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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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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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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08일(목) 16:1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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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목적이 없으면 시작이 있을 수 없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이다. 인간은 의지를 지니고 있지만 이 의지를 자율적으로 활용하기 쉽지 않다. 100년의 지구별 여행을 하면서 적극적인 자유의지를 개입하여 자신의 삶을 점점 고도의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고양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몸소 겪어야 했던, 독일에서 태어난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게 세상은 늘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이었으므로 늘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미묘한 차별을 경험해야 했고 그래서 경계에 서 있는 자로서 상황인식에 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의식은 그녀의 생몰연대 사이에 그녀를 유인하는 가장 큰 동인이었을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을 통한 유대인 박해를 몸소 경험하면서 그녀에게 인간의 잔인성과 포악함에 대한 의문은 늘 풀리지 않는 숙제였을 것이다.
그녀는 유대인으로서 전체주의라는 근본악을 철저하게 경험하면서 철학자로서 '인간조건'을 사유하는 삶을 살았다. 유대인임을 당당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한 신념은 아렌트에게 커다란 정신적 유산이었다. 어머니는 "사람은 잘못된 것에 머리를 숙여서는 안 된다. 인간이라면 저항해야 마땅하다."고 한나에게 말해주었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도 이방인임을 느껴야만 했던 아렌트, 철학적 사유의 환경이 생래적으로 주어진 셈이다.
그녀는 <인간의 조건>에서 신체적 활동인 노동, 작업, 행위,에 주목한다. 그리고 유고작인 <정신의 삶>을 통해 사유, 의지, 판단,이라는 정신적 활동을 고찰한다. 그녀는 경계인으로서 유대인이라는 타자적 실존을 기반으로 신체적 활동과 정신적 활동이라는 양축을 통해 인간 조건을 고찰한다. 그녀는 이상적이고 사변적인 철학이 아닌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에 집중했다.
1906년, 지구별에 도착한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을 쓴 것이 1951년, <인간의 조건>을 집필한 때가 1958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가 1963년, 그리고 유고작인 <정신의 삶>이 1975년이다. 그녀의 평생 화두는 전체주의에서 나타난 근본악에 관한 것이었고, "어떻게 근본악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가 가장 큰 통찰의 대상이었다. 그녀에게 나치라는 전체주의적 지배의 본질은 인간성을 박탈하고 인간의 무용성, 즉 가치없음을 증명함으로써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배제하는 '태도'에 있었다. 인간 실존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박탈하는 것, 인간의 본성 자체를 변형시키고자 하는 것이 전체주의의 목표였다.
그녀에게 근본악은 지속적인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수단으로 작동하고 남아돌아 쓸모없게 되는 존재로 전락하는 모던적 태도에 있었다. 유대인을 말살하고자 했던 나치정권은 이러한 전체주의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한나는 근대적 인간에게 세계의 중심이 인간과 지구로 옮겨왔다고 말한다. 이해할 수 없고 서술할 수 없는 신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근대의 이데올로기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이 믿음으로 "가능한 것은 만들고 가능하지 않은 것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능하게 만들어라.", 즉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전체주의적 믿음이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그래서 근대적 인간은 자신과 이 지구를 하나의 실험장, 즉 작위적으로 마음껏 조작할 수 있는 실험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인간은 인간 자체를 끊임없는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인간과 지구를 실험장으로 만들어 결국 희생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인간 자신과 지구다. 한나 아렌트의 독특한 사유 지점인 지구. 그녀에게 이 지구는 바로 인간조건의 '핵심'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즉 지구에서 살지만 이 지구에서 인위적으로 가공한 인공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인공세계를 만들어 낼수록 자연과는 점점 멀어진다. 자연적 생명세계와 인위적 인공세계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가능한 한 인간을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통제 가능한 인공세계를 끊임없이 구축하려고 온갖 애를 쓴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자연적 필연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쓰는 것.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이러한 시도가 바로 기술시대의 근본악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지적한다. 한나 아렌트의 20세기의 고민은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아니 지금은 더욱 지능화되고 자연을 극단적으로 수단화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을 위한 실용성의 장으로만 파악되었던 자연이 이제는 온갖 방법으로 인간들을 공격하고 있다.
나치정권의 전체주의가 인간 본성을 말살하려는 시도였다면 기술시대의 근본악 또한 결국 인간의 수단화, 인간성의 파괴, 인간의 근본 생존 조건인 지구의 무분별한 개발과 그로 인한 파괴의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조건들, 활동들, 그리고 장소에 대하여 언급한다. 인간이 실존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의 <생명>으로서 살아 있어야 하고 둘째, 영속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확보해야 하며 셋째, 말과 행위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생명, 세계, 다원성을 인간 존재의 세 조건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동>이 필요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확보하기 위해 <작업>이 요구되며, 모든 사람에게 의미 있는 공동 세계에 관한 기초적 활동을 <행위>라고 규정한다. 말하자면 노동, 작업, 행위, 이 세 가지가 그녀가 말하는 인간 실존의 조건들이다. 생명, 세계성, 다원성을 확보할 노동, 작업, 행위의 세계. 그리고 이러한 모든 활동이 진행되는 가장 핵심적인 인간 생존의 조건, 지구. 인간은 욕망이라는 한계를 지닌 존재지만 궁극적 선인 자비를 통해 유한한 세계를 사랑하면서 늘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하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기. 그녀 사유의 목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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