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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어머니 / 전국 효행 문학상 수상작

2021년 09월 29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동구 밖의 놀이터에는 얘들이 된통 많았다. 앞 소매끝이 누런 콧물로 범벅이 되어도 어느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고 놀았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노을 진 석양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흰 앞치마와 돌확에 몽돌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집의 분위기를 알아챘다. 돌확에서 드드득 드드득 달크무레하게 갈리는 소리가 들리면 아무 탈 없이 순조롭다는 뜻이다. 서로의 마음을 비비며 다가가는 돌확과 몽돌처럼 어머니와 할머니의 하루도 편안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6형제의 장남인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들과 우리 형제들이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시집을 와 형을 낳고, 2년 뒤 큰방에선 할머니가 노구의 몸으로 막내삼촌을 낳았다. 며느리 젖동냥을 시작으로 집안은 난리 아닌 난리가 시작되었다.
결혼하기 전 어머니는 8남매의 장녀로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어머니는 결혼 후 6형제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시집와서 대식구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돌확의 속성과 참 많이 닮았다. 돌확은 제 속을 파낸 자리에 시집살이 같은 고추와 마늘을 넣고 갈며 아픔과 서글픔을 견디어야 했다. 어머니도 돌확처럼 시댁 식구들을 품으며 아픔을 견뎠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갈등이 심했다. 드세다는 시아제들 틈에서 어머니는 살아야 했다. 눈물바람인 어머니가 불쌍해 보였다. 험한 싸움이 있는 날에는 눈물 섞인 돌확 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 와중에도 세찬 눈보라가 불어닥치는 엄동설한에는 아카시아 나무, 솔가지, 싹달가지, 가리나무 등 땔감을 부엌에서 하나라도 더 아궁이에 넣었다. 자식들이 자는 방을 따뜻하게 만들겠다고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나무를 해서 불을 땠다.
나는 유달리 할머니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할머니도 어머니와 다툼이 있는 날에는 우울해 보였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싸움이 커지지 않기를 바랬다.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싸움은 자주 일어났다. 유독 싸움이 거칠게 있었던 날이면 나는 할머니와 잠을 잤다. 할머니 마음이 풀려야 어머니와의 다툼도 덜 일어날 것 같았다.
대여섯 살 무렵 어느 한여름 밤이었다. 그날도 할머니와 어머니는 심하게 다퉜다. 사기 요강을 방안에 들여놓고 할머니 곁에서 잠을 잤다. 할머니 모시 저고리에 비치는 젖을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했다. 서툰 말씨로 불쌍한 우리 엄마, 나무라지 말라며 재롱을 부렸다. 나의 재롱으로 어머니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고 싶었다. 어머니를 향한 할머니의 날 선 눈빛을 지울 수만 있다면 밤을 지새워서라도 재롱을 부리고 싶었다.
“삼촌들과 할머니 심부름 잘할께. 우리 엄마와 싸우지 말고 미워하지 마! 응.”
혼란스런 마음에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모두 소중했기에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개나리가 피어나던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미군이 나눠줬다는 강냉이 빵을 처음 먹었다. 엄청 맛있었다. 먹다가 문득 어머니와 할머니가 생각났다. 가난해서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빵을 먹다가 멈추고 절반을 남겼다. 헌책 종이에 절반의 빵을 돌돌 말아 책보에 쌌다. 나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짝꿍이 물었다.
“계칠아, 어디 아파?”
“응, 배가 자꾸 쑤시네.”
나는 일부러 배를 만지며 말했다. 수업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 맛있는 빵을 할머니에게 다 드릴까? 아님 엄마에게도 좀 나눠서 드릴까?’
집으로 오는 길에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고민을 했다. 결국 할머니에게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강냉이 빵이 할머니의 마음을 바꿔줄 거라고 여겼다. 빵의 달콤함이 미움을 사라지게 할 것만 같았다. 부드러운 빵처럼 어머니를 부드럽게 대해줄 것만 같았다. 내일부터는 맵고 짠맛 나는 하루가 아닌 달콤하고 부드러운 하루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여느 때처럼 잠을 자기 위해 할머니 옆에 누웠다. 학교에서 가져온 절반의 뭉개진 빵을 할머니에게 드렸다.
“할머니, 엄마한테 비밀이야. 대신 엄마 미워하지 마."
나는 할머니 손에 빵을 꼭 쥐어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처음으로 아이스께끼를 먹었다. 반 친구가 사줬는데 달고 맛있었다. 순식간에 몸이 시원해졌다. 아이스께끼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최고의 맛이었다. 그때도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이 아이스께끼를 맛보면 달콤함에 마음이 녹아 어머니에 대한 미움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만 같았다. 더위를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아이스께끼가 다툼도 갈등도 아픔도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스께끼가 구세주라도 되는 양 나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 아이스께끼를 사 가지고 집으로 달려갔다. 큰방으로 들어가 책보를 풀었다. 어찌된 일인지 아이스께끼는 온데간데없이 물 봉지만 남아 있었다. 너무 허망했다. 멋쩍은 표정으로 할머니 얼굴을 쳐다봤다.
“세상에! 기특한 내 새끼.”
할머니는 나를 확 끌어안으며 양쪽 볼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뒤로 어머니의 시집살이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할머니는 어머니와 언짢은 일이 있을 때면 어린 나의 마음을 헤아려줬다.
나는 환경 탓인지 몰라도 철이 일찍 들었다. 국민학교 3학년이 되면서 학교가 끝나면 어머니를 도우려고 10리 길을 뛰어왔다.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왔다. 누에치기, 뽕잎 따는 일 등을 거들었다.
4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못자리할 시기였다. 물 빠진 방죽에서 구물구물거리는 우렁을 발견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갑자기 배가 아파. 선생님께 이야기 좀 잘 해줘.”
친구에게 부탁을 한 뒤 학교에 가지 않고 방죽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방죽 안의 우렁을 몽땅 잡아 집으로 가져갔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감동을 했다. 가족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 칭찬을 더 받기 위해 더욱더 착한 일을 찾아서 했다. 착한 일이 어머니와 할머니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인 것 같아 신이 났다. 착한 일을 한 점 한 점 찍어 선을 그리고 면을 만들어 어머니와 할머니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쉼터를 만들고 싶었다.
4학년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단풍이 든 소나무 잎이 강한 바람에 우수수 떨어졌다. 순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 솔잎인 가리나무면 겨울 추위는 걱정 없겠다.'
그 생각에 또 배가 아프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며 학교에 가지 않고 일을 했다.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내가 배가 자주 아픈 아이라고 여겼다. 학교에서 구충제가 나올 때면 꼭 먼저 나를 챙겨주던 선생님도 계셨다. 오후 학교반 친구들이 집으로 올 때까지 갈쿠리로 솔잎을 긁어모았다. 집으로 가져온 솔잎을 보고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그해 겨울은 문풍지 하나로 바람을 막았지만 방안은 참으로 따뜻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어머니와 할머니를 도우는 일이 공부보다 더 우선인 시절이었다.
고생스런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시집살이로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노을 진 마당 한가운데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덕석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함께 콩물 칼국수를 만들고 있었다. 돌확에서 곡물 가는 소리가 그날만큼은 부드러운 선율처럼 들렸다. 할머니와 어머니도 즐거워하셨다. 제 속을 비운 돌확처럼 편안해 보였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쯤은 돌확에 갈아 쉬이 가라앉힐 수 있다는 듯 웃음 가득했다. 돌확은 그런 어머니와 할머니처럼 따스한 노을을 담고 있었다. 돌확에서 마당에서 내 마음에서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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