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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는 지역 모두가 나서야”

2016년 03월 16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김용군 교육장은 어린시절 얘기를 들려달라는 기자의 말에 당황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희미한 여섯 살의 기억을 떠올렸다.
6살이 되던 해 당시 9살이던 김 교육장 형은 ‘토끼풀을 뜯으러 가자’며 김 교육장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형은 동구 밖에서 잠시 멈추더니 길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김 교육장이 ‘무슨 글자’인지를 물었고, 형은 김 교육장을 향해 ‘이름’이라고 말해준 후 지워버렸다. 그리고 바로 ‘다시 똑같이 써보라’는 말을 했고, 김 교육장은 ‘김 용 군’을 단숨에 썼다.
형은 토끼풀 뜯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와 김 교육장에게 분필을 내밀었다. 이름을 다시 써보라는 것이었다. 다시 이름을 쓰자 형은, 어머니에게 달려가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를 전했고, 어머니는 그날부터 김 교육장을 앉혀 놓고 ‘부지깽이 교육’을 했다.
12345…, 가갸거겨고교…, 어머니는 숫자와 한글 기초를 읊조리듯이 가르쳤고, 그 때부터 김 교육장에게 숫자와 한글은 재밌는 노래가 됐다.
노래로 익힌 숫자와 한글은 밖에 나가면 딱지와 구슬이 돼 돌아왔다. 동네 형들과 누나들은 한글을 읊조리는 김 교육장이 귀여워 박수를 쳐주며 구슬 등을 손에 쥐어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물놀이와 손꼽놀이를 즐겨 했던 김 교육장은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항상 대장이었고, 아버지였고 선생이었다. 김 교육장은 아버지로서 책을 읽어주고, 선생으로서 가르쳤다. 그 때부터 시작된 교직 인생은 부임 후 36년을 맞았다.

가난한 어린시절과 고마우신 선생님
김 교육장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힘들었던 시기였으나, 김 교육장의 가정 형편은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더 안 좋았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는데 도시락을 제대로 싸가지 못한 김 교육장은 향가 쪽으로 걸어가던 소풍 대열에서 살짝 빠져나왔다. ‘도시락을 못 싸갔으니 소풍 가다가 살짝 집으로 와라’고 말한 부친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풍 대열에서 빠져나온 김 교육장은 내심 담임에게 혼날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날 학교에 간 김 교육장은 담임에게서 어떤 꾸지람도 듣지 못했다. 이후 김 교육장은 그날 일을 너그럽게 넘겨준 담임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교사로 발령받았을 때도, 교육장이 됐을 때도 당시 6학년 1반 담임을 먼저 찾았다.

인정 많고 호기심 많았던 소년 용군
김용군 교육장의 초·중학교 시절 생활기록부에는 ‘얌전하고 말수가 적으며 인정이 많고 눈물이 많다’고 씌어있었다고 한다.
옥천초 6학년 때의 일이다. 김 교육장은 유등 건곡리에서 태어나 옥천초까지 논둑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김 교육장이 기억하는 순창은 유난히 비가 많았다는데,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동냥 할아버지가 비를 맞고 있는 것을 보고 우산을 씌워 비를 피하게 했다. 동냥 할아버지가 눈에 띄면 친구들은 놀리기에 급급했고, 그도 그럴 것이 동냥 할아버지한테서는 심한 냄새가 났다. 옷차림새는 말할 것도 없었다.
또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마을에 엿장수 할아버지가 가위소리를 내며 골목을 돌았다. 엿이 먹고 싶었으나 엿과 바꿔먹을 물건도 돈도 없었던 김 교육장은 할아버지 몰래 엿 한가락을 훔쳐 먹었다. 엿을 훔쳐 먹은 사실이 마음에 남아 죄책감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끔 마을을 들르던 엿장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엿장수 할아버지가 망했다’는 동네 어른들의 말을 듣게 되면서 김 교육장은 “엿장수 할아버지가 망한 것은 엿을 훔쳐 먹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자책을 해야 했고, 그 뒤로는 어떤 것도 훔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김 교육장의 청소년기
김 교육장이 중학교를 가던 시대는 시험을 봐서 가던 때였다. 김 교육장은 가족이 많고 공부방이 없어 친구집에 가서 공부를 해야 했다. 중학교에 가서는 한약방을 하던 지인의 집에 가서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면서 공부방 천정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습니까?, 반성할 일은 없었습니까?’라는 문구를 적어 놓고 잠시 누울 때면 글을 보며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반성할 일은 하지 않았는지를 되뇌이며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6학년 ‘표준 수련장’이 너무나 갖고 싶었던 김 교육장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척 해 이를 안타깝게 여긴 모친이 끝내 표준 수련장을 사주도록 했다. 그때의 표준 수련장은 최고의 재산이었고, 전부였다. 중학생이 돼서도 표준 수련장을 쳐다 봤고, 친구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건곡리에서 읍내까지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건곡리에서 읍내까지 이어진 김 교육장만의 논둑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공부방이었다. 논둑길을 걸으며 시를 외웠고, 책 속의 지식을 머리와 마음에 담았다.

자식 교육은 이렇게
두 딸을 둔 김 교육장은 가정에서의 ‘부모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있다. 최선을 다해 길렀지만, 더 잘 가르치지 못한 것 같아 후회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다. 요즘 학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으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부모가 있지만, ‘진짜 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부모들은 생각해야 한다고 김 교육장은 강조한다.
‘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아이들의 심성을 바르게 길러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김 교육장은 “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롤 모델이 돼야 하고, 부부싸움도 아이들 없는 곳에서 하고, 부모는 드라마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라고 하면 앞뒤 말이 맞지 않아 아이들이 혼란을 느낀다”고 말한다.
김 교육장은 “부모가 학교에서 돌아 온 자녀에게 공부 잘했냐는 말보다는 학교에서 어떤 질문을 하고 왔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온상에서 키우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지식을 갖는 것 등의 많이 아는 것에 치중하지 말고, 많이 듣고, 보고, 창의력을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어떤 상황에 닥쳐도 주도적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또, “아이들에게 기대치를 너무 높게 가지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갖고 있는 능력을 다 발휘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아이들이 쉴 틈, 놀 틈이 생길 수 있도록 부모들이 먼저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부정적인 언어를 자제해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예를 들어, 9시가 돼서 아이들에게 “잘 시간이니 어서 자라”가 아니라, “좋은 꿈을 꾸면 좋을 것 같다는 말로 아이들에게 평온을 주는 것이 세상을 강하게 살 수 있는 힘”이라며, “서점이나 미술관, 박물관, 바다와 백화점. 마트나 시장 등에 많이 데려가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책 읽기와 ‘1일 1선(善)’
김 교육장은 얼마 전 유치원, 초, 중, 고교 교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온가족 동행 책읽기’를 제의하며 “검사를 해보겠다‘는 말로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어린시절에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을 살 수 없어 마음껏 책을 읽지 못한 게 남아 지금이라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같은 제의를 했다고 한다. 1979년 첫 발령을 받아 교사가 된 것을 천직으로 알았고, 이율곡 선생의 언행일치, 학행일치를 마음에 담고 살면서 아이들을 지도하려 애썼다. 교과서에서만 배우는 바른생활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배우면 똑같이 실천하는 생활을 가르쳤다. 머릿속에서 아는 것으로 학교 점수는 백점을 맞고, 생활을 하면서의 행동에서는 빵점을 맞으면 안된다는 게 김 교육장의 소신이다.
또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고, 하루에 한 번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노약자의 짐을 들어다 준다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말다툼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김 교육장은 딸과 사위 등 가족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교육이란…
교직생활을 할 때는 가난하고, 학습이 더딘 아이들, 말썽을 많이 피우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는 김 교육장은 오산초에 근무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반에서 거의 꼴찌를 하는 아이에게 급장을 시켰고, 나아가 그 학생을 전체 급장을 시켜 아이에게 용기를 준 적이 있었다고. 뒤에서 꼴찌를 하던 학생에게 구령하는 것을 훈련시키고, 도지사 표창을 줄 수 있도록 힘쓴 과거 교직 생활을 회상한 김 교육장은 “교육은 우열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 같다”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아이 하나를 교육시키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가정과 학교, 기관, 단체의 모든 지역 사람들이 한 아이를 위한 교육에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힘있게 말했다.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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