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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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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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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 08일(수) 16:53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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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당신은 길을 걷고 있었다. 수백 년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즐비한 산책길이었다. 혼자서 걷는 길은 비 온 뒤의 청명함과 어울려 고즈넉한 행복을 주었다. 때로 이렇게 혼자서 산책하는 것은 어쩌면 축복의 시간일 수도 있다. 저만치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다. 먼 데서 바라볼 때는 단지 한 점일 뿐이었는데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의 실루엣은 확연해진다. 그(녀)의 모습이 눈에 자세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 언젠가 보았던 듯한 모습이다. 언젠가 당신과 함께 걸었을 지도 모를 스타일이다. 그(녀)의 이목구비와 그(녀)의 옷매무새와 그(녀)의 걸음걸이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치고 방금 스쳐지나갔을 뿐인데 당신은 움찔! 무언가 다른 느낌에 사로잡힌다.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진다. 언젠가 당신은 그(녀)를 확실히 만난 적이 있다. 이생이 아니라면 전생의 어디쯤에서라도. 당신은 그(녀)가 스쳐지나간 뒤에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잠시 멈춤.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 본다. 놀랍게도 그(녀)도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 있었다. 그리하여 당신은 방금 처음 만난 그(녀)를 마주하고 선다. 이것이 사랑의 첫,일까.
칼 구스타프 융박사는 분석심리학자이다. 그는 1875년 스위스에서 지구별에 안착, 1961년까지, 86년 동안 지구별을 여행했다. 그는 꿈이라는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트의 애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모든 상황을 성충동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발,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 분석심리학.
분석심리학은 경험심리학이며 응용심리학이고 우리 마음의 심층을 분석하므로 심층심리학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심혼]이라는 독창적인 용어를 만들어낸다. 심혼이란 한 마디로 '정신의 독자성', '자아를 초월하는 정신의 자율성'을 의미한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강렬함, 자유로움, 신성한 힘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어떤 것이 존재하며 끊임없이 작동한다고 융은 설명한다. 인간의 정신은 뇌기능의 결과만은 아닌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ego로서의 나,가 아닌 내적 인격으로서의 내가 있다. 그것을 융은 심혼이라 부르고 이것을 다시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로 나눈다. 아니마는 남성 속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의미한다. 융은 우리가 남성이기만 하거나 여성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고 본다. 의식적인 나, 표면적인 나,가 남성이라면 내 안에는 무의식적인 여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외적 인격인 남성과 내적 인격인 여성이 서로를 보충, 보완해야만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을 그는 궁극적인 [자기실현]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자기실현은 한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한 '전체정신'이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개성 실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융은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개성]이란 다른 사람과 '다른'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은 '보편적' 특성까지 모두 [통합]한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하며 이것을 그는 [전인적인 인간]이라고 부른다.
산책하다 당신이 만난 그(녀)는 말하자면 내 안의 여성성이거나 내 안의 남성성이 겉으로 들어난 현현顯現인 셈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어떤 것과 닿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보았을 때 내 안에 있던 것이 감응感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방을 통해 내 안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경험하는 셈이다.
당신의 내적 인격인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상대방을 통해 현실에서 경험되면서 나의 외적 인격과 서로 부딪히고 조화를 맺고 충돌하고 화해하고 성장하고 성숙에 이르게 되거나 파행을 맞게 된다. 말하자면 당신과 그(녀)와의 부단한 관계를 통하여 당신은 당신의 내면인격과 충돌하거나 분노하거나 상처받거나 화해하거나 성장하거나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면 처음에는 페로몬의 분비를 통한 생물학적 경험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안의 내적 인격이 이 생물학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당신과 그(녀)는 그러므로 서로 거울 같은 존재로서 기능한다.
융은 5%의 의식과 95%의 무의식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인간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5%의 의식은 환경과 교육에 의하여 외적 인격, 즉 페르소나persona로서의 인격을 갖는다. 페르소나란 가면,이라는 뜻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그 역할에 맞는 가면을 쓴다. 이것은 당신이 바깥세계와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 궁극적인 당신 자신은 아니다. 당신은 사회와 관계라는 외부세계뿐만 아니라 마음,이라고 부르는 내면세계에도 적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의 세계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무의식의 세계의 내적 인격이며 내가 내면세계와 관계를 맺는 징검다리와 같다고 한다.
당신의 아니마가, 혹은 아니무스가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다. 당신은 당신의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통합하여 진정한 당신에 이르러야 한다. 당신 곁에 있는 그(녀)가 마음에 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내면인격과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 곁에 있는 그(녀)가 도통 마음에 안 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내면인격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직시하여 문제 안의 답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나,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당신 앞의 그(녀)는 당신의 또다른 자신,이다. 당신 자신과 진심으로 만나보라. 당신이 웃어야 비로소 거울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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