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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공찬전의 이해 / 이 복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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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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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 29일(수) 15:3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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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순창에는 [설공찬전]이 있다. 이제 순창에는 [다시 쓰는 설공찬전]도 있다. 순창을 배경으로 하는 [설공찬전]의 국문번역본을 발견한 학자는 이복규 교수이다. 그는 성주 이씨 묵재공(이문건)파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묵재일기]라는 한문일기책을 만났다. 그리고 그 책의 이면에 필사된 국문번역본 [설공찬전]을 극적으로 발견했다. 그는 어떻게 국문학사적으로 놀라운 이러한 발견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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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그가 [설공찬전]이 필사된 [묵재일기]를 만나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그는 1990년대 초 [임경업전]으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한문초서로 된 이본異本들을 만나 곤욕을 치렀다. 초서草書는 휘갈겨 쓴 글씨여서 알아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암호와도 같은 한문초서 해독능력을 갖고 싶었던 이복규 교수는 1994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국비로 운영하는 연수생 모집 공고를 듣게 된다. 국사와 한문을 준비해 합격하여 낮에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연수과정 학생으로, 밤에는 서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주경야독을 통해 1995년 2월에 초서연수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그날, 연구실로 돌아와 [임경업전] 초서본을 펼쳐놓고 환하게 해석되는 학문의 기쁨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바로 그해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팀이 충북 괴산 성주 이씨 묵재공파 문중에서 귀하게 보관하고 있던, 1535년에서 1567년에 걸쳐 쓰여진 [묵재일기] 10책을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게 된다. 작업이 끝난 후 5명의 연수과정 1기 수료생들에게 해석의 임무가 주어졌다. 그는 10책 전체를 복사해 놓고 차근차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3책을 넘겨보다가 한문 사이에 언뜻언뜻 보이는 한글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설공찬이]라고 쓰여진 [설공찬전]의 국문번역본이 소설인 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같은 책 바로 뒤에서 [왕시전] [왕시봉전] [비군전]과 권필이 쓴 [주생전] 국문필사본을 확인한 뒤 다시 뒤집어 [설공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이복규 교수는 [설공찬전의 이해]를 통해 [설공찬전]이 조선 최대의 필화筆禍 사건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이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중종 6년 9월 2일의 기록에 사건의 전말이 수록되어 있다. 자료에 의하면 [설공찬전]은 '윤회화복에 관한 이야기로, 경향 각지에서 그 내용을 믿어 이를 베끼고 국문으로도 번역해 전파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사헌부에서는 이 작품이 민중을 미혹케 한다고 중종 임금에게 작품을 전부 수거하고 숨기고 있다가 발각되는 경우 엄중히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왕명으로 [설공찬전]은 모조리 회수되었고 조정에서 불태워졌다.'
[설공찬전]을 지은 채수는 중종반정의 공신인 듯 보였지만 이 작품을 쓴 죄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질 뻔하였으나 사형은 면하고 파직당한다. 이복규 교수는 [설공찬전] 같은 고소설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공식적인 문헌에서 다뤄진 전례가 없다고 말한다. [금오신화]나 [홍길동전] 등 그 어떤 국내 소설도 [조선왕조실록]에 거론된 예가 없다는 것이다.
국문번역본 [설공찬전]은 3,472자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채로 멈춰버려서 이후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조선 전기 인물인 어숙권은 [패관잡기]에서 [설공찬환혼전]이라는 이름으로 [설공찬전] 말미의 내용을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설공찬이라는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갔다가 그 혼이 돌아와 남의 몸을 빌어 수개월간 이승에 머물면서 자신의 원한과 저승에서 들은 일을 그대로 기록하였다."
최근 필자는 [설공찬전] 국문번역본을 발견한 이복규 교수님을 만났다. [다시 쓰는 설공찬전]을 격려하러 필자가 거주하는 북카페까지 내려오셨다. 그는 필자의 [다시 쓰는 설공찬전]이 1511년 이후 500여 년만에 다시 쓰여진 '최초로 제대로 개작된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다.
"1996년 [설공찬전] 국문번역본이 발견된 이후 연극, 웹툰 등을 통해 다뤄지기도 했지만 제목만 차용했을 뿐 작가들의 의도가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어 [설공찬전]을 정통으로 잇는 작품이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서영 작가의 [다시 쓰는 설공찬전]은 3,472자의 내용에 근거하여 거기에
소설적 의미를 부여한, 작가정신에 충실한 작품이다. 따라서 [다시 쓰는 설공찬전]은 16세기의 [설공찬전]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훼손하지 않고 21세기적으로 훌륭하게 재해석된 작품으로 보여진다"고 말씀해 주셨다.
[설공찬전]은 경상도 상주의 쾌재정에서 채수가 쓴 소설이지만 순창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순창에서 지속적으로 다시 쓰여질 것이다.
최근 이서영 작가가 [다시 쓰는 설공찬전]을 써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머지 않아 순창 및 전국에서 [다시 쓰는 설공찬전]이 풍성하게 '다시' 읽혀질 것 같다. 16세기의 [설공찬전]이 17세기의 [홍길동전]보다 100년이나 앞서 쓰여졌으며 국문학사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복규 교수님의 [설공찬전의 이해] 속에는 3,472자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불완전한 텍스트로서의 [설공찬전] 국문번역본을 모티프 삼아 다양하게 [설공찬전]이 재해석되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원전을 중심으로 한 텍스트의 다양한 재해석이다. 이러한 다양한 재해석을 통하여 소설 속 사유의 지평이 넓어진다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독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1511년에서 2020년까지, 그리고 2020년에서 아직 도래하지 않는 미래로 뻗어나갈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재해석의 아름다운 파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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