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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이 들려주는 언어 이야기 / 박해용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2021년 02월 10일(수) 14:52 [순창신문]

 

ⓒ 순창신문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을 알지 못해도 아마 이 문장은 많은 이들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세상은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고 언어는 '그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이란 사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세상'이 된다.
필자의 하늘빛 정원에는 두 마리의 길냥이들이 날마다 먹이를 구하러 온다. 나리와 보리다. 예전에는 인기척이 있을 때까지 바깥에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더니 요즘에는 "나, 여기 왔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듯 "야옹야옹" 소리를 내어 자신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한 마리 고양이가 정원에 있다."라고 필자가 표현한다. 이 표현은 '한 마리 고양이'와 '정원'과 '있다'는 뜻이 서로 관계를 맺어 하나의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언어로 표현하면 머릿속에는 '한 마리 고양이가 정원에 있는 세상'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처럼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통해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아'는 언어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언어의 기능은 보여 줄 '수' 있는 세계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을 언어의 <그림 이론>이라 불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로 세계를 <그린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눈이 온다."라고 말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눈이 오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언어는 곧 그림으로, 풍경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로 세계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한 마리 고양이가 정원에 있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이고 이 사실을 언어로 그린다면 언어와 사실들이 일대일로 만나게 된다. 이 사실들을 언어로 표현하면 우리는 그림으로 이 세상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세계의 사실들을 모두 언어로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 초기의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 바로 "언어로 그릴 수 있는 세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그리고, 그릴 수 없는 사실의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표현으로 정의되어 남았다.

그런데 점차 비트겐슈타인은 의문을 갖게 된다. 분명히 언어로 세계를 전부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 속에 갇힌 언어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언어란 결국은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생활 방식으로 특정한 장소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말하자면 세계를 설명하는 언어를 보다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생활 습관이나 독특한 행동까지 함께 연구해야만 보다 적확한 언어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즉 문맥context 속에서 언어를 파악하라.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의 구조와 언어의 구조가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는 처음의 생각을 버리게 되고 언어가 한 가지 뜻만 갖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세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안개에 싸인 언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야 하고 그 안개를 벗기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날마다 사람들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이 대화 속에서 잦은 오해가 발생하게 된다. 나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나는 옳지만 그(녀)는 틀렸다. 혹은 자신이 맞고 내가 틀렸다. 이렇게 다툼과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언어를 잘못 사용하고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언어철학이란 언어를 잘못 사용해 '더러워진 방을 깨끗이 정돈하는 일'이었다. 그는 잘못 사용된 언어를 바르게 사용하도록 하는 사소한 지점을 발견해내는 것이 바로 철학의 임무라고 보았다. 이 임무를 위하여 그는 언어 게임을 제안한다. 그는 '오리-토끼 그림'을 제시한다.

여기 오리와 비슷한 토끼, 혹은 토끼와 비슷한 오리가 있다. 만약 오리와 토끼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부분이 오리 같고 어느 부분이 토끼 같은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리만 알고 토끼를 모르는 사람은 그림 속 동물을 오리로 인식할 것이고 토끼만 알고 오리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토끼로 인식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오리나 토끼에 대하여 어떻게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그림을 보고도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된다. 초점은 우리가 언어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그전에 무엇을 어떻게 경험했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이미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상황과 사물과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아는 언어만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생각했다. 말하자면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내가 생각하고 사용하는 언어의 법칙에 따라서만 언어 게임을 진행하려고 한다는 것.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은 나의 관점, 즉 자신의 특정한 모습으로만 세계를 파악하는 <한정되고 닫힌 언어게임>이라고 보았다.
우리의 언어는 곧 우리의 인식이다. 이렇게 닫힌 태도로 언어 게임을 하게 되면 언어의 다양성을 놓쳐버리고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은 상대방이라는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만의 언어가 아닌 상호소통이 가능한 '우리'의 언어, 즉 서로 이해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을 비트겐슈타인은 <관점의 변화>라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보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라. 그는 똑같은 음악도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다르게 듣는 것처럼 언어도 그 말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언어의 참된 이해는 그것을 문맥 속에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힘을 통해 가능하다.*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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