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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올리는 思慕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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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29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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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아버님! 어머님! ‘광섭이냐’ 부르시던 그 음성 지금도 그대로 귀에 들립니다.
불효막심하게 지내온 세월, 이제와 땅을 치고 통곡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왜 나를 낳았느냐’고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아드린 죄 제 가슴을 헤집으며 용서를 빌고 또 빕니다.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하다는 바쁜 농사철에 정문동 그늘에서 베짱이가 되어 바둑이나 두던 한심했던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집안의 가난과 고생을 외면하고 무작정 떠나버린 불효자식이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천추에 회한을 안고 용서를 빕니다.
모진 가난과 싸워야 하며 힘들게 고생만 하고 살아오신 부모님! 자식 걱정에 사모곡의 노랫말 보다 더 애잔하게 사셨던 부모님! 이 자식이 신체도 허약한데다가 가르치지도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구안와사의 장애를 갖게 되니 자식의 앞날 걱정으로 깊은 근심을 갖게 되신 부모님!
그러나 절망에서도 안아 다독거리며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씀이 귀에 쟁쟁 합니다
서당공부에 늘 1등을 해도 떡 한 시루 해줄 수 없어 나무 한 짐으로 대신해주시던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니 울컥 목이 메어 옵니다. 객지에서 방황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자식의 밥이 식을까봐 빈 솥에 담아 놓으시던 부모님, 겨울철엔 (안면마비가) 눈물이 줄줄흘러 견디지 못하고 부모님 집으로 찾아들던 시절 남들의 손가락질을 감내하시며 자식의 속내를 감싸 안아주시던 부모님 마음을 이제는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동안 세월은 가며 이 아들도 타관 객지에서 산전수전 만고풍상 속에 반평생이 넘도록 절벽에서 살아남은 풀 한 포기처럼 절박한 삶이었습니다.
구안와사로 단 한 번도 큰 웃음을 웃어보지 못한 한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중동 사막의 건설 현장에서 피땀을 쏟았고, 살기 위해서 삭발을 하고 스님이 되어 포교원과 철학관도 열었습니다. 한의원을 열어도 보고 어쩌다 사주.관상.작명.을 해주며 돈을 벌기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수도 없는 좌절을 맛보며 생을 포기하려 밤을 하얗게 새우기가 몇 번인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광섭아!! 부르시는 부모님 음성이 저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매사에 불굴의 신념과 의지를 불태우며 최선의 노력을 다 해 왔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요.
어느 날 제 인생에 쨍하고 해가 떴습니다. 이 아들이 TV에도 출연하고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된 것입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세상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명리학 전문가 학자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사랑의 음덕으로 크게 출세를 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 진짜 성공을 했습니다.
지난 세월동안의 회한과 회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방황은 이제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선생님! 하고 구름처럼 찾아 듭니다.
이제 이 아들이 세상에서 큰 영예를 얻었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평생을 憂火(우화)같은 근심걱정으로 살다 눈도 못 감으시고 떠나셨을 나의 어머니 아버지!! 이 아들 결국 성공 했다고 엎드려 告 합니다. 근심걱정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기를 비옵니다. 그리고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명철한 두뇌와 지혜를 타고나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역경가운데 한문공부를 시켜주셔서 삶의 기반이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 합니다.
유난히도 제게 베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가슴에 안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이 아들이 산천이 떠나가도록 우레처럼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
(양성호 향우는 부모님께 올리는 사모곡비를 제작하여 지난 26일 고향 동계 소재 부모님 묘소에 세워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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