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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빛난다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 지음

2020년 11월 04일(수) 16:34 [순창신문]

 

ⓒ 순창신문



가을 끝자락과 겨울 입구가 맞닿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내장산 400고지 추령마을에는 목하 가을 단풍 나들이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겨울이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기 힘들구나" 말하시는 어머니의, 여운이 긴 문장과는 반대로 요즘에는 휙휙 전광석화처럼 지나치는, 단풍 구경 나온 차량들로 분주하다. 추령에서 복흥면으로 가는 길목은 애기단풍길이 길게 이어진다. 지난해는 11월이 되어도 거뭇거뭇 제 색을 보여주지 못하던 단풍나무들은 올해는 휘황찬란할 정도로 햇살에 반짝반짝 '빛'난다. 복흥면에 가까워지면 노란 은행나무들이 절창을 부른다. '눈이 부시다'는 표현을 실제로 경험하는 사치를 누리고 있다. 어쩜 저리 밝고 맑은 노랑으로 풍경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눈부시게 '빛'나는 계절에 마냥 행복하고 감사하다.

<모든 것이 빛난다>. 참 아름다운 제목이다. 제목만큼 달달하지는 않지만 깊이 읽을 줄 아는 독서의 근육을 가진 독자들은 자꾸만 자꾸만 빨려들어갈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2014년 3월부터 읽기 시작했다. 대학원 교재로 선정되었던 책이다. 이후 몇 년에 걸쳐 다시 읽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철학을 문학과 접합하여 문학 속에서 철학적 사고를 끄집어내는 매우 탄탄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리다. 휴버트는 캘리포니아대에서, 켈리는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가르쳐왔다. 그들은 모두冒頭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2007년 1월 2일, 맨해튼 브로드웨이 137번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스무 살의 영화학도 캐머런 홀로피터가 땅바닥에 고꾸라져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승강장 가장자리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그만 지하철 선로 위로 떨어졌다. 1호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었다. 열차는 속도를 멈추려고 했으나 열차가 멈췄을 때는 이미 다섯 대의 열차 칸이 홀로피터가 쓰러졌을 곳을 지나친 뒤였다. 홀로피터는 어떻게 되었을까. 1호 열차의 전조등이 시야에 잡히는 것을 보고서도 한 사람이 홀로피터를 도우러 재빨리 선로로 뛰어들었고 열차 밑에 깔린 두 사람은 찰과상을 입었을 뿐 전혀 다치지 않았다. 달리는 열차 속으로 뛰어들어 안전하게 홀로피터를 열차 바닥으로 눕혀 그의 생명을 구한 사람은 쉰 살의 건설노동자 웨슬리 오트리였다. 그는 승강장에 네 살과 여섯 살 두 딸과 함께 있다가 홀로피터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주춤거리지도', '망설이지도', '동요하지도' 않고 몸을 날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웨슬리 오트리가 말했다.
"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을 뿐입니다."
두 철학자는 이 상황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질문을 던진다. 정답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어떤 해법을 지니고 있는지 묻는다. "과연 나라면 어떤 반응을 <선택>했을까? 이 선택은 어떤 근거로 이루어진 것일까? 나는 왜 그것을 근거로 하여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일까?" 이것이 질문의 요지다.

저자들은 중세 시대에는 질문 자체가 필요없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중세에는 신이 모든 것의 질문이고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근대에 들어와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능해졌고 지금을 사는 우리는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하여, 실존적 선택의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충분한 여건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선택의 주체가 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오트리처럼 실존적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참다운 동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웨슬리 오트리가 위험에 처한 사람과 마주쳤을 때 일말의 의심도 없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그 근거, 그 확실성을 우리는 우리의 삶과 행동에서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필자의 대학생 아들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그녀는 '선택공포증'이 있다. 음식점에 가서 메뉴판을 보고 좋아하는 음식을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범위를 두 가지로 좁혀 의견을 물어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저자들은 선택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회피하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자기 확신에 넘치는 사람. 그는 세계를 명약관화한 것으로 보고 모든 행동에 확신을 갖는다. 자신의 생각에 완고하게 빠져 현실에 대응조차 못한다. 저자들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나오는 애이해브 선장이 그런 사람이라고 제시한다.
선택을 회피하는 두 번째 방식은 강박, 심취, 중독의 노예가 되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에 이끌려 자신이 하려는 일을 아예 잊어버린 사람들.
그렇다면 아들의 여자친구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 걸까. 선택하는 능동적 주체의 삶을 살지 못하고 선택을 짐이며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이 현대적인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모든 것이 빛난다>에서는 자기 행동의 원천에 대하여 질문하고 답한다. 오트리처럼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반응>할 수 있는 이 무의식적 선택의 기제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소설가 월러스의 말을 빌린다. 인문학 교육에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가르칠 때의 어휘들이다.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곧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즉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 경험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뽑아낼지를 충분히 의식적이고 자각적으로 <선택>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상황들을 해석하고 선택하고 능동적 주체로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공부는 바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일.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빛>날 수 있도록.*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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