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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공찬이 / 김재석

감성을 깨우는 한권의 책의 힘

2021년 07월 01일(목) 11:25 [순창신문]

 

ⓒ 순창신문



고래가숨쉬는도서관이라는 출판사에서 김재석 작가의 <설공찬이>가 나왔다. 이 책은 지난 번 순창군립도서관에서 출간하였으나 비매품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하였다. 2021년 초, 모 텔레비전에서 <설공찬전>에 대한 내용이 방송을 탄 뒤로 이서영작가의 <다시 쓰는 설공찬전>이 하루에 수십 권씩 알라딘, 교보, 예스24 등에서 판매되었다. <홍길동전>보다 100년이나 앞선 최초의 국문(번역)소설인 <설공찬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으니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서영작가의 <다시 쓰는 설공찬전>은 미완성인 설공찬전으로 완성된 첫 소설이지만 인문학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어서 스토리를 따라가고자 하는 소설지향적 독자들보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독자들의 취향이었다고 한다면 김재석 작가의 <설공찬이>는 어른을 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1511년(중종6년) 채수가 쓴 <설공찬전>은 한문으로 쓰여지면서 동시에 한글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이 국문번역본이 1996년, 이복규 교수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지만 완성된 필사본이 아니었던 탓에 뒷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상상력에 의존해야만 한다.
이 필사본을 근거로 한 <설공찬이>는 독특한 구성으로 진행된다. <설공찬이>는 채수(1449~1515*)가 경험한 중종반정과 순창의 설씨 집안, 설충란이 경험한 이야기가 겹쳐 있다. 말하자면 설충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채수가 중종반정을 빗대는 소설을 쓴 셈이다. 김재석 작가는 이를 다시 비틀어 채수가 중종반정을 겪는 경험을 소설 속에 기입한다. 소설을 쓰는 채수와 이야기 속 또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설충란은 순창에서 살고 있었다. 따라서 설충란의 경험을 따라가다보면 순창의 다양한 문화적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김재석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다양한 기록들을 공부한다. 그는 내용은 필사본을 최대한 따라가면서 당시의 시대적 사건인 1498년 무오사화와 15세기 말 순창의 생활상을 찾아나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연산군의 횡포로 인한 정치적 불안감, 유교 사상이 뿌리를 내리며 여성의 삶을 도외시했던 남녀 차별, 중국이란 대국의 언어인 한문과 세종 임금이 만든 한글 보급 과정에서의 갈등 등, 원본의 에피소드와 시대적 생활상이 개연성을 갖도록 창작했다. 저승 이야기는 불교와 도교에서 차용해서 재해석 했다."
그의 소설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순창의 이곳저곳과 당대의 생활상들을 엿보게 된다.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적절히 뒤섞여 독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순창 곳곳을 함께 걷고 느끼게 된다.
이복규교수는 김재석 작가의 <설공찬이>가 3,400여 자에서 7만 7천여 자의 풍부한 중편소설로 탄생된 것을 가장 기뻐한다. 최초 발견자이면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설공찬전에 대한 사료를 축적해 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 <설공찬이>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한다.
김재석 작가가 <설공찬이>라는 제목을 결정한 것은 현전 국문 번역본의 제목을 존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시간의 역순법을 활용해 소설을 적었다. 채수가 사위 김감과 딸에게 탈고한 <설공찬전>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 현재와 과거 회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소설 속 소설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진행된다. 또한 역사 기록을 비롯, 관련 자료와 지식이 두루 활용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불교와 도교적 자료와 상상력, 순창의 당대의 다양한 민속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마암(맷돌바위) 전설, 모심기 노래, 상여꾼 노래, 들소리, 무당이 굿할 때 부르는 노래(시왕풀이) 등이 적재적소에 등장한다. 십팔주문을 외우고 성황대신을 모시는 단오절의 성황제, 두룡정 물맞이 등 순창 민속을 생생하게 소설 속에서 살려낸다. 죽음, 사후 세계라는 보편적 문제와 지역 문학으로서도 훌륭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원전의 공백을 '아버지에 대한 불효'를 속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으로 메꾸고 있다. 해원제를 지내고, 설공찬이 한을 풀고 저승으로 복귀해 심판을 받아 다시 인간세계로 환생한다는 결말 또한 독자들에게 불편하지 않은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소설을 읽어내려가다보면 마치 그곳에서 함께 동참하고 있는 듯한 현장감을 느끼게 된다. 설충란은 딸과 아들이 있다. 초희와 공찬이다. 공찬의 어릴 적 이름은 숙동이다. 둘 다 영특하였으나 공찬이가 글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한 반면 초희가 글을 잘 하는 것은 심사를 불편하게 한다. 당대에는 여자가 글을 잘 하여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충란은 어린 초희의 글 읽는 소리를 마당에서 듣곤 했다. "초희야, 세상 이치를 깨치는 데는 꼭 한문을 익혀야 되는 건 아니야. 우리 임금 세종께서 만드신 훈민정음으로도 얼마든지 세상 이치를 깨치고 나타낼 수 있단다. 다만 너에게 한문이든 한글이든 다 익히게 하는 것은 네가 능히 비교하여 자유자재로 글을 읽고 쓰게 하기 위해서야."
원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부인 이 씨가 살아 생전 초희와 소통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어머니는 초희에게 집안 일도 꼼꼼히 가르친다. 아버지 설충란이 마을 아낙들을 불러모아 곳간에 쌓인 지난해 곡식을 푼다. 농사철 모심기 전에 4월 보릿고개를 지날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충란의 논에 모여 모심기를 하며 노래를 부른다. "어~ 혀이 어~ 혀이 어~ 혀이 여루 상사디여/ 모손을 갈라쥐고 거듬거듬 심어나 보세/ 여여허~여~여허루~상사디이~여....."
초희는 아낙들 옆에 앉아 농사꾼들의 들소리를 한글로 흙바닥에 써나간다. 초희를 통해 살아 있는 들소리가 한글로 그대로 채록된다. 양반집 자식이 언문을 쓰고 동네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다닌다고 공침이가 어른들에게 일러바치려고 할 때 공찬은 이렇게 말한다. "배우는 데는 귀천이 따로 없어. 임금님께서 훈민정음을 널리 배우고 익히라고 하셨는데 무슨 잘못된 거라도 있느냐"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소리가 등장하고 설 씨 부인의 <권선문>이 등장한다.
김재석 작가가 말한다. "문학은 역사에 피와 살을 붙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문화재가 아니려면 그곳에서 노닐어야 한다. 시대를 벗삼아 화양연화花樣年華처럼 그 문화,를 즐기는 사람. 문학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어 현실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게 만드는 것, 문학의 힘이다. 이를 되살려 현재화하는 것, 우리의 몫이다.*

ⓒ 순창신문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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