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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유팽로 장군 무술연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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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21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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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 ⓒ 순창신문 | 섬진강변 전남 곡성 합강 마을은 전남북을 합한 강으로 유명한 곳이며, 풍류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옛날에는 고을 원님들이 섬진강 맑은 곳에서 잡은 물고기를 안주 삼고 배를 띄워 놀던 곳으로 명성이 있던 곳이다. 이 곳 합강리 유팽로 장군은 어려서부터 시와 무술을 좋아해 밥만 먹으면 이곳 풍산면 향가리 옥출산 장군암에서 매일매일 혼자 무술과 도력을 닦은 자이며, 20세가 되던 해 무술과 공부를 마치고 있을 무렵 꿈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빨리 마을로 내려가 물리치라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보니 전국 곳곳마다 왜적이 진을 치고 있어 내가 할 일은 이때로구나 하여 순창, 옥과, 남원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합강 앞 넓은 들에서 훈련을 시켰다. 이 소문을 들은 왜적은 압록, 구례까지 와 진입을 못하였고, 고경명 장군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양대박은 우부장, 공은 좌부장이 되어 임진(1592) 7월 5일 적이 금산을 범했다는 말을 듣고 호서 의병장 조재득에게 격문을 보내 군사를 합하여 적을 치자고 하고 공이 선봉이 되어 금산으로 진군을 해갔다.
9일에는 와평으로 옮겨 적을 치니 형세가 크게 꺾였다. 다음날에는 의병이 도전을 하자 적의 선군이 나가 싸웠으나 불리하여 물러가거늘 의군이 승승하여 전진하자 적군이 성벽을 비우고 모조리 나오니 방어군이 먼저 무너지고 의군도 따라 깨지고 말았다.
이날 바람과 우례가 크게 일어나고 장사들이 항오를 잃었는데 공은 홀로 말이 건장하게 먼저 나왔다.
그리고 그의 종 충남(忠男)에게“상장께서는 벗어났느냐”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못하였습니다.”하거늘 공이 내 말을 돌려라 했으나 종이 앞 말을 가로막아 나가지 않았다. 공은 칼을 뽑아 종의 팔을 잘라 버리고 다시 어지러운 진중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수십명의 적을 베고 대장을 찾아냈다. 대장은 공을 돌아보며 “나는 이미 벗어날 수 없으니 그대는 달려 나가게.”하였다.
공은 말하기를 “난을 당하여 살기를 도모하지 않고 국사를 하는 것이 의리입니다.”라고 하고 결국 그 머리를 가리우다가 함께 죽으니 이때 나이가 29세였다. 그가 타고 있는 말도 많은 상처를 입고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다 슬피 울면서 한번 뛰더니 공의 머리를 찾아 입에 물고 곧바로 달려 옥과 합강의 본가로 갔다. 이때에 부인 김씨는 공이 싸우러 간 뒤로부터 뒤뜰에 단을 설치해 놓고 밤낮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문을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정신을 잃었다. 곁의 사람의 부축을 받아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말은 이미 죽어 있었고 오직 하나의 머리만 땅에 있거늘 곧 방으로 받들고 들어가 옷과 이불을 갖추어 염을 하고 선산에 장사를 지냈다.
이때 8도의 의병들이 모두 공의 성공을 깃발에 쓰고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마땅히 이래야 하였다고, 또 공의 부하 삼십칠인이 공의 순절한 땅에 나아가 실성통곡을 하고 각기 패도를 뽑아 자결을 하여 죽었다. 고향에서는 충마의 무덤을 만들어 지금도 말무덤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옥출산에서 연마한 무술을 토대로 의병장으로 싸우다 전사하신 분들의 비가 합강에 세워져 있다.
이정열 각은 (유월파 정열각) 임진왜란(1592)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금산 전투에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월파 유팽로(1554~1592) 충절을 기리고 그의 부인 원주 김씨 열행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선조 37년(1604)에 왕명으로 세운 것이 합강 마을에 세워 있기에 기록해 둔다.
*참고자료 :
순창땅 섬진강 칠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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