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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쿤이 들려주는 패러다임 이야기 / 오채환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2021년 04월 29일(목) 11:47 [순창신문]

 

ⓒ 순창신문



토마스 사무엘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간, 과학 이해의 새로운 길을 연 때가 1962년. 1922년, 지구별 중에서도 미국 오하이오에 도착한 쿤은 하버드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과학사로 전공을 바꿨다. 책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자연계 학생에게 물리과학을 가르치는 실험적인 학부 과정에 참여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처음으로 낡아빠진 과학 이론을 접하는 기회를 주었으며, 과학의 본질과 특별한 성공의 이유를 알고 싶었던 나의 기본 관념을 밑바닥부터 흔들었다. 이 관념들은 과학적 훈련과정에서 터득했거나 과학철학에 대한 오랜 관심으로부터 얻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관념들은 역사적 고찰에서 드러난 과학의 실제와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관념이 과학의 여러 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므로, 철저히 따져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물리학에서 과학사로 급선회하고, 과학사의 문제에서 철학적인 관심사로 점차 되돌아가게 되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자나 과학철학자들에게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들에게 이 책은 '독창적이지 못하고 건조하고 뒤죽박죽인 책'이었다. 철학자들 또한 쿤의 상대주의에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 말이 되자 과학철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저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개 이상의 국어로 번역되었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서적 중 한 권이 되었다. 그의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개념은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패러다임'이란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paradeigma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물을 보는 하나의 방식' 또는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생각의 틀'을 의미한다. 쿤의 정의로 보자면 '사물을 보는 방식, 문제의 인식과 해법에 관한 특정 시대 과학자 집단의 공통적 이해'를 뜻한다. 쿤은 과학의 역사와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도입한다. 특정한 사회나 시대의 과학자 공동체는 하나의 패러다임에 기초해 인식론적, 사회제도적 자연 탐구를 한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적 패러다임, 뉴턴 패러다임, 아인슈타인 패러다임을 들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적 패러다임 이전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정상과학'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천동설은 당연한 개념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시대에서 16세기가 되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다. 코페르니쿠스적 패러다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천동설이 그것의 수정, 보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상과학의 위기'라고 부른다. 한 시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이 위기에 직면하면 그것은 과학 혁명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과학은 오랜 역사를 통해 꾸준히 지속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과학철학자들과는 달리 쿤은 마치 혁명이 일어나는 것처럼 전혀 다른 체계로 교체되는 것이 과학 발전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과학 혁명이란 한 패러다임 내의 과학이 어느 순간부터 모순이 발생해 부글부글 끓다가 코페르니쿠스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혁명가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의 주장은 당대에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과학의 일방적 진보 개념을 부정했다. 또한 과학은 우주적인, 보편적인, 영구불변의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부산물'이라고 보았다. 즉 역사나 사회 상황들의 변화에 따라 진리의 내용도 변한다고 보았다. 또한 쿤은 두 패러다임을 비교할 때 '통약 불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통약 불가능성이란 두 패러다임을 '같은 잣대로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 말하자면 뉴턴의 이론이 등장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적 과학 패러다임을 교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뉴턴 패러다임이 상대적으로 우수하거나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시대가 바뀌면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체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기가 오고 그것을 뉴턴 패러다임이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뿐이다. 쿤은 이렇게 패러다임 간에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과학의 진보 개념을 부정하는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토마스 쿤이 들려주는 패러다임 이야기>에서 인문철학자 오채환은 만년 꼴찌였던 태평축구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과학축구를 지향하는 김감독을 새로 영입한 축구부원들은 김감독으로부터 기술, 체력, 경험, 지식을 배우고 익힌다. 축구는 시시껄렁한 놀이가 아니라 엄연한 규칙과 방법이 있는 스포츠라고 김감독은 말한다. 또한 전문영양사인 장선생을 모셔와 선수들의 먹거리를 조절한다. 진정한 훈련은 20%가 운동이고 80%가 식습관이라고 생각하는 김감독은 쵸콜릿, 과자, 아이스크림 등을 금지한다. 선수들은 훈련과 먹거리 관리 프로그램으로 건강하고 튼튼하게 기술을 습득해 나간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축구부는 예선에서 고배를 마신다. 김감독의 사퇴 후 새로 온 정감독은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기술과 체력은 완성되었으나 두려움에 사로 잡힌 선수들의 마음과 몸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축구를 경기가 아닌 즐거운 놀이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경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 만년 꼴찌였던 태평축구부는 드디어 본선에 올라 승리를 거머쥔다.
그렇다면 김감독의 과학축구 패러다임은 틀리고 정감독의 몸마음 패러다임은 옳은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쿤이 지적하듯 두 패러다임 사이에는 우열을 결정할 수 없는 '통약 불가능성'이 작용하는 것이다. 만약 몸마음 패러다임의 정감독이 먼저 왔다면 선수들은 본선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까? 정상 체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먹거리를 가리지 못해 늘 피곤한 상태였다면 몸마음 패러다임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기술, 체력 등이 먼저 준비되었으므로 부족했던 자신감을 회복하고 두려움을 제거함으로써 선수들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일정한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나의 패러다임을 점검할 시간.*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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