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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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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05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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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 ⓒ 순창신문 | 음력 11월은 양력으로 12월이다. 한해가 끝나는 달이며 동시에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동짓달이 되면 한해가 끝나고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다고 하여 책력(冊曆)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양력으로는 섣달인 12월이 남아 있기도 한다. 그러나 동지부터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불렀으며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동지(冬至)에 가장 중요한 풍속으로는 팥죽을 쑤어 먹는 일이다. 이것을 동지 팥죽 또는 동지 시식이라고 불렀다. 팥죽을 해먹는 까닭은 팥죽을 붉음, 즉 양(陽)의 대표적 색깔이라 집안의 잡귀를 몰아 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팥죽에는 나이 수만큼 새알심을 넣는데 새알심은 찹쌀가루로 새알만하게 둥글둥글 만드는 것이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리는 것은 조상에게 바친다는 천신의 의미를 갖고 있고, 집안에 놓는 것은 집안의 온갖 잡귀를 쫓아낸다고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러한 내용은 “김광욱의 율리유곡(栗里遺曲)”이라는 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팥으로 집집마다 죽을 쑤어서 문호에 뿌리어 부적을 삼네. 이아침 비린내 나는 산 귀신을 쫓아 거니, 동짓날부터 상서로움 많을 맞으리.” 동짓날 팥죽을 쑤는 풍습은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쓰여 있다. 공공씨(共工氏)에게 망나니 아들이 한명 있었다.
그 아들이 마침 동짓날 죽었는데 병을 옮기는 나쁜 귀신인 역신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살아 있을 때 무척 팥죽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역신을 쫓으려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전국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풍속으로는 동짓날 새해의 책력을 관상감에서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옥새를 찍어 모든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동짓날 다음날부터 낮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풍속이다. 조선시대는 귤이 귀해 제주도 목사가 귤을 진상하면 종묘에서 선대왕에게 올린 뒤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동시에 과거를 보았다. 이것을 “황감제”라 한다.
동지 계절 음식으로는 청어나 대구 등 어류와 동치미가 대표적이며 청어는 동짓달에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로 통영과 해주 등에서 임금님에게 진상을 올렸다.
대구도 통영에서 많이 잡아 진상했다고 하는데 얼은 대구를 회로 먹거나 또는 대구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 달의 절기로는 대설과 동지가 있는데 대설은 눈이 많이 내린다고 믿어왔다. 특히 대설에 눈이 많이 내리면 새해에는 농사가 잘되어 풍년이 들고 춥지 않은 겨울을 맞게 된다.
도이는 일 년 가운데에서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낮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생명의 새로운 부활이 시작되는 때라고 생각했다. “동국세시기”에는 이날이 태양이 새롭게 생명력을 자져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때라고 했다. 그래서 아세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은 설 다음의 작은설로 생각한 때문이다. 따라서 동짓날이 지나야 한 살 더 먹는 다고 하는 속설이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동지가 되면 궁중에서는 천지신과 조상에 대한 제사가 있었으며 신하들이 새해맞이 인사를 주고 받았다. 이러한 절기의 풍속들이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이제라도 젊은 후세들에게 조상들의 풍속을 알려 우리 선조들이 전해오는 풍속을 음미해 보았으면 하고 세시풍속을 적어본다.
*참고자료 : 열두 달 풍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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