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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고사리 사랑 / 산골농부의 귀농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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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9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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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찬물에 손시린 오월 새벽하루도 빠짐없이 확독에 보리쌀 가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이십리길 읍내학교가는 아들 밥미겨보내놓고 당신도 십오리가 넘은 험한산 은적골로 고사리를 꺽으러 남보다 먼저 가셔야 했기 때문에 오월 새벽은 항상 바쁘셨다.
아들 도시락은 흰 쌀밥 위에서 떠담고 당신은 캄캄한 부뚜막에 앉아 쌀 한 알 없는 입안에서 씹히지 않고 굴러다니는 검정밥에 신김치 몇 술 뜨시고 아들과 반대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산동무 강동댁이 싸립문 밖에서 기침소리를 내시면 부산하게 나서시는 어머니. 속으로 ‘어머니가 고사리 꺽으러 가시는 갑다’ 했다. 그때는 몰랐다. 타향살이 떠돌다보니 미처 생각 못했다. 고사리 한주먹 꺽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노동인지를......
어머니의 오월 새벽. 오실 때는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산고개를 몇 번 씩 넘어 어디 성한곳 없을법도 한데, 허리 다리 아프시다는 말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손은 얼음 물, 뜨거운 물에도 괜찮은 줄 알았다. 어머니 손은 장갑을 안 껴도 햇볕에 타지 않고 가시에 찔리지도 않는 줄 알았다. 모자도 안쓰고 온종일 들일을 해도 어머니 얼굴은 곱고 밝으셨다. 어머니의 어깨, 허리, 다리는 무쇠였을까?
왜 한 번도 지식 앞에서 아프다고 안하셨을까?
어머니는 그냥 고사리 꺽으러 간갑다 했다. 그냥 들에서 일하신갑다 했다. 간난애기 손가락 같은 먹고사리가마솥에 삶아 광주 말바우시장에 내다 팔아 새끼들 키워야 했기에 아플 겨늘이 없었던 것이었을까?
오십년의 세월이 지나 어머니를 꼭 닮은 아내의 고사리 꺽는 모습을 보니 매급시 눈물이 난다.
귀향해서 살다보니 집에서 몇 걸음 안되는 산에 천여평의 자생 고사리밭이 있어 날마다 꺽어다 주문받아 택배로 보내고 삶아 마른고사리로 팔고, 작년에는 수입이 짭짤했는데 올해는 오월까지 서리가 내려서 그런지 잘 자라지 않아 수확도 없거니와 독성이 많다는 매스컴을 타는 바람에 주문도 뚝 끊겼다.
어머니는 평생 마스크도 쓰지않고 고사리김을 쐬며 사셨어도 팔십오세까지 속병없이 사셨는데 무슨 김을 쐬면 암에 걸리니마니 난리법석인 바람에 일관에 오만원하던 것이 이만원도 안쳐준다.
첩첩산중 우리마을 사람들 농가 수입원으로서 고사리만한 것이 없었다. 작년까지만해도 천여평 산에서 쌀 이십가마 값, 논 열마지기는 지어야 나올 수입원이었는데 말이다.
“여보 꺽기도 힘들고 돈도 않되고 한게, 주문받은 놈만 꺽어다 말리고 내비둬불세”
“그려, 힘만 들고 돈도 안되고 잘됐구만머~”
어머니 스믈에 산골로 시집오셔서 육십년 세월, 오월이면 우리 집 마당 덕석에 어머니의 사랑 고사리가 봄볕과 함께 검게 익어가고 있었다.
봄비가 오면 마루에 내가 앉을 자리가 없었다.
고사리 익은 냄새, 어머니 냄새.
어머니가 너무너무 보고싶다.
오월이 오면 매급시 눈물이 난다. 설에 오면 검은 봉지 하나 내미시며 “아가, 애비 생일때 히묵어라” 하시며 며느리손에 마른 고사리 한봉지 잊지않고 챙겨주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의 막내 며느리도 그 고사리 꺽어다 삶아 말리고 있답니다. 당신의 어깨 한 번 시원허게 주물러 못드렸는데, 저 사람 어깨는 밤마다 주물러 주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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