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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 / 알랭 바디우 / 슬라보예 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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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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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1일(목) 15:5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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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겨울 아침.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도로에도, 차창에도 눈이 소복하다. 일찍 집을 나서긴 힘들겠다. 도로가 얼어버리면 운전은 불가하다. 오전 10시에 시영군과 약속이 있었는데 지키기 힘들 것 같다. 포기하고 공부를 하고 있으려니 햇살이 조금씩 허공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10시쯤 되니 눈이 녹는다.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대학은 이제 시험이 끝났다. 곧 방학이겠다. 오랜만에 만난 시영군은 시험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한 표정이다. 그는 철학과 3학년 2학기를 무사히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2학기 공부를 하면서 자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흄의 경험론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데카르트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베르그송은 생철학자래요. 니체와 쇼펜하우어 사상에 의존하고 있대요. 줌으로 강의를 들으니 평면적이어서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어요. 설명 좀 해 주세요." 그는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질문을 한다. 질문에 답을 충분히 못해 줄 것 같으면 북카페로 달려가 책들을 찾아 이것저것 펼쳐보고 요약해 다시 전화로 설명해 준다. "칸트는 너무 어려워요. 인식론이, 존재론이 뭔지 설명해 주세요."
그런 그의 강의 목록에 <철학과 직업>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재미없을 것 같아 몇 명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팀으로 나눠 리더를 정했다. 시영군은 강의 제목만 주고 모든 것을 알아서 진행하라는 교수의 제안에 처음에는 황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조금씩 생각머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역동적이고 주도적인 학습 과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고 통찰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철학은 모든 학문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음을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체험함으로써 철학이 어떻게 직업과 연계되어 그 직업을 직업답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결국 이 고민은 그 자체로 커다란 수확이었을 것이다.
그는 기말고사에 어떤 문제들이 출제되었고 어떻게 답안지를 작성했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이렇게 중요하고 재밌는 학문인 철학을 사람들은 왜 가볍게 심지어는 우습게 생각하는 걸까요?"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은 <바디우와 지젝, 현대의 철학을 말하다>이다. 알랭 바디우는 1937년 모로코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사회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철학자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현존하는 철학자 중 가장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철학자다. 1949년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나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서 라캉을 연구함으로써 라캉과 프로이트를 재조명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독일 관념론에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이 흐름을 복원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지적 도구로 라캉의 정신분석을 활용한다. 그저 현학적인 철학자가 아니라 알랭 바디우처럼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이론가이기도 하다. 그의 관심사는 워낙 다양해 그의 책을 읽으려면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당혹함을 주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알랭에게 철학자는 "모든 것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즉 철학자란 "자신의 문제를 <구성>하는 사람, 문제를 <창안>하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철학적 사유를 위한 상황이 발생하면 현재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렇다면 철학적 사유를 위한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그는 세 가지 예를 통해 철학적 상황을 설명한다.
첫째, 서로 다른 종류의 사유, 서로에게 이질적이고 어떤 공통된 척도도 없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철학이 개입하게 된다. <선택>으로서의 사유, 결정으로서의 <사유>에 직면할 때 실존의 선택, 사유의 선택이 필요할 때 철학이 필요하다.
둘째,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바닷가에 앉아 도형을 연구하고 있었다. 로마 병사가 다가와 로마의 장군 마르켈루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며 채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에 화가 난 특사는 아르키메데스를 칼로 찔러 죽인다. 알랭은 이때가 바로 철학적 상황이라고 제시한다. 국가의 권리와 창조적 사유 사이의 이질성 이 우연한 사건 권력과 진리 사이의 거리. 이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밝혀내는 것이 철학의 임무라고 알랭은 말한다.
셋째, 한 젊은 여인이 평범하고 정직한,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등장하고 그녀는 사랑에 빠진다. 당시 간통을 저지른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당해야 했다. 두 연인은 도망친다.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편은 두 사람이 잡히지 않도록 시간을 벌려고 애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붙잡혀 노새 위에 등을 마주한 채 묶여서 죽음을 향해 간다. 하지만 두 사람은 황홀한 상태인 듯 희미한 웃음을 보일 뿐 어떤 비애도 느낄 수 없다. 알랭은 바로 이 연인들의 <웃음>이 철학적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사랑이라는 사건은 두 연인들을 실존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법이나 결혼의 법칙 같은 삶의 일상적인 규칙과는 어떤 공통된 척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예외>를 사유하는 것. 일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아는 것. 삶의 변형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 바로 철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즉 그는 <선택>과 <거리>, 그리고 <예외>를 다루는 것이 철학의 세 가지 큰 과업이라고 지적한다.
너무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지는가. 우리는 날마다 24시간을 살아간다. 벌써 2020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우리는 이 시간을 살아가지만 진정으로 현존하고 있으며 실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향해 가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우리의 삶은 거저 살아지지 않는다(거저 살아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철학은 지혜 사랑이란다. 나의 삶에 대한 질문. 지혜 사랑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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