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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보기의 지혜와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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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30일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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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 ⓒ 순창신문 | 요즘에는 길을 걷다 함부로 방뇨를 하게 되면 경범죄를 범해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반드시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으며, 요즘은 화장실 문화가 그 지역문화 척도를 알 수 있다 했다.
이제 변소나 통시 또는 측간이란 말은 없어진 셈이고 화장실로만 쓰인다.
옛날은 밥 먹기와 뒤보기를 다같이 귀하다고 했으며, 밥 잘 먹기만 귀한 것이 아니고 똥오줌 잘 누기도 귀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쾌식과 쾌변은 같다고 했다.
좋은 시상을 떠올리자면 측상(廁上)이 제일이라는 말도 있다. 측상을 요새말로 번역한다면 변기위에 앉아 똥을 눈다는 말이다.
옛날 우리네 조상은 밥 먹기 이상으로 뒤보기를 중하게 여겼다. 똥오줌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흙이 베푸는 은혜를 반이라도 갚을 수 있다는 정신이 뒤보기에 숨어 있었다.
그래서 길을 가다 함부로 방뇨를 하면 정신머리 없는 놈이란 욕을 먹었다. 들길에서는 소변이 마렵거든 밭가에나 논가에 가서 반드시 누어야지 잡초 위에 누면 안 된다고 했으며, 산길에서는 소변이 마렵거든 나무아래가 아니면 잡초 위에 누어야지 돌밭이나 길 바닥에 버리면 더러운 것이 된다고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손자를 대리고 길을 가는 할아버지는 손자가 소변을 본다고 하면 논밭이 나올 때까지 함께 하거나 정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길섶에서 풀줄기라도 구해 손자의 오줌을 묻혀 들고 가다가 맨 처음 만나는 논이나 밭에다 그 풀줄기를 던져 주면서 손자가 들으란 듯이 “손자 놈이 드리는 귀한 보약입니다” 라고 소리쳤다. 이런 것들이 곧 손자가 할아버지를 통해서 배우고 터득하는 지혜들이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뒤보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 까닭을 알고 살았다.
먹을 것을 주는 흙에게 고마워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흙을 비옥하게 해야 곡식이 잘 자라 먹을 양식을 구할 수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을 어려서부터 터득하도록 생활을 통하여 교육했었다. 어린이한테 지식만 주입시키려는 가정교육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정은 학교가 아니다. 학교는 지식을 위주로 가르칠 수밖에 없고, 삶의 지혜를 가르쳐 몸에 베이도록 하는 것은 가정을 떠나선 불가능하다. 어렸을 적에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할아버지 한태서 배웠다.
말하자면 뒤보기 같은 사려 깊은 처신과 같은 지혜는 학교 교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몸둘바를 그때그때에 따라 현명하게 해주는 지혜는 교실이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 있는 셈이다.
그 현장에서 인생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 터득한 바를 물려주는 것이 곧 풍습이다. 좋은 풍습은 세태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도록 해서 고을마다 특색을 갖추어야 살기 좋은 고장으로 거듭나는 법이다.
항상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만 앞세우면 정신 나간 짓을 범하면서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뒤보기 같은 삶의 지혜를 버리지 않았다면 땅을 고마워하는 정신을 상실하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뒤보기 같은 풍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산업사회로 탈바꿈해 도시화 되어 화장실 문화를 주장하지만 화장실 문화 근본정신은 뒤보기의 지혜로 성숙하였으면 좋겠다.
옛 선조들의 훌륭한 뒤보기 정신은 이제 먼 옛날의 아련한 행동으로 잊혀지고 찾을 길이 없어 아쉬움이 크다. 뒤보기의 풍속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기에 기록해 둔다.
*참고자료 : 생활문화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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