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17 | 10:02 오전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순창군수 후보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출향인  인터뷰  이달의 인물  독자기고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독자마당

자유게시판

토론방

뉴스 > 인터뷰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오뚝이 김문소 씨를 만나다

2015년 04월 01일 [순창신문]

 

ⓒ 순창신문



26일 갑작스레 김문소 씨를 만났을 때,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담겨있었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웬 웃음이랴? 그의 얼굴에는 천진함마저 감돌았다.
군의원 한 번 해보자고 참으로 열심히 산 그였다. 그런데도 어이없는 소문으로 낙마하기를 두 번. 아들 때문에 서울에 살면서 가끔 순창에 오는 아내를 두고 ‘금슬이 안 좋다’고 그것을 약점 삼아 인신공격했던 이웃을 보면서도 그는 선거 때의 아픔을 “잊었다”고 말했다.
“‘저 사람은 나를 찍어주지 않았어…, 정말 밉다. 왜 안 찍었을까? 나의 어디가 맘에 안 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혼란”에 한동안 그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모두 떨치고 나니 사는 게 그렇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가 없단다.
마음 하나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 말처럼 그는 천국과 지옥을 모두 갔다 온 기분이다. 지옥을 다녀 온 그가 2월 23일자로 문화원 사무국장 자리에 앉았다. 첫째도 의리, 둘째도 의리를 생각할 만큼 그에게 의리는 그 자신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에게 생각하는 힘과 의리가 없다면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사람은 평생 깨달아 가야하고,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그는 지옥을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생각했고, 끝없이 자각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사람에게 있어 용기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새로운 생활로, 생활의 소중함을 다시 찾으려 노력했다. 월급이라야 얼마 안 되지만, 건강한 생활이 있다는 것이, 남을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그는 문화원 사무국장 자리로 갔다.
장애인회관 사무국장을 1992년부터 16년 동안이나 하고, 그 뒤로 후원회장을 하면서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부단히 발로 뛰고 고민을 거듭한 그였다.
당시 장애인회관을 짓기 위해 이강래 전 국회의원을 수차례 만나 사정하고, 도지사 선거 운동을 해주고 기금을 후원받아 지금의 장애인 회관을 지을 수 있었다.
그는 장애인 후원회장을 하면서는 장애인 체육관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국회의원과 소통만 잘되면 체육관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군의원을 하겠다고 힘과 시간을 쓰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적을 만들지 않고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적이 없는 사람은 흔치 않은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애인 사무국장과 후원회장을 하는 동안 주민들의 눈에 비친 그는 ‘헌신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고 귀띔했다.
주민들이 말하는 그의 장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끄는 마력을 가졌다는 것. 누구든 편하게 대하고, 해달라는 것은 최선을 다해 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는 것. 진정성이 보이는 ‘진국’같은 사람, 의리를 아는 사람, 타인을 진정 아끼는 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문화원 사무국장을 하면서 조선대와 전남과학대 외래교수직을 맡아 출강을 다녔다. 일이 너무 많아 최근에는 조선대 출강을 그만두고 옥과 전남과학대 출강을 줄여서 하고 있다.
그는 석사와 박사 학위를 ‘장애인 체육’에 대해 전공했다. 젊은 날 거의 대부분을 장애인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연구는 그의 필생의 과업이었다. 장애인 체육을 하다보니 인체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반 의사가 다 됐다.
나이먹은 사람은 절대로 냉온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냉온욕은 신장에 무리가 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먹게 되면 신장 기능이 떨어져 냉온욕은 약해진 신장을 더욱 약하게 한다는 것. 나이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목욕법은 따뜻한 수건을 등에 덮고 족욕하는 게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사람들을 끄는 호탕한 성격 탓에 찾아오는 사람을 물리지를 못했다. 그 때문에 선거기간 동안에 몰려있는 사람들로 인해 별의별 루머를 양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조차도 감사한 일이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냐며….
지금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이 야물어서 한 번은 꼭 돼야 하는데”라고 말할 때면 그는 그냥 씨익 웃기만 한단다. 지금은 새로 시작한 일이 있고, 새로운 생활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의 생활은 즐거운 나날이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그가 복흥, 쌍치, 구림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서 만든 747 모임이 지금은 그 어떤 모임보다도 활성화돼있는 것을 보면서 만족이란 걸 알 것 같다.
성격이 급한 만큼 합리적이라는 말을 듣는 그는 23살에 순창초 체육회 이사를 했고, 36살에 JC회장을 역임했다. 또 같은 30대에 경찰서 보안협력위원장을 맡아 했으며, 23살에 사업을 시작했다.
광주사태가 나는 바람에 사업에 엄청난 타격을 받아 승승장구하지는 못했지만, 작고한 어머니랑 고추장 공장을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며 살 수 있었던 점이 지금 생각하면 고맙기만 하다.
박사 학위를 끝내 고집했던 데에는 어머니와 한 무언의 약속 때문이었다. 사람은 무엇을 하고 살던 배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힘든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학위였다. 어머니가 원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끝내 이루고 싶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의 얼굴에 잠시 슬픈 빛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를 회고하는 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야 하며, 생활 속에서는 신의를 지키는 사람으로 기억돼야 한다”고 그는 말하며, “효도하는 사람은 용기와 덕을 가진 사람으로, 선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가훈을 말하며 웃는다.

이정화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순창군 읍·면민 협의회 4월 정

최기순 순창군 장애인편의증진기술

농업기술센터, 과수 화상병 원천

옥천5마을, 주민 화합 플리마켓

순창군장애인복지관, ‘2026

너의 탄생을 축하해♥ 장은우

순창군청소년수련관, 청소년 자

대한노인회 팔덕면분회, 선진지

“나무에 새긴 마음, 군민과 나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순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78107159 /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옥천로 32 / 대표이사: 오은숙
mail: scn5850@naver.com / Tel: 063-653-5850 / Fax : 063-653-5849
Copyright ⓒ 순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