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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 섬진강 중섬과 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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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11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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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문화원장
김 기 곤 | ⓒ 순창신문 | | 섬진강 중섬과 나루터란? 지금의 순창군 풍산면 두승, 대가 앞뜰 끝에 대풍교 다리 입구가 중섬의 주막이 있던 곳이다.
그 주막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수십 그루 둘러싸서 여름이면 들에 나가 일하는 농부들이 꼴망태 메고 나가 중섬 버드나무 밑에 누어 낮잠 한숨 자고 깔 베어 집으로 온 쉼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섬진강 상류쪽 풍산면 대가리에 속해 있고 두승, 대가 앞뜰 경지정리 작업하기 이전까지 섬으로 불리어져 왔다. 주막이 있는 나루터를 중심으로 섬진강물이 불어나면 강물이 감싸며 돌아나가는 섬이 되어 버렸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주막 터 앞쪽으로만 물이 흘러 내려간다.
그래서 중섬이라고 붙여진 것 같다. 대풍교가 설치되지 않고 경지정리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대강 쪽이나 순창 쪽을 왕래할 때 오가는 교통수단은 나룻배였다. 먼 옛날부터 이곳은 나룻배로 강을 건너다니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으며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대강면 주민이 이곳을 배로 건너 농사도 짓고, 순창시장도 보고 하는 배 사용료는 년 쌀 한 말, 보리 한 말을 사공에게 납부했다.
배는 물이 적을 때 줄을 달아 줄을 당기며 물을 건내 주고 했던 나루터이며, 여름이면 그늘이 있고, 물이 있어 철엽하기 좋고, 술판 벌려놓고 윷판 껄지게 벌려 술내기 하는 등 항상 이곳을 찾는 사람과 오고가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곳이다.
중섬 주변에는 모래밭이 많아 배추나 무가 잘 되어 순창 장에 무라면 두승, 대가 무가 최고였다.
설에 의하면 100여 년 전 순창지방에 대홍수가 나면 이곳 중섬은 자체가 물속으로 파묻혀 버렸다고 한다.
웃어른들의 구전에 의하면 많은 비가 내려 홍수가 지게 되면 섬진강 상류에서부터 흘러내린 비는 진안, 남원, 오수 천과 임실서 내리는 섬진강 물과 순창에서 내린 경천 물 등 수십 군데서 흘러 두승, 대가리 앞에 모여 향가 산모퉁이를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물이 범람하여 중섬 나루터를 물속으로 묻어버리면 나루터 주막집은 모든 살림을 배에 싣고 노를 저어 물 따라 대가리 쪽으로 올라와 두승대가 앞 200m지점에 있는 버드나무에 배를 메어 놓고 물 빠지기를 기다리다 비가 개고 물이 빠져 나가면 중섬 배는 물 따라 다시 중섬 나루터에 도착하여 물이 완전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 시대는 상류 쪽으로 모든 산들이 땔나무로 나무를 마구 잘랐기 때문에 산이 벌거숭이 산이었고, 주강인 섬진강 상류 섬진 댐이 없었고, 각 계곡마다 저수지가 없었기에 하늘에서 폭우가 내리면 그대로 강으로 흘러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대가리 중섬은 바다와 같이 물이 범람하게 되어 들판은 온통 모래로 뒤 덮고 웅덩이에 물이 잠긴 바람에 민물고기가 내려가지 못하고 서식하게 되어 웅덩이마다 미꾸라지, 메기, 가물치 등 각종 민물고기가 많았다고 한다.
바다 못지않게 큰 조개도 서식하여 인근 마을 주민들은 들에 나가면 많은 양의 물고기도 잡아 밥반찬, 술안주도 곁들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역사를 지닌 섬진강 대가리 앞 나루터도 문물의 시대가 도래 벌판에 경지정리가 되고 도로가 넓혀져 다리를 세우니 추억과 낭만담긴 뱃머리 나루터는 온데간데없고 휑하니 길만 뚫리어 있어 그 옛날 나루터 들녘에서 지저대는 종달새가 그립고 맑은 물에 투망 던져 고기잡이 하며 철엽 하던 시대가 그립기에 흘러 내려온 중섬 역사를 기록해 둔다.
*참고자료 : 어르들의 증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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