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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 감성을 깨우는 한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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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실버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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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02일(목) 15:10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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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동문학가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읽는다. 필자가 읽는 분도출판사의 이 책은 1975년 10월 초판 발행되었다. <감성을 깨우는 한 권의 책의 힘>을 위한 33권의 책을 컬렉팅하면서 며칠 전부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다시 읽기 시작하였는데 표지를 넘기니 '1993년, 11월 9일 현재'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다. 93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아마도 그 이전에 읽었을 것이다. 읽고 읽고 또 읽어 오늘에 이르렀겠다. 어려서 읽었을 때는 표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마음이 매우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스토리는 이렇다.
옛날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다. 어린 소년은 나무에게로 와 떨어지는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주워 모아 왕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는 숲속 왕자놀이도 하고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 그네도 뛰고 사과도 따먹곤 했다. 나무와 숨바꼭질도 하고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소년이 성장하자 나무는 홀로 있을 때가 많아졌다. 어느 날 소년이 찾아오자 나무는 너무 기뻤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 소년은 | 
| | ⓒ 순창신문 | |
이제 나무와 함께 놀기보다 자신에게 부족하고 필요한 것들의 욕망을 나무에게 쏟아놓는다. 나무는 소년이 물건을 사고 신나게 놀 수 있게 돈을 주고 싶었다. 소년은 나무 위로 올라가 사과를 수없이 따서 수레에 가득 싣고 떠나버렸다. 떠나간 소년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외로움으로 슬퍼하던 나무에게 소년이 돌아왔다. 나무는 기뻐 온몸을 흔들었다. 소년은 나무에게 이제 어른이 된 자신의 욕망,을 쏟아놓는다. 따뜻한 집, 아내, 그리고 어린아이를 갖고 싶은 소년에게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베어가라고 말한다. 가지를 몽땅 베어 소년은 나무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이제 중년이 된 소년이 오랜 고독의 시간을 지나 나무에게로 왔다. "이리 온, 얘야. 나와 함께 놀자꾸나." 소년이 말한다. "난 너무 나이들고 비참해. 여기로부터 더 멀리 떠나기 위해 배 한 척이 있었으면 좋겠어." 소년은 나무 밑둥을 남겨놓고 몽땅 잘라 배를 만들어 멀리 멀리 떠나버렸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 소년이 돌아왔다. 소년은 이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노인이 되었다. 나무는 소년보다 먼저 이렇게 말했다. "얘야, 미안해. 이제 너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 되어 버린 소년이 말한다. "난 이가 나빠 사과를 먹을 수도 없어. 이제 내게 필요한 건 별로 없어. 앉아서 조용히 쉬고 싶을 뿐이야. 너무 피곤해."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굽은 몸뚱이를 펴면서 "앉아서 쉬기에는 늙은 나무 밑둥이 그만이지. 얘야. 이리로 와 앉아서 쉬렴."
소년은 시키는 대로 했고 나무는 그래서, 행복했다.
어려서 읽을 때는 '아, 이제 나무는 행복하겠구나. 노인이 된 소년도 행복하겠구나. 그럼 두 사람 다 행복해 진 거로구나.' 생각했다. 꽤 많은 시간을 경과하면서 다시 읽기를 계속하니 경험이 부족해 놓쳐버렸던 많은 의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낌없이 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서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어떻게 주고 받고 있는 것일까.
일주일 쯤 김용임여사의 큰 언니가 하늘빛정원에 거주하다 가셨다. 그녀는 이제 90세가 다 되었다. 그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눈빛은 밝고 맑았다.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몸피는 아주 작았고 많은 양의 식사를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편식이 심했다. 먹고 싶은 것만 먹었다. 식사를 할 때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이 허약하고 노인이기 때문에 대접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었는데 더이상 무엇을 배워야 하느냐고 말했다. 늙었으니 배움은 이제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나이에 배워서 었다 쓴다냐?" 필자가 제안한 그림 그리기도 싫고, 한글 연습하는 것도 싫고, 숫자 공부하는 것도 싫었다. 죽을 날이 가까운데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필자에게도 김용임여사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바로 24시간이다. 이 24시간 동안 필자의 하루는 눈이 빙빙 돌 만큼 바쁘게 운용된다. 우리는 지구별 여행자이므로 지구별 여행을 통해 무언가 가슴 속에 빛나는 별 하나쯤은 새기고 지구별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늘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지금, 여기에서 와글바글 살고 있으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지금, 여기,를 꿈의 공간으로 바꿔나가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큰 이모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그녀는 똑같은 말을 똑같은 톤으로 수십 번을 발화하곤 했다. 그녀에게는 비바람 없이 자란 평화만 존재할 뿐, 고난과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결실이 없어보였다. 그녀에게 내일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박제된 어제만 남아 있었다. 수십 년 전에 경험했던 사건들을 무한반복 서술하는 것이 그녀의 일과였다. 마지막 날, 북카페에서 식사했다. 그녀는 북카페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넓고 좋은 곳을 왜 이제야 보여주냐?"
하지만 '이렇게 넓고 좋은 곳'은 그녀가 일주일 전에 도착할 때 이미 보았던 풍경이었다. 그녀에게는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저장할 단기기억공간이 사라져버렸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어제의 공간과 지금, 여기인데 지금, 여기는 과거를 회상하는 동어반복의 공간, 그 이상이 아니다.
김용임여사는 필자의 어머니다. 김용임여사의 남편, 즉 필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는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엄마, 오늘부터는 저랑 같이 살아요. 오늘부터는 은행, 동사무소, 혼자 다녀오세요. 버스, 혼자 타는 연습 해보세요. 수영장? 혼자 가세요." 처음에 김용임 여사는 필자를 '나쁜년'이라고 했다. 늘 아버지로부터 보호받아왔으므로 독립하라,는 필자의 말이 절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6개월이 지나자 그녀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들은 버스도 혼자 못타고야, 은행도 혼자 못가야. 그게 얼마나 쉬운 일인디!" 6개월 만에 그녀의 생각이 변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상호독립에 있다. 서로 주체가 되어 거울을 바라볼 때만 거울 속 대상은 비로소 웃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어떻게 아낌없이 줄 것인가. 곰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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