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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설공찬전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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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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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 22일(수) 16:1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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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순창에는 [설공찬전]이 있다. [설공찬전]은 1511년 채수에 의해 쓰여졌다. 다음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금오신화]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고전 소설이자 최초의 국문 번역 소설로서 국문학사적 가치가 높다. 독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 소설의 대중화를 이룬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1511년 중종 6년, 중종실록에는 채수의 [설공찬전]으로 인한 소란스러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상주로 내려가 쓴 이 소설은 불교의 윤회화복 사상, 왕을 비난하는 내용, 당대의 성리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여권신장에 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심하게는 이 소설 때문에 채수에게 교수형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한동안 소란의 중심이 되었다. 이때 채수의 나이 62세였다. 이 소란을 멈추기 위해 중종은 "만약 숨기고 내놓지 않으면 요서은장률로 엄히 다스리겠다"고 명을 내렸고 모두 압수되어 궁궐 내에서 불태워졌다. 전국에서 모여진 [설공찬전]이 조정의 뜰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따라서 역사에 기록만 되어 있을 뿐 우리는 [설공찬전]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1996년, 한문소설 [설공찬전]의 국문번역본이 국문학자 이복규 교수에 의해 일부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원본은 한문이지만 1511년 당시에 이미 국문으로 번역되어 읽혔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건이었다.
국문학사적으로 [설공찬전]의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은 1470년,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다. 그 뒤를 잇는 작품은 신광한이 1553년에 한문으로 쓴 [기재기이]다. 두 작품 사이에는 80여 년간의 사이가 있었는데 그 중간에 창작된 [설공찬전]이 발견됨으로써 소설의 발달과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최초의 국문소설로 말해지는 허균의 [홍길동전]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로부터 170여 년 정도의 거리가 있어, 학계에서는 [금오신화]와 [홍길동전] 사이에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한글 작품이 있었으리라 추정해 왔는데, 그 좋은 물증으로 [설공찬전] 국문 번역본이 발견된 것이다.
[설공찬전]은 순창을 배경 공간으로 삼고,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설씨 집안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삼는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귀신 이야기와 무속 이야기 등으로 당대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복규 교수님이 발견한 [설공찬전] 국문 번역 소설은 3472자에 한정되어 있다. 말하자면 전체 원문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내용은 이렇다.
순창에 사는 설충란은 남매가 있었다. 딸은 혼인한 뒤에 바로 죽고 아들 공찬도 나이 스물이 되어 장가도 들기 전에 죽는다. 어느 날 설공찬 누나의 혼령이 충란의 동생인 설충수의 큰 아들 공침에게 들어간다. 공침의 아버지 설충수는 김석산이라는 주술사를 불러 누나의 혼령을 쫓아낸다. 그러나 곧 설공찬의 혼령이 공침에게 들어가 수시로 왕래한다. 설충수가 김석산을 다시 부르려 하자 공찬은 공침을 극도로 괴롭힌다. 그후 공찬은 사촌동생 설원과 윤자신을 불러 저승소식을 들려준다.
저승으로 올라가 고통스럽게 심판 받던 공찬은 증조부 설위 덕분에 풀려나 여기저기 저승을 구경한다. 이승에서 선하게 산 사람은 저승에서도 잘 지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승에서 왕이었더라도 반역하여 집권하면(중종을 빗대었다. 이것이 분서焚書가 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지옥에 떨어진다. 여성도 글을 할 줄 알면 관직을 맡을 수 있었다. 하루는 중국의 성화황제가 총애하는 신하의 저승행을 1년만 연기해 달라고 간청한다. 염라대왕은 한 달의 기한을 주지만 신하는 다시 1년만 달라고 청하다가 염라대왕의 분노를 사게 된다. 당황한 성화황제가 친히 염라국을 방문하고 막아보려 하지만 화가 난 염라대왕은 신하의 손을 삶아버린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소설적 구성을 완결시키지 못한 채 멈춰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 요구된다. 이서영 작가의 [다시 쓰는 설공찬전]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재구성하여 소설적 구성으로 완성한 새로운 [설공찬전]이다. 필자가 [설공찬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순창군립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동안 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순창에는 [설공찬전]이 있습니다. 작가님도 들어 보셨습니까?"
관장님의 말씀을 듣고 이복규 교수님의 [설공찬전]에 관한 두 권의 책을 몇 달에 걸쳐 읽었다. 그리고 [다시 쓰는 설공찬전]을 쓰고 있다고 메일로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은 잊혀져 가는 [설공찬전]에 관심을 가져 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셨다. 그는 150여 점의 자료들을 [설공찬전 기념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과거가 되어 버린 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하고 함께 나누고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면면히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를 갖게 될 것이다.
작가 채수가 [설공찬전]을 집필한 곳은 경상북도 상주의 [쾌재정]이다. 1511년의 그를 2020년 어느 날, 한 작가가 찾아 나섰다. 이복규 교수님은 추천사에서 "새롭게 다시 쓰는 설공찬전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이미 나온 연극, 웹툰 작품에 이어 이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설공찬전]을 아는 기쁨을 누리기를 기대합니다. 원작은 일부만 발견된 탓도 있지만,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이서영 작가의 책에서는 그 빈틈들을 잘 메꿔 놓았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자극을 받아 또 다른 콘텐츠들이 다양하게 쓰여지길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상상력의 세상, 이서영 작가의 [다시 쓰는 설공찬전] 이후 다양하게 다시 쓰는 [설공찬전]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서영 작가의 [다시 쓰는 설공찬전]이 궁금하시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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