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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2021년 03월 31일(수) 16:26 [순창신문]

 

ⓒ 순창신문



한나 아렌트는 미국의 철학자이다.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1906년 지구별에 도착했다. 유대인이다. 따라서 늘 경계에 선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그녀를 철학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다. 10대 때 이미 칸트를 읽었던 그녀,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연인이 된다. 하이데거를 떠나 야스퍼스의 제자가 되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이후 <인간의 조건>, <정신의 삶> 속에서 펼쳐나가는 그녀의 사상은 야스퍼스의 영향력 아래 있다. 나치의 압제하에서 시온주의 활동을 하다 프랑스로 망명, 미국에 정착한다. 그녀의 첫 책은 1951년, 46세에 쓴 <전체주의의 기원>이다. 그녀는 나치의 히틀러가 어떻게 근본악에 이르렀는지 전체주의라는 근본악의 기원에 대하여 탐구한다.
1960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살고 있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나치 전범을 찾아내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뉴요커>를 위해 1961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해 1963년에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아렌트는 대중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나치의 전범이었던 아이히만이 일상 속 어느 누구일 수도 있다는, 우리 중 어느 한 사람일 수 있다는 그녀의 진단은 대중들에게는 매우 위험하고 발칙한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는 특별히 '악마적이지도 어리석지도' 않았다. 그의 죄는 아렌트가 보았을 때는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 '사유의 전적인 부재'에 있었다. 그것이 인간의 실존성을 결여하게 한 가장 커다란 원인으로 그녀에게는 보였다. 그는 정신병적이지도 않았고 이데올로기적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늘 탐구하던 주제인 '근본악'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것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죄의식으로 괴로워하지도 않았고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제 손으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제 권한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저 한 명의 인간이며 관리자였을 뿐입니다." 그는 1906년, 아렌트와 같은 해에 태어나 1962년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져 지구별에서 사라졌다.

아이히만이 유대인에게 행했던 무심한 행동은 그가 특별히 잔인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사유'도 '의지'도 독립적인 '판단'도 할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 그것이 그녀가 바라본 악의 평범성이었다. 인간은 행위, 작업, 노동을 통한 활동적 삶과 사유,라는 관조적 삶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리고 이 삶들은 각 개인마다 다르다. 이러한 나와 타자 사이의 비대칭적 <차이>가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가 얽혀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구성된다. 나와 타자가 다를 수 있다는 <차이>가 '소통'의 필요를 만들어 내고 이를 위해 '말'과 '행위'가 필요하다.
아렌트는 정치적, 법적 윤리를 이론화하는 작업에 집중하면서 '인간의 복수성' 또는 '다원성'을 설명한다. 인간은 '복수성'이 없다면 인류나 인간성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다. <인간의 조건>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행위와 말, 이 두 가지 조건이 되는 인간의 복수성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성을 갖는다.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만일 인간들이 다르지 않다면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하거나 행위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인간은 두 번의 탄생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한 번은 생물학적인 탄생이고 다른 한 번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탄생이다. 그녀는 "어떠한 인간의 삶도, 다른 인간의 현존을 직간접적으로 입증해 줄 수 있는 세계가 없다면 삶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은 어머니가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날에 한 번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탄생해야 할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세계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살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 내에서 타인 또는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부재했다는 사실이 아이히만의 가장 커다란 죄인 것이다. 그는 사유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도덕적 행위를 수행할 능력 또한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알지 못하거나 차이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상주의자'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에게 '이상주의자'란 단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었고 자신의, 유대인들을 향한 행위가 공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유대인을 인간이라는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었으므로 책임의 윤리를 실천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나치에 의하여 촉발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3천500만 명에서 많게는 6천만 명이 사망하고 유대인들은 약 570만 명이 사망했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퀸시 라이트는 인류가 매 2년마다 한차례씩 중요한 전쟁이 발발하였음을 발견했다. 전쟁을 일상적 삶의 한 측면으로 '아무 생각 없이' 무사유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또한 한 사람의 아이히만과 다름 없다. 우리 안에는 늘 아이히만이 존재하고 있다. 전쟁을, 죽음을, 고통을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가 '악의 평범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유가 부재하게 되면 폭력이 우리 안에 개입하게 된다. 아렌트는 폭력은 '차이'를 지우려 할 때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라고 말한다. 인종차별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치즘이 당연하고 정상적으로 아이히만에게 인식되었던 것은 '무사유'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노동'에 '사유'를 더하여 나와 타자간의 관계를 얼마나 좁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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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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