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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 데카르트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거인 / 박민아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2021년 03월 11일(목) 16:22 [순창신문]

 

ⓒ 순창신문



16세기,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우주체계에서 달은 이상하게도 지구 주위를 돌고 있었다. 17세기 초, 갈릴레오는 목성을 관측하다가 목성을 도는 위성을 발견했다. 달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목성을 도는 위성을 발견한 것이다. 목성의 위성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세계를 설명할 적절한 발견이었다. 갈릴레오도 코페르니쿠스도 수학자였다. 그런데 수학자들은 자연과학자들보다 학문적, 사회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이때 갈릴레오는 목성을 도는 위성을 발견하고 이 발견을 수학자에서 자연철학자로의 신분 상승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그는 메디치가를 잘 활용했고 코페르니쿠스적 우주체계를 설명할 목성의 위성을 메디치 가문의 신화화 작업에 활용함으로써 수학자 겸 자연철학자의 자리에 올랐다.
1642년 갈릴레오가 세상을 떠나고 뉴턴이 세상에 태어났다.
뉴턴은 영국 링컨셔의 울즈소프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났는데 너무 허약해서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상처받기 쉽고 예민한 성격으로 자랐고 정신 질환을 앓기도 했다.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고 지나치게 똑똑하고 승부욕도 강했으며 동시에 과묵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해 일단 몰두하면 먹지고 자지도 않고 문제에 집중했다.
합리론 철학자로 알려진 데카르트는 자연철학자로서의 업적도 뛰어나 기상학, 광학, 역학, 천문학 등의 분야를 통해 근대 과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고, 이 위대한 데카르트의 연구가 곧 뉴턴 학문의 출발선이 되었다. 뉴턴의 업적은 바로 데카르트가 선취先取한 학문의 길을 부지런히 따라가면서 도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데카르트의 자연철학 연구를 기반으로 뉴턴은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냈고 이것이 바로 근대역학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누군가가 뉴턴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훌륭한 업적은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뉴턴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선지식과 선경험 없이는 깊은 세상을 들여다보기가 요원함을 뉴턴을 통해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 뉴턴을 앞서 걸어간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그리고 가장 중요한 데카르트의 과학적 성취가 없었다면 뉴턴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과의 전설은 1665년에서 1666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1642년에 뉴턴이 지구별에 도착했으니 1665년이면 그의 나이 23세에 불과하다. 그는 이 해에 학위를 받았고 페스트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자 고향으로 돌아와 연구에 골몰했는데 이때 미적분학, 역학, 광학의 근간이 되는 아이디어들을 얻었다고 한다.
중세에 지식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지식은 대중화의 길로 들어선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카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반박문을 발표하고 유럽은 종교개혁으로 소용돌이친다. 예전에는 성직자들의 해석으로만 가능했던 신의 존재를 루터가 독일어로 해석해 성경 해석의 권위를 개개인에게 돌려준다. 그런데 루터의 이러한 시도는 "성경 해석의 권위가 개개인에게 있다면 해석이 다를 경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유발하게 된다. 이 혼란을 틈타 극단적인 회의주의인 피론주의를 통해 모든 감각 경험을 의심하는 조류가 형성되었다. 그들은 감각 경험도, 확실한 학문이라고 믿었던 수학조차도 그 증명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데카르트가 등장한다.
데카르트는 피론주의자처럼 모든 불확실한 지식들을 의심해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지우고 또 지워나가자 확실해지는 것이 하나 남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데카르트의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가 도출된다. 데카르트는 자연과학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신이 물질을 창조할 때 물질에 '운동'을 부여했으며 태초의 창조 이후에는 자연에 개입하지 않고 3가지 자연 법칙에 따라 운동, 충돌한다고 생각했다.
1 모든 물체는 다른 물체와 충돌하지 않는 한 똑같은 상태로 남아 있다.
2 한 물체가 다른 물체를 밀 때 자신의 운동을 잃지 않는 한 다른 물체에 운동을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다.
3 물체가 움직일 때 각각의 부분들은 직선 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데카르트의 세계는 물질의 '운동'이 모든 변화를 일으키는 역학적mechanical 세계였다. 스스로 운동 '의지'를 지니지는 못하지만 창조주의 첫 의도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정교하게 움직이는 기계적인 세계였다. 이렇게 물질과 운동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데카르트의 세계관을 '기계적 철학mechanical philosophy'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세계관이 뉴턴에게 계승, 발전되어 근대역학을 완성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우주와 빛, 인체 등의 연구와 관심은 17세기 유럽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오랜 철학적 기준을 버리고 새로운 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포괄적인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면의 연구를 통해 데카르트가 제시한 가능성들을 실제 진리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뉴턴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뉴턴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있었으므로 자신의 성과들이 가능했음을 고백할 수 있었다.
데카르트가 발견한 '운동'에 '힘'을 더한 과학자, 뉴턴.
데카르트의 빛을 연구해 새로운 빛 이론에 도달하고 망원경을 개량해 전유럽에 이름을 알린다. 뉴턴도 데카르트의 <기하학>을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읽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차근차근 데카르트의 이론을 소화해 나갔다. 데카르트의 수학도 기계적 자연철학도 그의 공부와 연구의 대상이었다. 결국 그는 관성의 법칙, 운동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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