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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의 삶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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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팩 초프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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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05일(수) 15:59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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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여름이 한창이다. 엄밀히 말하면 여름 장마가 한창이다. 장마는 필자가 사는 순창군을 한동안 휘몰아치다가 중부 지방에 이르렀다. 중부 지방에 도착한 장마는 시간당 80밀리미터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기도 했다.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사람 생명도 자연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다. 간혹 죽음이 목도되기도 한다.
필자의 오늘은 해가 반짝 얼굴을 내밀었다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를 뿌린다. 며칠째 해를 구경하지 못한 하늘빛 정원의 풀들은 축축 처져 있다. 생명은 태양이 없으면 의기소침해진다. 숨쉬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그러고 보면 생명은 빛에 가깝다.
삶이 빛이라면 죽음은 그림자일까. 삶이 밝음이라면 죽음은 어둠일까. 빛과 그림자는 서로 상극일까. 밝음의 반대는 어둠일까. 삶과 죽음은 대척점에 있는 것일까. 삶은 늘 행복하고 죽음은 늘 슬픈 것일까. 여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한 사람이 있다. 디팩 초프라. 그가 지구별에 도착한 첫 장소는 인도다. 그는 하버드 대학 의학박사다. 그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정신신체의학Mind-Body Medicine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했다. 그의 저서 [늙지 않는 몸] [조건 없는 삶] [신과의 영원한 대화] [왜 신은 웃는가] 등을 읽어보면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의식 세계로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죽음과 삶. 삶과 죽음. 죽음 이후의 삶.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있으면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몸뚱이가 살아 있다. 심장이 뛰고 심장이 뛴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우리는 삶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여기를 산다. 그는 탄생과 죽음은 신비로운 두 가지 사건이라고 말한다. 탄생을 신비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죽음 또한 하나의 신비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관찰해 보니 죽는 순간 21g 정도의 몸무게가 줄어들었단다. 이것은 몸에서 빠져나간 영혼의 무게일까.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의 기적은 우리가 죽지 않는다는데 있다고 말한다. 육신이 죽으면 영혼도 죽을까. 육신의 죽음을 죽음이라고 말한다면 죽음 이후에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디팩은 비트겐슈타인을 데려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생명에게 죽음은 없다. 죽음은 생명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사실이 아니다.”무슨 의미일까.
디팩은 죽음은 여러 가지 기적적인 일을 완성시킨다고 믿는다.
1 죽음은 물리적 시간을 '무한'의 시간으로 바꾼다.
2 죽음은 공간의 경계를 '무한'으로 확장시킨다.
3 죽음은 생명의 '근원'을 보여준다.
4 죽음은 시각, 촉각, 청각, 미각, 후각 등 5가지 감각기관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준다.
5 죽음은 창조를 조직하고 입증하는, 숨어 있는 정보를 드러내 보여준다.
삶 속에 있을 때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을 받지만 죽음은 바로 그러한 시공을 초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죽음은 보이지 않는 기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단선적인 시간 감각으로는 제대로 인식하는 게 불가능하다. 단선적인 시간 개념으로 본다면 죽음은 삶과의 단절이다. 우리의 신체가 시간을 느끼는 이유는 수소, 산소, 질소, 탄소 등 우리 몸의 유기체를 이루는 화학물질의 원자적 진동 때문인데 이것이 우리 두뇌 속에서 찰깍거리는 시계가 되어 바깥세상 일을 가늠하게 한다. 달팽이 뇌 속의 시계가 찰깍거리는 속도는 너무 느려서 한 사건이 다음 사건으로 이행하는데 5초가 걸린단다. 그래서 만약 5초 안에 누군가 달팽이를 몇 미터 떨어진 지점으로 옮겨놓으면 달팽이는 자신이 '순간적인 공간 이동'을 한 것으로 착각한다고 한다. 인간의 경우 '1초의 약 천 분의 일' 정도로 일어나는 사건을 감각할 수 있(긴 하)지만 총알의 움직임을 감지하기에는 너무나도 느리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식의 현주소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물리적 시간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래서 죽음을 삶과 단절되는 지점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인도의 영적인 풍경을 과학과 접목시킨다. 인도 베다의 현자들은 모든 실존의 단계는 실제로는 [의식의 상태]라고 단정한다. 즉 "모든 세계는 의식 속에서 형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계의 창조자로 세계를 [경험]하고 우리의 의지로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는 "죽음은 내가 무엇을 [소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이 [되느냐]의 문제이다. 오늘 나는 '시간의 아이'지만 내일 나는 '영원의 아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 지구별 여행을 [삶]으로 경험하면서 이 지구별 여행을 떠날 [죽음]의 순간이 올 때 우리는 죽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삶 이후의 삶, 죽음 이후의 삶이 우리에게 또다시 주어져 있다면 우리는 이 지구별에서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
그가 우리에게 시를 한 수 읊어준다.
그대는 무엇을 줄 것인가?
죽음이 당신의 방문을 두드릴 때
그대는 무엇을 줄 것인가?
내 인생의 충만함-
가을날과 여름밤의 달콤한 포도주,
오랜 세월을 통해 쌓아온 내 조그만 지식의 창고,
그리고 삶으로 풍요롭게 채워진 시간들.
이것이 내가 주어야 할 선물.
죽음이 내 방문을 두드릴 때.*
충분히 [경험]하라. [삶]이란 지구별 여행 동안 우리가 [경험]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갈 배낭 속 '재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삶을 삶답게 살 일이다. 깨달음의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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