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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리 옥산사와 임진난 전투 몰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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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18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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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순창군 풍산면 섬진강변 대가리 마을 오른쪽(오산초교 뒤)에 세워진 옥산사(玉山祀)는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김일손과 의병장 김치세, 김산경 부자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1957년에 세운 것이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김굉필, 정여창 등 소위 사림 세력들과 갚은 교류를 맺었으며 조선 성종17년(1486)에 과거 급제한 후 높은 벼슬을 두루 지냈다.
그는 연산군 4년(1498)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는데 훈신들은 이일을 세조(즉 수양대군)의 즉위를 비난한 것으로 무고하고 무호사화를 일으켜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는데 김일손도 이때 사형에 처해졌다.
김일손의 증손이며 조현에게 가르침을 받은 의병장 김치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아들 김선경과 함께 의병 700명을 거느리고 장수에 이어 금산 무주의 외적을 격파하고 한천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그 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 수 백 명 과 아들 산경과 노복 수 십 명을 인솔하고 섬진강변에 올라온 적을 무찔렀고 구례, 압록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여 조정에서 사복시 주부를 추증하고 선무원종 2등 공신에 봉하였으며, 고향 옥산사를 세워 제향 했다.
현재 풍산면 대가리 오산요양원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의병장 김치서 아들 김산경은 김일손 중손이며 조현에게 가르침을 받아 김치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일어날 때 아들 김선경과 함께 의병 700여명을 거느리고 위 내용과 같이 출전하여 승리하였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아들선경과 의병과 노복 등이 섬진강변 중섬에 배를 타고 의기양양하게 올라온 왜적을 맞아 몇일 간 물러났다 전진했다 하며 싸우고 싸웠다. 적이 잠시 물러나 평온을 되찾았으나 다시 적이 재정비하여 강물을 따라 올라옴으로 구례 압록으로 부대를 이동 그 위를 쫓아 구례에서 군사를 재정비하고 구례 압록에서 몇일 간 밤낮 전투를 벌였으나 아군의 피해가 많고 왜군이 계속 진격하자 세가 약하여 부자는 그 자리에서 아쉽게도 전사하고 말았다.
전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누구의 지시나 부탁도 없는 처지인대도 아버지의 충마와 아들의 충마는 온몸 전체가 피투성이가 된 채 곧바로 고향인 풍산면 대가리 고향에 도착하여 벌떡벌떡 뛰면서 울음을 터뜨리면서 두분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자 고향사람들은 부자가 죽은 것을 알고 말에 예의를 갖추고 먹이를 주었으나 먹이는 먹지 않고 계속 울다가 아버지 충마는 마을 앞에서 죽고, 아들 충마는 중섬 뜰에서 죽자 대가 마을 주민들은 말 무덤을 만들고 계속 관리를 해 주었다.
지금 마을 앞 몰무덤 자리에는 창고를 짓고, 중섬 뜰에 몰무덤은 대가 뜰 경지정비 사업 때 파헤쳐져 간 곳이 없다.
관리 소홀로 몰무덤은 없으나 이 충마 이야기는 계속 구전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이제라도 다시 충마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 할 것 같다.
나라를 위해 충성심에 죽은 장군의 뜻을 기리고자 기록해 둔다.
*참고자료 : 어르들의 증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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