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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들려주는 순수이성 비판이야기 / 박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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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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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05일(금) 15:51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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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코페르니쿠스가 말했다. "하늘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분명히 하늘이 돌고 있는데 어떻게 지구가 돌고 있다고 엉뚱한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결국 착각한 것은 코페르니쿠스가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었다. 눈으로 보면 천동설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믿지 않고 그것을 의심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열 수 있었다. 수천 년 동안의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 시대에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이유 중 하나는 종교적인 것이었다. 당시 유럽 사회는 카톨릭교회가 중심이었고 자신들이 정해 놓은 교리에 매우 엄격했다. 교리는 종교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일상 곳곳에까지 적용되었고 음악을 작곡할 때도 정해놓은 규칙에 맞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아 종교재판에 회부되던 시대였다. 또 다른 이유는 상식에 있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도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니까. 그러므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으로 기존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통째로 바뀌게 되었다. 그는 이 세상을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만'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위대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했다는 것.
<칸트가 들려주는 순수 이성 비판 이야기>의 저자 박영욱은 칸트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끌어와 칸트를 쉽게 안내한다. 강아지가 우리와 같은 세상을 볼까? 강아지는 색맹이다. 강아지는 명암만을 겨우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들처럼 다양한 색감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느 세상이 참일까? 만약 강아지들이 보는 세상이 잘못된 것이고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얼까?
인식이란 사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인식은 항상 올바른 걸까? 철학자 칸트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물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이런 인식론상의 전환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혹은 전회라고 부른다.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만큼 정확한 것일까.
어느 깊숙한 산골에 아주 깊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우물 밑바닥에는 세 마리 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불만 없이 나름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개구리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저 꼭대기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는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면서 우물 꼭대기에 다다랐다. 세상이 그토록 환할 수 없었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다. 그는 이글거리는 태양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우물 밑으로 돌아와 두 개구리에게 말했다. 두 개구리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호기심이 동했다. 두 마리는 미끄러운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곧 그들도 꼭대기에 도착했다. 어!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꼭대기에서 내려온 두 마리 개구리는 첫 개구리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화를 냈다. 첫 개구리 또한 두 마리 개구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만을 옳다고 우겼다. 그들의 평화는 깨졌다.
철학자 칸트는 말한다. "우리에게 보이는 이 세상의 모습은 그저 우리의 '눈'에 드러난 것일 뿐이다. 개구리와는 달리 우리는 우리의 귀와 눈을 의심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마리 개구리처럼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고 그것을 타자에게 강요하지만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애쓴다.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라. 우리의 생각을 의심하라. 이것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습관화하는 방법이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전생과 내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힌두교 전통을 가진 마을에 만디라라는 사람이 나타나 자신을 브라흐마의 후예라고 자처하면서 사람들에게 죽어 천당에 가려거든 많은 돈을 바치고 기도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근엄한 태도와 비범한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갖다바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이 들기 시작해 결국 만디라를 법정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법정에서 재판관들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죽은 뒤에 천당에 갈 것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칸트가 법정에 나타나 만디라가 아닌 <이성>을 법정에 세웠다. 그가 말했다.
"이성이란 한마디로 누구나 다 알 수 있고 납득할 만한 사실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즉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도 이성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를 이성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이성이 관여할 수 없다. 즉 이성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성은 아무리 뛰어나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신에 대하여, 죽음 이후에 대하여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성은 자신이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자신의 권리를 넘어서지 말라."
칸트는 인간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생각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칸트는 또 이렇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신>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는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신의 모습이 모두 다 다르다. 서로의 주장을 확인할 방법도 없는데 서로 다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또한 대충 알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기 위해 애써야 한다.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내가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개념>과 결합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개념을 익히고 그것을 경험하는 것, 칸트가 지시하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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