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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감성을 깨치는 한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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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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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26일(목) 10:41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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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올해 첫 태풍이 어제부터 기세등등하다. 필자의 공부방에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비와 바람도 거세다. 밤새 두려움을 느낄 만큼 비는 세차게 내렸다. 새벽에 눈뜨니 몸이 무겁다. 허공에 손을 내밀면 습기가 만져질 것만 같다. 실내를 점검한다. 천정에서 물이 듣는 곳이 두 군데이고 화장실 바닥은 까맣게 변해 있다. 주변 하천을 흐르는 물의 압력으로 하수도가 역류한 까닭이다. 사천 삼천포는 229.5밀리미터의 비가 내렸고 부산 동래구는 차들이 폭우에 반쯤 잠겨 옴쭉달싹못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밤새 804세대 1106명이 사전 대피했단다. 잠을 설친 그들의 표정이 눈 앞에 보이는 듯하다.
자연의 힘은 거대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지 못했다. 어찌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5G 시대이며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초인공지능의 세상이라 하더라도 인간들은 비바람 하나 잡지 못한다.
필자는 며칠 전부터 <노인과 바다>를 읽고 있다. 저 두꺼운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두 사람이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와 어린 소년 마놀린. 산티아고는 84일째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그의 운이 다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린 소년 마놀린은 산티아고에게 고기잡는 법을 배웠다.
"처음 저를 배에 태워 주셨을 때 제가 몇 살이었죠?" , "다섯 살이었지."
노인은 야위었고 꺼칠했으며 목덜미에는 주름이 깊게 잡혀 있다. 그의 두 손에는 낚싯줄에 걸린 묵직한 물고기들을 다루느라 생긴 깊은 상처가 있다. 상처들은 물고기가 살지 않는 사막의 침식만큼이나 해묵은 것이다. 그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낡았으나 다만 그의 두 눈은 바다와 같은 빛이었고, 밝고, 패배를 모르는 눈빛이다.
산티아고와 소년은 맨발로 걷는다. 노인이 지닌 것은 참으로 소박하다. 함께 고기를 잡던 소년은 이제 산티아고와 바다에 나가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가 운이 다한 살라오(운수가 끝장나 최악의 불운을 맞는다는 뜻의 스페인어*)인 산티아고와 소년을 떼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은 늘 산티아고를 정성껏 챙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카페에 가서 커피와 먹거리를 가져다 주고 미끼로 사용할 정어리를 구해다 준다. 노인의 옷은 깁고깁어서 더이상 깁을 곳이 없을 만큼 낡았다. 산티아고는 잠들기 위해 침대로 올라가 바지를 벗어 둘둘 말아 베개를 만들고 신문지를 그 속에 넣는다. 담요로 몸을 감고 다른 헌 신문지들 위에서 몸을 굴리며 잠이 든다. 그는 늘 꿈을 꾸었다. 소년이었을 때 보았던 아프리카의 긴, 눈이 시리도록 하얀 모래밭, 그 해변가를 늘 꿈꾸었다. 그리고 해변을 거니는 사자들을 꿈꿨다. 사자들은 고양이들처럼 노닐었고 산티아고는 소년을 사랑하듯 사자들을 사랑했다. 신새벽에 깨어난 노인은 맨발로 걸어내려가 마놀린을 깨우고 먼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한다. 새벽녘 바다로 나간 산티아고는 가만히 노를 저어간다. '난 낚싯줄을 정확하게 드리울 줄 알지. 단지 난 이제 운을 더 이상 타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누가 알아. 어쩌면 오늘은 걸릴지도 몰라. 매일매일이 새 날이니까.'
그는 패배할 지언정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영혼이다. 두려워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영혼들이 보기에 그는 불도저 같은 영혼이다. 바다는 그의 일터이며 그의 삶 자체다.
그러나 삶은 녹록치 않아 평생 어부로 살아온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배 한 척과 바다와 마놀린 뿐이다. 산티아고는 바다로 나아가 자주 혼잣말을 한다. 마놀린과 함께 고기잡이를 할 때는 과묵했던 그였다. 이제 마놀린이 없으니 그는 혼잣말을 한다. 군항새, 부유생물, 녹색거북, 대모거북들을 만난다. 그는 다랑어를 잡았다. 미끼로 쓸 요량이다. 마놀린이 준비해 준 정어리와 다랑어. 좋은 먹이가 준비되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잡지 못한 지 팔십오 일째 날이다. 산티아고는 점점 더 먼 바다로 나아간다. 이제 곁에는 그와 눈을 마주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바다에 던져놓은 낚싯줄이 당겨진다. 무언가 단단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묵직한 것이 낚싯줄을 당기고 있다. 드디어 산티아고와 커다란 물고기가 만나는 순간이다. "이건 참 굉장한 놈이구나!" 물고기는 미끼를 문 채 도망치기 시작한다. 물고기는 산티아고의 배보다 더 길다. 산티아고는 미끼를 문 물고기가 지향하는 방향을 따라 낮을 보내고 밤을 보내고 다시 아침을 맞는다. 그러면서 자주 입버릇처럼 되뇌인다. "그 애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움도 받고 이걸 보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망망대해에서 하바나의 불빛과 멀리 떨어져서 물고기와 대적하면서 고독으로 점철된 시공간을 오직 스스로와 대화하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물고기가 점점 힘을 잃어가며 뱃전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산티아고는 죽을 힘을 다해 작살을 들 수 있는데까지 높이 쳐들고, 물고기의 큼직한 가슴지느러미 뒤쪽 옆구리를 내리쳤다. '그는 그의 모든 고통과 남은 힘, 그리고 오래 전에 잃어버린 자존심을 다 합친 뒤, 그것으로 물고기와 맞섰다.' 그는 정신이 명료해지자 죽은 물고기를 뱃전에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이제 그가 포획한 물고기를 하바나까지 운반해야 하는 임무가 남겨졌다. 어찌 되었을까? 산티아고가 물고기를 공격할 때 흘린 피가 상어들을 불러들인다. 상어떼는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산티아고가 쉴 새 없이 달려와 물고기의 살을 물어뜯는다. 결국 산티아고가 사흘 만에 하바나 항구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남겨진 것은 거대한 꼬리가 달린 물고기의 등뼈 뿐이었다. 이것은 결국 산티아고의 패배일까? 최선을 다하여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다시 출발하여 새로운 목적지에 도착하니 그의 손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산티아고는 깊은 잠속에 빠져들고 그의 곁에는 마놀린이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다. '산티아고는 사자의 꿈을 꾸고 있다.'
1899년, 지구별에 도착한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선물한 <노인과 바다>다. 삶이 이처럼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듯 느껴진 적은 없는가? 이 삶을 어찌 살아야할지 참으로 막막한 적은 없는가? 자연의 위대함, 포기하지 않는 인간, 삶이라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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