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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농부의 귀농일기 6 / 벼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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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5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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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자급자족을 위하여 벼농사산골 논 두마지기(400평)은 내 손으로 짓는다고는 하지만 물고 보는 것 밖에 하는 일이 없다. 못자리부터 탈곡까지 기계를 보유하고 있는 조카의 도움을 받았다. 어제는 방아쪘다며 쌀 20kg 스물네포대를 저온창고 앞에다 내려놓고 간다.
농사짓기 참 쉬운 세상이다. 네평 저온창고에 한쪽에는 밤포대, 한쪽에는 쌀포대 가득 쌓아놓고나니 삼성 이재용이 부럽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 농부의 기쁨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칠십년대 이전 부자와 가난한 농가들의 생활상이 떠오른다. 백여호 되는 마을에 이십마지기 논두렁이 있는 농가 두 집 뿐이었는데 엄청 부자집 열마지기 논이 있는 집은 그럭저럭 사는 집, 대다수가 두서너마지기 논으로 가난하게 살았었던 같다. 그래도 아이들 젊은이들이 북적대서 세반으로 나누어 9인제 배구도 하고 동네 콩쿨대회도 하고 사람 사는 산골 동네였었는데 사십년 지나 농사지며 살겠다고 귀농해보니 빈집이 절반이 넘고 칠팔십대 노인들 뿐이다. 그 시절에는 상할버지 같았던 내가 젊은이다. 이 산골마을 할머니 혼자 살아도 통장에 몇 천만씩 저축해놓고 산단다. 가난한 사람 없고 세상은 말도 못하게 풍요로워 졌는데 사람이 안보여 고삿이 휭허니 왠지 페허같은 쓸쓸함만이 감돈다.
정말이지 세상이 엄청 바뀌었다. 지금은 흉년이나 풍년이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품종이 좋고 농약이 좋아선지 해마다 풍년이다. 죽은 벼가 없고 쓰러진 나락이 없다. 흉년이란 말 들어보지 못하고 농사를 짓는다.
그렇다. 지금 세상의 농부들에게 풍년은 별 의미가 없다. 농사가 잘 되거나 흉작이 되어도 농산물 가격은 변동이 없다. 공무원 봉급은 해다 오르는데 쌀값 농부들의 노동의 대가는 해마다 떨어져 뒷걸음질이다. 수입농산물로 시장가격 조종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정부나 시장에서가격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수급조절을 해버린다.
전체 인구의 비해 농부들의 비중은 5%로도 안된다는 명분으로 농부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정책 때문에 말도 안되는 비교를 해본다.
1987년 삼십년전 대소가 친목회 시작할 때 대학입학금이나 애경사시 쌀 한가마 160,000원 정산 지출했다. 그때 당시 쌀 열두가마 2,000,000원으로 전세 신혼방을 얻었다 일년 후 쌀 마흔가마(6,000,000원)으로 연립주택을 장만했었다. 삼십년이 지난 작년에 쌀 한가마 130,000씩 정산 지출하기로 변경해야 했다. 쌀 열두가마1,600,000만원으로 TV 한대 값도 되지 않는다. 지금 쌀 마흔가마 5,200,000만원으론 원룸 사글세 보증금도 안된다.
농사져서 어떻게 장가보내고 아들딸 맘 놓고 낳아 키울 수 있겠는가? 농산물 가격은 후퇴, 물가는 점점 오르고 젊은이들이 농사를 짓고 살아갈 수 없는 이유다. 농촌이 늙은 이유다.
그런데 왜 산골농부로 되돌아왔냐고 혹시 묻는다면 시커먼 도시보다 노란 물결의 산골이 좋아서 왔노라고. 머지않아 산골농부들의 세상이 오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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