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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vs 레비나스 / 최상욱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2020년 12월 16일(수) 16:09 [순창신문]

 

ⓒ 순창신문




하이데거와 레비나스. 레비나스와 하이데거. 이 두 철학자를 굳이 비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이데거 vs 레비나스>의 저자 최상욱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이데거 스페셜리스트다. <하이데거 인간론> ,<하이데거 언어론>, <하이데거 자연론>, <하이데거에게서의 예술의 본질>, <하이데거의 대지 개념에 대하여> 등 하이데거를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꾸준히 알리고 있다.

하이데거는 1889년 독일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났다. 하이데거는 20세에 프라이부르크 대학 신학부에 입학해 신학과 철학 수업을 들었고 26세에 첫 강의를 시작했다. 33세쯤부터 하이데거의 강의는 학생들을 열광시켰다. 학생들은 그의 의상과 말투, 몸짓, 언어 등을 흉내냈다. 그는 학생들에게 '메스키르히에서 온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서의 하나로 인정받는 <존재와 시간>을 세상에 내놓은 때는 38세. 그리고 이듬해 자신을 가르쳤던 현상학자 후설의 뒤를 이어 프라이부르크 대학 정교수가 된다. 44세에 그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에 취임한다. 취임 연설에서 하이데거는 당시 나치 정권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으로 '노동, 군사, 지식의 의무'를 강조한다. 대학이 나치 정권에 지배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고 하지만 바로 이때의 그의 입장은 오래도록 그를 곤혹스러운 지경으로 몰아간다. (레비나스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한때 하이데거주의자였던 레비나스는 이 일을 계기로 평생 하이데거 철학을 부정하는 철학으로 일관하게 된다.) 45세에 대학 인사에 간섭하려는 나치당의 압력에 불복해 총장직을 사임했다.

레비나스는 1905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탈무드와 히브리어 성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세에 철학 수업을 시작하고 현상학을 배우면서 후설과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게 된다. 레비나스는 20대 학생으로서 30대의 하이데거를 배웠고 하이데거로부터 배웠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도 읽고 그의 강의도 들었다. 20대의 어린 그에게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책 중 하나였고 하이데거를 깊이 존경하게 된다. 그는 25세에 후설 현상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27세에는 <하이데거와 존재론>이란 논문을 통해 하이데거의 사상을 프랑스에 알리기도 한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실존적 인간', '세계', '역사성', '시간성', '던져진 존재', '기투하는 존재' 등의 개념들을 내면화한다. 이렇듯 레비나스에게 커다란 스승이었던 하이데거.

그러나 하이데거가 총장 취임 연설문을 낭독한 직후, 레비나스는 하이데거 철학이 나치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결론짓고 그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하더라도 나치즘과의 연관성 자체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과오라고 간주한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레비나스에게 하이데거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준 셈이다. 레비나스 가족은 나치에 의해 학살되었다. 레비나스는 42세에 <존재에서 존재자로>, 56세에 <전체성과 무한>, 69세에 <존재와 다르게, 혹은 본질 저편으로> 등의 저서를 출간하는데 이 책들은 모두 하이데거의 철학을 부정하는 내용들이다. 말하자면 하이데거는 평생동안 레비나스에 대하여 논한 적이 거의 없었던 반면 레비나스는 평생을 하이데거의 철학을 해체하는 데 바친 셈이다.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는 모두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자본주의의 팽배와 공산주의의 출현, 나치즘과 유대인 학살 등 전세계적으로 고통과 불안과 허무주의가 가득했다. 죽음, 불안, 구토, 부끄러움, 지루함, 허무 등의 표현이 두 철학자의 저서에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정치, 군사, 경제적인 광기와 불안과 허무주의적 경향 등이 서구 철학의 결과물이라고 진단했다. 서구 철학은 인간을 주체로 전제하지만 또한 복수의 인간으로서의 타자는 주체에 대한 객체 대상으로 전락하고 객체에 대한 주체의 지배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이것이 타자에 대한 지배로 이어져 종국에는 인간에 대한 인간 살해로 이어지게 된다. 그들이 경험한 두 번의 세계대전은 바로 그러한 인간 경시의 결과물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는 실존적, 역사적 배경이 서로 달랐으므로 그들의 시각과 문제점의 방향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이데거의 근본 질문은 "도대체 왜 어떤 것이 <존재>하고 오히려 무가 아닌가?"에 있었다. 하이데거는 세계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나 사물을 '존재자'라고 부른다. 그는 수많은 존재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있음'이 존재다.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이라는 점을 진지하게 사유하기를 원하는 하이데거. 그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존재자가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우리가 질문하기를 바란다. 이 질문이 가능하려면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존재자들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라 엄청난 수수께끼이며 신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를 하이데거는 바란다. 내 곁에 그(녀)가 있다. 그것은 당연한가? 만약에 그(녀)가 내 곁에 없다면? 이렇듯 하이데거는 일상에서 내 곁에 존재하는 '그(녀)'에게서 시작해 '그들'의 존재의미, 즉 '존재자 전체'의 '존재 의미'를 묻는 것으로 질문의 영역을 확장해 간다.

반면 레비나스는 "도대체 왜 악이 존재하며 선이 아닌가?"를 질문한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말하기 고통스러울 만큼의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에게는 그가 경험한 전쟁의 모순적이고 야만적인 시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선과 악의 문제를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로부터 하이데거의 질문은 '존재론'으로, 레비나스의 질문은 '윤리학'으로 나타난다.*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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