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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미학 / 김동규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2020년 12월 23일(수) 16:57 [순창신문]

 

ⓒ 순창신문



겨울이 깊어 간다. 한두 번쯤 눈도 내렸다. 어깨 움츠리며 한껏 떨리는 겨울 한가운데에 서 있다. 몇 년 전쯤이라면 '너무 추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법한데 이제는 꽤 당당하고 더 건강해진 것 같다. 복흥면 추령의 추위가 건강하라고 부탁한다.
필자는 9년째 SNS를 통해 전국의 영혼들과 아침편지를 써서 나눈다. 이제는 제법 많은 분들이 필자의 아침편지를 기다린다. 음악과 어제 공부한 내용들, 하루 전에 경험한 일들을 텍스트화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혼잣말인 듯하지만 누군가가 듣고 메아리가 되어 주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어깨를 겯고 함께 걷는 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공부의 힘. 연대의 힘이다. 책을 통해 멀리 떨어져 교신하는 사람들에게 책 한 권의 힘은 대단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가슴 떨리는 설렘을 느낀 책이다. <멜랑콜리 미학>. 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책을 읽고 정리한 딸의 글을 엄마가 포스팅 했다. 아름답다. 독서력이 높지는 않은 탓인지 군데군데 밑줄 그은 내용들을 올려 놓았다. 몇 문장들이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펼쳤다. 아, 음악처럼 울리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저자는 철학자다. 고대 그리스 철학, 독일 관념론과 낭만주의 그리고 하이데거를 비롯한 독일 현대 철학과 미학이 주요 관심 영역이며 서양의 멜랑콜리 담론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 한 편을 제시한 뒤 이 영화를 기반 삼아 '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에 관한 철학적 단상'을 일반 독자들에게 미학적 관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예술철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왔지만 예술을 삶의 큰 문맥context 속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있음이 늘 부끄러웠단다. 예술에 관한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수단으로서의 미학이 아닌, 우리 삶에 예술과 철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단다. 그러다가 <글루미 선데이>를 만나 '예술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죽음의 노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글루미 선데이>의 독일어 제목이 <사랑과 죽음의 노래>다. 저자는 <사랑> <죽음> <노래> 라는 이 세 단어의 조합 속에서 자신에게 늘 안개로 드리워졌던 미학에 관한 빛나는 열쇳말을 찾아냈다.

서양의 미학 개념들은 대개 사랑과 죽음을 근원으로 삼고 있는데 이 사랑론과 죽음론이 결합되면서 멜랑콜리라는 특이한 정조가 예술적 형식 하나하나에 배어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사방으로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을 짜맞춰 멜랑콜리 미학을 설명한다. 그는 <철학>이란 생각을 다시 부르고, 생각에 잠기고, 생각을 모으고 그래서 개념화, 논리화, 로고스화, 결국 언어화시키는 작업이라고 본다. 철학은 여타의 학문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여타의 학문을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간절히 사랑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죽음'의 노래다. 그래서 저자 김동규는 사랑과 죽음, 예술 사이의 내밀한 연관성을 이 책을 통해 드러내고 사랑과 죽음이라는 낭만적 주제를 그저 감상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철학적 기반 위에서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멜랑콜리melancholy는 '우울, 우수, 습관적인 우울, 체질적인 우울'을 뜻한다. 저자는 서구의 미학은 자기애적인 '사랑론'과 자유의 최고 형식으로 전개되는 '죽음론'에서 독특한 <멜랑콜리 미학>이 형성되었음에 주목한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라즐로, 피아니스트이며 피고용인인 안드라스, 손님인 한스는 모두 푸른빛이 감도는 일로나를 사랑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하지만 독일 영화이므로 대사는 독일어로 전개된다. 일로나를 먼저 사랑했지만, 첫눈에 사랑의 감정으로 얽혀버리는 안드라스와 일로나를 바라보면서 라즐로는 자신의 몫의 사랑을 구함으로써 세 사람은 동시에 사랑 안에서 함께 살게 된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낯선 구도지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를 내려놓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작업. 죽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사랑.

저자는 사랑은 '타자의 침입사건'이라고 간주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 내 안에 그(녀)의 거주지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는 사랑이 로맨틱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온전히 나 자신이었던 상태에서 타자라는 병원체가 침입함으로써 내 속에 나 아닌 것이 나를 숙주 삼아 내 안에서 성장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감싸고 있던 면역체계를 뚫고 들어온 병원체. 그러므로 사랑은 자기 상실의 고통을 수반하는 치명적인 열병이 된다.
그는 미학의 최고봉에 올라 있는 플라톤을 데려온다. 플라톤은 영혼과 영혼의 윤회를 믿었다. 그는 사랑하는 대상은 이미 만난 적이 있는 누군가이며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사실은 감격적인 '재회'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서로를 만나 황홀과 갑작스런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대상을 깊이 사랑하고 알아갈수록, 점차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콩깍지가 덧씌어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스탕달은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겨울이 되면 찰츠부르크의 암염 채굴장 안에 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를 넣어둔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꺼내보면 원래의 초라한 모습은 사라지고 소금 결정으로 뒤덮여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이러한 결정 작용, 응결 작용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신비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이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연인의 매력을 '발견해내는 놀라운 능력能力이다. 당신은 지금 날마다 그(녀)의 새로움을 발 견 해 내 는 진정한 사랑 안에 존재하고 있는가. 어제의 내가 죽고 새롭게 다시 사는 것, 사랑.*

ⓒ 순창신문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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