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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가 들려주는 마음닦는 이야기 / 윤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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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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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13일(목) 16:3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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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듣지 않는 것은 듣는 것보다 못하며, 듣는 것은 보는 것보다 못하다. 보는 것은 아는 것보다 못하며, 아는 것은 행하는 것보다 못하다."
최근에 한 고등학교에서 필자의 13번째 저서인 <아시타시我是他是만다라인문학>으로 인문 강의가 진행되었다. 참여한 학생은 11명으로 이들은 필자와 첫 만남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18세의 어린 영혼들. 그들에게 물었다.
"한 달에 한 권 정도 책을 읽는 학생은 손 한 번 들어주실래요?"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3명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대부분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친구와 반려견과 부모가 들어 있었고 몇몇 학생들은 플라톤을 말하고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이 떠오른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살고 있다. 문학 체험이 많기 때문에 숱한 주인공들도 살고 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들은 하루 24시간, 365일 함께 일어나고 함께 잠든다. 만약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지 않았다면 주인공 한스의 삶을 따라가며 그의 행로를 기뻐하고 마음 졸이거나 가슴 아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중학생일 무렵, 헤르만 헤세 전집을 읽으며 필자는 주인공들의 행로를 따라 함께 걸었다. 이후 그들은 필자와 늘 함께 한다. 필자가 그들을 알지 못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낀다. 그 느낌들은 고스란히 필자의 청춘을 키웠을 것이며 필자가 힘들어 할 때마다 곁에 다가와 손을 잡아주거나 말을 걸어왔다. 어려서 겪는 문학적 체험은 인간의 지적, 정신적 성장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러한 체험이 없는 이의 정신 세계는 그러한 체험을 지닌 이와는 다른 정신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
2시간 정도의 강의를 진행했다. <아시타시만다라인문학> 책 한 권을 분해했다. 3장 정도 나눠 갖고 그 중 한 장을 컬러링했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생각나는 것들을 적게 했다. 그들은 내 안에 존재하는 나와 그렇게 만났다. 어떤 학생은 이 과정을 충분히 즐겼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집중했다. 다른 학생이 한 장을 채 완성하지 못했을 때 그녀는 세 장을 모두 컬러링했고 만다라의 원 외부에 많은 캐릭터의 사람들을 그려넣었다. 자신은 핀란드에 가서 생활하고 싶고 거기에서 핀란드를 느끼고 싶다고 썼다. 다른 학생은 목표가 검사라고 했다. 그는 8가지로 나누어 자신의 지금과 미래를 적었다. 마지막은 빈 칸으로 남겨 놓았다. 자신은 가능성의 존재이므로 무엇이 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의 자리라고 말했다. 어떤 학생은 한 장을 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느리게 걸었다.
이것은 일종의 교육(敎育)이다. 교육이란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이란 타자에 의한 교육도 있을 수 있고 스스로 가르치는 교육도 있을 수 있다. 교육은 타자에 의해 시작되지만 결국 나에 의해 완성된다. 말하자면 교육이란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교육에 대하여 소리 높여 외친 철학자로 순자荀子가 있다. 순자는 공자의 간접적인 제자라고 한다. 공자는 유가 사상을 널리 알렸다. 우리가 기억하기로 맹자는 성선설을,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고 단순하게 알고 있지만 맹자와 순자의 목표는 다르지 않았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을까?
순자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군집을 이루며 살아간다. 따라서 더불어 살려면 일정한 규범이 필요하다. 만물은 모두가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나 사람이 만물과 구별되는 지점은 예禮에 있다. 그는 인간은 자연이지만 자연과는 다르다고 보았다. 자연적인 욕망은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이 지닌 욕망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 순자는 이것을 교육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덩어리여서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으므로 인위적으로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 즉 교육을 통해 자연현상을 극복해 나갈 수 있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와 함께 호흡한 학생들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 덩어리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한데 무엇이 되라는 말인가, 라고 질문하지 말자.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정된 위치를 점유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순자는 본성 그대로의 인간이 형체를 지니고, 형체로부터 정신을 지니게 되며, 희노애락 등의 감정이 깃들게 된다고 보았다. 정신을 통과하지 않은 상태의 희노애락은 여과되지 않은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을 통과한 감정은 감성으로 승화된다. 바로 이 지점이, 만물과 인간을 변별짓는다. 그렇게 자연(감정)과 분리되어 교육에 의해 성숙한 정신으로 성장하는 것, 이것이 순자가 바라는 철학의 목표이다.
<마음 닦는 이야기>의 저자인 윤무학 철학자는 순자의 철학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서로 나눔과 통일의 원리"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자연은 다르지 않으나 이를 구분한 뒤 다시 통일한다. 인간의 자연성과 인위성을 구분한 뒤 통일하고 개인과 사회를 구분하지만 결국 통일한다.
순자는 "하늘에는 때가 있고, 땅에는 재물이 있으며, 사람은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을 '능참能參'이라 한다. 그 참여할 수 있는 근거를 버리고 참여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삶은 무작위로 주어진다. 그러나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삶에 도달하는 것, 각 개인의 몫이다. 그를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쉼없이, 죽는 순간까지 교육시켜야 한다. 필자와 만난 11명의 학생들 중에는 두 시간의 만남을 통하여 이전以前과 이후以後를 경험한 영혼도 존재할 것이다. 그(녀)에게 우리들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을 선물하였을 것이다. 순자가 말한다. "군자는 학문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날마다 지식을 넓히고 자신을 되돌려 반성하며 이렇게 지혜를 점점 쌓아가다 보면 과실過失은 줄고 삶의 과실果實은 풍성하게 열매 맺을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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