를 기울이니 도란거리는 말소리도 들린다. 가까운 곳이다. 이 깊은 산중에 나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니-. 호기심이 일었다. 총각은 약초 캐기를 미룬 채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하여 나갔다. 잠시 후, 도란거리는 주인공들을 볼 수가 있었다. 하얀 수염이 가슴 자락까지 내려온, 나이 지긋해 뵈는 두 노인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옆에는 술병과 잔 하나가 있을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둑판은 평평한 바위로 되어 있고 노인들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의자 역시 바위였다.
이런 산중까지 와서 바둑을 두는 저 노인들은 누굴까? 총각은 노인들이 궁금하면서도 노인들의 바둑 두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총각은 나오는 재채기를 참지 못하고 온 산을 울려대고 말았다. 그제에서야 노인들은 총각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젊은이는 누군데, 어찌 이곳까지 왔는고?”, “제 어미가 병이 들어 약초를 캐러 왔다가 이곳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 그 사이 우리가 몇 수나 바둑을 놓았는고?”, “예, 세 수 놓으셨습니다.”, “허허, 야단이 났겠구나. 술이나 한 잔 마시고 어서 가보게.”
총각은 그제서야 어머니 생각이 들어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아까 올라오던 그 길이 아니요, 골짜기를 벗어나 마을로 가는 길도 아침에 오던 길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불과 몇 참 사이에 길이 이다지도 변할 수가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을에 도착했을 때 총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도 아침의 마을이 아니었다. 집 한 채, 한 채가 모두 낯설기만 하였고, 어머니가 누워 계셔야 할 움집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아는 얼굴들이 아니었다.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낯설어 하는 총각을 오히려 이상스레 바라보았다. 혹여 마을을 잘못 찾아오지나 않았나 싶어 총각은 마을을 둘러보았지만, 마을 뒤의 동산도 그대로요, 마을 앞의 냇물도, 냇물 건너 앞산도 그대로였다. 분명, 아침에 떠났던 마을에 틀림없었다. 다만, 마을 어귀의 자그맣던 팽나무가 우람하게 자라 저간의 세월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머니는 어찌 되셨을까? 누구에게 물어도 어머니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늙은이 몇 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오래 전에 병든 어머니를 위하여 약초를 캐러 떠난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며칠이고 그를 찾아 부근 산들을 뒤졌지만 결국 헛일이었고, 어머니 또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였다. 그때 자기네들은 겨우 젖먹이들이었으며, 그 사이 마을이 몇 번의 전쟁을 겪었다는 말도 곁들였다.
서산에 걸린 해를 멍하게 바라보는 총각에게 마을의 늙은이들은 물었다. 아직 젊은 사람이 어떻게 해서 오래 전 이야기를 묻느냐고. 내가 칼날바위를 찾은 때는 군에서의 제대를 얼마 남겨 두지 않았을 때였다. 그 날, 나는 그 옛날의 총각이 되어 홀로 칼날바위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막 나뭇잎들이 피어나 푸르름이 시작되는 늦은 봄이었다. 하늘은 티 하나 없이 맑고 햇볕은 따사로와 산 오르기에 무척 좋은 날씨였다. 봉서리를 지나 전골로 들어서는 길은 산새들의 환영노래가 골짜기 전체를 울렸고, 꽃향기와 풀내음이 그득했다. 온 산이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옛 마을 터, 기 진사寄進士네 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진 곳에서 칼날바위로 오르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산토끼도 다니지 못할 것 같은 가파른 경사, 부서져 내린 바위조각들은 너덜을 이루며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너덜이 끝난 곳에는 온갖 넝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락을 이루며 우거진 넝쿨지대 또한 통과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때의 총각은 어떤 경로로 칼날바위에 이르렀을까?
드디어 칼날바위. 바위 위에 올라서니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고, 처음 오르기 시작하던 저 아래 골짜기는 까마득하기만 하였다.
바위 위는 밑에서 올려다 볼 때의 날카롭던 것과는 달리 예닐곱 자 넓이의 판판한 면이 길게 뻗어 있었다. 그 옛날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곳은 과연 있을까? 있다면 어디쯤일까? 신선봉 쪽을 향하여 바위 위를 걷자니 아, 그 곳에는 바둑판이 놓여있지 않는가. 사방 예닐곱 자 넓이의 바둑판 위아래에는 바둑판을 향하여 앉도록 의자까지 놓여져 있었다. 가로 세로 열아홉 줄, 삼백예순한 칸의 눈금만 그려 넣는다면 분명 훌륭한 바둑판이겠다. 누구의 작품인가? 꼭이나 필요해서 만든 것 같았다.
바둑판을 앞으로 의자에 앉아 보았다. 바위조각을 하나 주워 바둑판 위에 놓아도 보았다. ‘떠-ㅇ’ 맑은 소리가 바둑판 위에서 울려나오는 것 같았다. 바위조각을 또 주워 바둑판을 다시 두드렸다. 한 수, 두 수, 세 수. 에취-, 총각의 재채기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배가 쪼르륵거렸다.
지금의 전골에는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기 진사의 마을이 있던 곳도 물에 잠겨 있다. 기 진사의 지경임을 알리는 표지석도 물에 잠겼을 것이다.
나는 그날 칼날바위 위에서 신선이 될 수가 있었다. 바둑판을 상床으로 반주를 곁들인 성찬을 들었고 오수에도 취해보았다. 무려 두 시간이나.
아! 칼날바위에 다시 가고 싶다. 하루쯤 신선이 되어 감로주 기울이며 바둑 한 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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