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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풍류 시조(時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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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17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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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시조는 고려말기부터 성리학을 주요 이념으로 하는 유학자들이 노년의 지혜를 풍류로 읊었는데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가 후대 문헌에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왕조 영조때 신광수(申光洙) 석북집(石北集)에 시조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이 가사, 가곡의 느리고 따라 부르기 매우 어려운 음률과 장단을 초장, 중장, 종장으로 부르기 편하게 시조로 편곡하여 정가(가사, 가곡, 시조)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조는 시대에 따라 즐겨 부르는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유래되었으며 입으로 전해지다가 사라지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영조4년(1728년) 김천택이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비롯한시조 580수를 수록한 시집 청구영언(국립 중앙도서관 소장)을 편찬 하였고 증보된 해동가요, 가곡원류(규장각 소장)가 있으며 시조를 비롯한 전통 문화유산이 옛날과 현대를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자자손손 전승 보전해야 할 사명과 귀중한 가치가 있다.
한양의 경제(京制), 충청도 내포제(內浦制), 전라도 완제(完制), 경상도 영제(嶺制)로 지방마다 특색이 있으며 장단과 음률이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달라 기준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전라북도부안출신 석암(石菴) 정경태(鄭坰兌 1916~2003) 선생이 1970년대에 시조 악보를 정리하여 현대시조의 장단과 음률을 전국적으로 통일 하였다.
유네스코(국제연합 교육, 과학, 문화기구) 한국 무형문화유산에 판소리만 등재되고 시조는 누락되었지만 세계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인류에 영구히 전승 보전되어야 당연하다.
순창 시조는 초대 조동주 시우회장을 선두로 2007년 류재복 시조협회장이 취임하면서 헌신적인지도로 시조 회원이 대폭 늘어나고 있으며 2017년 2월 22일 국악원 뜰에 명인회원(회장 설기호) 51명이 갹출한 비용으로 명인비(名人碑)를 건립하는 시조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조는 처음 입문할 때 냉큼 다가서기 어려운 선입견이 있으나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전통 문화유산을 전승 보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어려운 가사와 음률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활발한 두뇌활동이 요구되므로 건망증과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필자도 맨 처음 시조에 입문할 때 국악원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권유를 받고 “시조를 할 만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거절 하였으나 마지못해 인사치레로 시조교실에 나가보니 일주일에 2시간을 할애하는데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으며 시우들 모두 풍류를 즐기는마음의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 친분을 쌓는데 부담이 없고 전국 경창대회에 참가 하면서 발이 넓어진다.
순창시조협회에는 대상부 장원 30명 초과, 시조 명인회, 5개 합창단(화요일반, 수요일반, 목요일반, 여성반, 다문화가정반)이 구성되어 각 분야마다 전국 시조협회에서 유일(有一)하다.
시조는 혼자 부르기도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를 수 있으며 꽃이 피고 단풍이 드는
계절에 조용한 곳에서 취흥이 돋아 신선처럼 조용하게 즐기는 유유자적한 풍류다.
순창국악원에 연중 무료 시조강습 교실이 운영되고 있어 시조를 배우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환영하며 현직(농사, 가사, 직장)에서 물러나 30여년을 알차게 보내려면 이만한 풍류가 썩 드믈 것 이라는 평이 있고 건강관리에 효과적이라는 데는 이견(異見)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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