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 김동규·김응빈
|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
|
2021년 01월 28일(목) 15:09 [순창신문] 
|
|
|
| 
| | ⓒ 순창신문 | |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난다면 그는 어떤 질문을 던질까? 플라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플라톤은 철학자인데 생물들이 말을 걸어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인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향한 시선이 얽히면서 서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 미처 알지 못하고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경험 세계 속으로 퐁당 빠져들 것 같다.
정현종 시인은 말한다. "서로 다른 분야가 솔기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도 놀라운데 그 결론이 사랑에 이르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 세상과 사람들의 삶 속에 사랑이 없다면 삶이란, 생명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겠는가?!"
한 과학책방 대표도 말한다. "철학자가 생물을 이야기 한다고 융합일까? 생물학자가 철학적 질문을 한다고 통섭일까? 아니다. 철학도 생물학도 서로에게 스며들어 그 흔적이 우리 마음에 남아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진정한 융합의 때일 것이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새로운 국면phase으로 접어드는 것. 그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교묘한 이중주의 신비가 아닐까. 비오스bios라는 단어는 앞 음절이 강세면 '활'로, 뒤 음절이 강세면 '생명'이라는 뜻이었단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활은 생명을 뜻하지만, 하는 일은 죽음"이라고 말했다. 활은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노리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리라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이다. 이는 조화로운 하모니를 의미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와 생성의 철학자였다. 그는 <활과 리라>처럼 서로 대립하는 것들의 팽팽한 긴장과 조화가 세상이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이치이며 또한 창조의 동력이라고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표현처럼 생물학과 철학의 만남 또한 서로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만나 서로를 조율하고 사유를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창조의 순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생물학은 경험과학으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고, 철학은 사변의 무능력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다. 이 책의 목적이다. 21세기 생물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유전 정보를 조립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만큼 생명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해진 시대다. 첨단 유전자 기술로 기존의 생명체를 변형시킬 수도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생물학은 사회, 문명, 자연 전체에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확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적 기반이 없다면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가 될 위험이 다분하다.
학문적 골동품이 되어 버린 철학. 고전의 주석에만 매달려 철학의 권위를 내세우려고 한다면 철학에는 미래가 없다고 저자들은 생각한다. 김응빈은 생물학자이고 김동규는 철학자다.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자 강좌를 개설해 강의도 함께했다. 서로의 권역을 탐색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이 조금씩 확장되는 경험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우리들과 나눈다. 지식이 지혜의 단계로 진입하려면 나눠야 한다. 지식은 나누지 않으면 여름날, 공기에 오래 노출되어 상해가는 음식처럼 역한 냄새가 진동하게 된다. 내 안에만 감춰놓고 독식하는 지식은 내 몸과 마음에 독이 되어 나를 죽인다. 그런 '나'들이 많아지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사회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생명을 가진 인간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에서 개체는 보통 '개인individual'을 뜻한다. 개체는 라틴어로 '인디비두우스individuus'로 '나눌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 인디비두우스는 '생명 내지 죽음'을 함축한다. 생물학에서 생명의 최소 단위는 '세포'란다. 세포로 시작하는 생물학 교과서의 첫 부분에 나오는 단어, 미토콘드리아. 세포는 핵막의 유무에 따라 진핵세포와 원핵세포로 나뉜다. 원핵세포는 단칸방, 진핵세포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집이라고 보면 된단다. 대부분의 동물과 식물, 일부 미생물은 기본적으로 진핵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거의 모든 진핵 생명체에서 발견되며 세포호흡을 담당한다. 닉 레인이라는 과학자는 미토콘드리아가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데 숨은 지배자라고 극찬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성性의 비밀이 담겨 있고 노화와 죽음을 결정한다. 왜 세상에서 살날이 정해져 있는지, 왜 끝내 늙고 죽어야만 하는지도 알려준단다. 미토콘드리아는 말단 세포의 소기관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세포가 온전히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토콘드리아와 핵 사이에 끊임없는 소통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린 마굴리스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발견된 지 2년쯤 지나 <세포 내 공생설> 가설을 세웠다. 지구에 박테리아만 살던 태초에, 큰 박테리아가 작은 박테리아를 먹었다. 하지만 소화시키지 못했다. 포식자 내부에서 작은 박테리아가 살아 남은 것이다. 그러다가 서로 점차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했다. 즉 공생관계가 이뤄진 것이다. 이런 세포 내 공생설은 공생발생론으로 이어진다. 공생발생론이란 '장기간 지속적으로 공생 관계가 확립됨으로써 새로운 조직 기관, 생물, 더 나아가 종種이 생성된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공생은 개체들의 오랜 미래다.
생물학에서 공생은 <경쟁>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함께 사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래서 돕기도 하고 때로 싸우기도 한다. 말하자면 경쟁도 공생의 한 방법'이다.
저자들은 우리들을 생물학에 입문시킨다. 1부에서는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라는 부제로 한나 아렌트, 르네 지라르, 리처드 도킨스, 카르페 디엠, 메멘토 모리를 연결시킨다. 2부에서는 동물과 인간, 자연과학과 인문학 그 '사이between'를 탐색한다. 생물학이 비약적인 과학적 진보를 이루었다면 이제 미래를 고려할 '비전'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시인 엘리엇의 질문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곰곰.*
|
|
|
|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